언론인에게 매체비평은 자기비판을 통한 내면관찰과 혁신을 위한 반성이다. 그러나 매체비평을 담당하는 언론인은 ‘동료를 고자질하는 배신자’라거나 ‘조직의 위기와 치부를 외부에 알려서 회사를 어렵게 만드는 내부의 적’으로 몰리기 쉽다. 반면 이들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은 ‘자사 이익을 대변하는 홍보직원’이나 ‘경쟁사를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험담을 늘어놓는 저격수’로 폄하에 머문다.

지난 4월 17일 마지막 방송을 송출한 KBS의 <미디어 인사이드>는 날선 외줄 위를 걷는 곡예사와 같았다. <미디어 인사이드>는 2003년 6월 <미디어포커스>로 시작했다. 신설 당시 <미디어포커스>는 ‘땡전뉴스’를 만들며 군사독재정부의 홍보방송을 자임하던 KBS의 잘못된 과거를 반성하였으며, 언론 독과점 환경의 문제점을 파헤치고, 잘못된 언론관행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했다.

KBS가 <미디어 인사이드>를 폐지하면서 밝힌 이유는 "매체 비평 프로그램으로 <TV비평 시청자데스크>, <미디어 인사이드>, <KBS뉴스 옴부즈맨>“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TV비평 시청자데스크>는 시청자의 민원과 비평을 전달하는 시청자 평가프로그램이고, <KBS뉴스 옴부즈맨>은 월1회 6명의 전문 옴부즈맨이 뉴스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는 프로그램이다.

지난 4월 17일 폐지된 KBS 매체비평 프로그램 <미디어 인사이드>

반면 <미디어 인사이드>는 매체 간 상호비평을 비롯하여, 언론보도의 전반적인 문제점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대안을 찾는 프로그램이다. 예컨대 ‘세월호 침몰사고’에 대한 보도과정에서 보여준 언론의 잘못된 관행과 재난보도에 대한 취재능력이 전무한 현실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대안을 찾는 작업은 <TV비평 시청자데스크>나 <KBS뉴스 옴부즈맨>이 할 수 없는 영역이다.

또한 길환영 전 KBS 사장과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 사이의 외압에 대한 진실공방을 담은 이른바 ’김시곤 비망록’이나, 방송 수신료를 근간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에 대한 기획재정부의 수익배당금 요구, 일기예보는 해도 총선을 보도하지 않는 공영방송의 비정상적인 행태에 대해 지적하고, 원인을 분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미디어 인사이드>뿐이다.

만일 이러한 문제가 ‘김시곤 비망록’처럼 법원에 의해 갈등이 조정되거나, 공영방송의 수익배당금처럼 정부의 황당한 행정명령에 아무런 반론도 제기하지 못한다면,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자율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보도의 객관성 중립성 독립성은 법원이 판단하도록 위임하게 될 것이고, 재정은 기획재정부의 ‘선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KBS의 매체비평 프로그램이 항상 긍정적이고 중립적이지는 않았다. 특히 자사의 직접적인 이익과 관련 있는 ‘수신료 현실화’와 관련해서는 정부와 국회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기능하기도 했다. KBS 내부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집단들도 이러한 자사 이익을 대변하는 목적을 위해서는 매체비평 프로그램을 도구화하는데 동의해 왔다.

방송의 매체비평은 신문의 매체비평처럼 철학적이고 논리적인 토론을 중계하거나 공론장에 공중을 참여시킬 수 있는 형태와는 구분되기 마련이다. 특히 방송과 같이 영상과 음성, 문자라는 세 가지 소구력을 가진 매체의 경우에는 “자기비판은 물론 방송의 상업화 공세로부터 공영방송을 방어하고 공적이익을 대변하는 수단”으로서 매체비평은 필요하다.

KBS는 <미디어 인사이드> 폐지의 이유를 '선택과 집중을 위한 전략'의 하나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선택과 집중을 위한 전략’이 공영방송의 자율규제와 자기혁신의 기제로 작동하던 <미디어 인사이드>를 대체할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는가? 오히려 공영방송마저 상업적 경쟁에 내몰려 결국은 정치적 외압과 법원의 강제명령, 정부의 행정집행으로부터 자사를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을 잃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자사비판도 두려워하지 않는 독일 방송
KBS, ‘매체비평’ 존재가치 깨달아야

왜 매체비평은 필요한가? 매체비평은 “단순한 비난이나 공격적 행위가 아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의미”한다. 또한 매체비평은 “저널리즘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내는” 수단이다. 그렇기에 매체비평은 “매체의 투명성을 계몽과 사회적 차별철폐의 도구로 사용하여 사회 정치적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만일 언론이 끊임없이 베끼기만 하고 현실을 조작하면서 자기 스스로 세뇌하는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면, 자기비판을 통한 내면관찰과 혁신을 위한 반성이 필요하다.

방송을 통한 매체비평은 영상자료를 통한 비평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신문과 매체전문잡지가 담당할 수 없는 ‘도구적 한계’가 있다. 그래서 방송 스스로 자기비평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자기반성과 성찰, 그리고 자신이 속한 조직의 불합리한 모순과 오류를 지적할 수 있는 매체비평이 전 세계적으로 활성화되어 있지는 않다. 오히려 탐사보도라는 형태로 폭로되거나 인쇄매체에 의한 비평이 여전히 주류를 이루고 있다.

독일의 매체비평 프로그램 채널돌리기(Zapp)

이상적인 방송의 매체비평을 하나 소개한다면, 북독공영방송(NDR)의 「채널돌리기(Zapp)」를 손꼽을 수 있다. 「채널돌리기」는 2002년 4월 12일 신설된 프로그램으로 바이에른공영방송(BR)의 「관찰」(월 1회 방송)과 함께 유이한 매체비평 TV프로그램이다.「채널돌리기」는 매주 수요일 23:15-23:45까지 방영되고 있으며, 독일어권 공영위성방송인 3sat와 ARD의 디지털채널인 아인스엑스트라(EinsExtra)에서도 재방송한다. 「채널돌리기」의 시청률은 평균 약 8%였다.

프로그램의 명칭인 Zapp은 영어에서 차용했다. 어원이 서부영화에 나오는 비속어인 ‘zapped(적을 한방에 쏴 죽이다)’로 ‘Zapp’은 독일어에서는 세 가지 의미로 쓰인다. 첫째는 방송채널 마구잡이 돌리기, 둘째는 고객의 순간적인 선택으로 기업이 파산하는 것, 셋째는 컴퓨터의 EPROM에 들어있는 프로그램을 소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채널돌리기」의 콘텐츠 구성은 매주 3-5개 정도의 매체비평에 대해 심층취재를 하여 방송하고 있다. 또한 아무런 논평 없이 이주의 볼만한 TV프로그램 짜깁기가 30초 정도 방영된다. 지난 5월11일 방송한 「채널돌리기」에서는 ‘디지털 쓰레기 : 증오와 도착(倒錯)’, ‘무시된 부담 : 위기의 소셜미디어기자들’, ‘새해의 여파 : 스트랄준더TV와 시장’, ‘레드불 TV : 세르부스TV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등 4건이 방송되었으며, 마지막으로 30초짜리 채널돌리기가 방송되었다.

「채널돌리기」의 장점은 자사인 NDR와 독일제1공영방송(ARD)은 물론 전체 공영방송에 대한 자기비판을 병행하는 것이다. 가장 최근 다룬 주제는 ‘방송부담금 징수거부운동’에 대한 내용이었다. 방송부담금 거부운동은 공영방송이 다루기에 껄끄러운 주제이지만, 징수거부운동을 하는 시청자도 공영방송의 고객의 한 사람이라는 점이 보도를 하게 된 중요한 이유의 하나다.

「채널돌리기」가 신설된 2002년 4월부터 2년간 팀장을 맡았던 부크하르트 나겔(Burkhard Nagel) 은 “우리는 ARD와 NDR의 아주 폭발력 있는 매체비평 주제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자멸을 바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결국 회사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되어 있을 뿐이다. 만일 우리가 회사 홍보용 선전방송을 만든다면, 회사이미지에 정반대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차라리 이런 상황이 닥친다면 방송을 만들지 않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며 방송비평을 담당하는 제작자의 입장을 밝힌 적이 있다. 이러한 입장은 그의 후임이었던 쿠노 하버부쉬(Kuno Haberbusch)도 마찬가지이다. 하버부쉬는 팀장으로 재직하면서 언론사로부터 매년 30여건의 소송에 시달려야했다.

1899년 창간된 매체비평 잡지 「횃불」 1호 표지

이제는 전설로 남은 매체비평 잡지인 「횃불(Die Fackel)」을 1899년 창간한 칼 크라우스(Karl Krauss)는 비평에 있어서는 성역을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의 친구는 물론 당대 최고의 비판적 지식인으로 불리던 인물들까지 거침없이 비판했다. 크라우스의 독설은 자주 법정에서 시시비비가 갈리기도 했다. 1936년 나치정권에 의해 폐간될 때까지 크라우스의 「횃불」은 모든 진영의 간담을 서늘케 한 비수였다.

그러나 모든 매체비평이 크라우스의 「횃불」같을 수는 없다. 1900년대 초반처럼 독자가 가판대에 나온 신선한 잉크냄새가 나는 비평지를 앞 다투어 구매하는 시절은 지나갔다. 이제는 영상으로 만들어진 매체비평 프로그램을 시청자가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선택형 소비의 시대이다. 디지털 매체 환경에서 매체비평은 또 다른 크라우스의 등장을 가능케 하지만, 구텐베르크세대가 아닌 마르코니세대에게 유익한 형식의 비평을 요구하고 있다.

<미디어 인사이드>를 폐지한 KBS의 경영진은 지금 이 시점에서 왜 매체비평이 필요한지를 다시 고민해야 한다. 매체비평은 높은 시청률을 보장하지도, 듣기 좋고 즐거운 이야기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은 아니다. 그러나 공영방송의 매체비평은 급변하는 매체환경에서 공영방송의 정체성과 방향을 모색하는 길잡이이자, 공영방송에 대한 외압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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