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7일, 언론사 상호비평을 가능케 했던 마지막 매체비평 프로그램 <미디어 인사이드>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3년 전 시작된 KBS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의 맥을 이어오면서 시청자 여러분이 미디어를 잘 이해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 미흡한 점이 많았지만 그동안 관심을 갖고 시청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는 클로징 멘트 몇 마디로 대신한 ‘이별’은 갑작스러운 모양새였다. KBS의 공영성을 담당하는 프로그램이니만큼 폐지는 재고해 달라는 제작진의 호소도, 매체비평 프로그램이 공영방송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강조했던 언론계 전반의 목소리도 소용없었다.

2003년 <미디어포커스>로 시작해 13년 동안 매체 상호비평을 해 왔던 KBS <미디어 인사이드>는 지난 4월 17일 폐지됐다.

<미디어 인사이드>의 폐지는 무엇을 의미할까. KBS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유사한 성격을 지닌 매체비평 프로그램 중 하나가 ‘선택과 집중’이라는 명분 아래 사라진 것뿐일까. 언론계 인사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고대영 사장 체제에서 충분히 예상 가능한 ‘수순’이었다는 반응, 유능한 기자들을 길러낼 수 있었던 산실을 스스로 무너뜨린 자해행위라는 반응, “유사 성격을 지닌 프로그램 중 하나를 없앴다”는 KBS의 주장 자체가 앞뒤에 맞지 않는 소리라는 따끔한 지적도 나왔다. 미디어스는 10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정동 뉴스타파 사무실에서 좌담을 열고 ‘<미디어 인사이드> 폐지가 말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미디어 인사이드 폐지, 뉴스에 투자 않겠다는 소리”

미디어스(이하 미) : KBS가 4월 17일 마지막 방송을 끝으로 <미디어 인사이드>를 폐지했는데 그 과정이 매끄럽지 않아 논란이 됐다. 제작진은 폐지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타 부서에서 전해 듣고 폐지를 재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폐지설이 불거진 후에도 KBS는 “아직 확정된 게 아니다”라는 답만 내놨고, 슬그머니 마지막 방송이 나간 것이다.

홍성일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 연구원, KBS 시청자평가원 (이하 홍) : 5월 첫 주 시청자평가회의에 안건으로 올렸다. 4월 안건으로 올리려 했으나 외부자로서 가진 정보가 제한적이었던 데다, (회사는) 아직도 정해진 게 없다고만 해서 어려웠다. 제가 5월 안건으로 올리더라도 방송은 6월에 나가는 것이다. 시청자평가원이라고 해도 사후 대응밖에 할 수 없다. (폐지가 이미 됐기 때문에) 다시 편성을 해 달라는 의견밖에는 낼 수 없지 않나. (폐지 과정에서) KBS의 의사결정 비민주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나를 돌아봐>도 “앞으로 잘해 보겠다”는 담당 PD 인터뷰가 나간지 얼마 되지 않아 폐지가 됐다. 그나마 마지막 방송을 특집으로 했으니 <미디어 인사이드>보단 사정이 낫다. KBS 프로그램 편성 자율성에 있어서 편성위원회 같은 장치들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런 장치들조차도 무력화된 상황에서 일방적인 독주가 이루어지는 것 아닌가.

김경래 뉴스타파 기자, 전 <미디어포커스>(<미디어 인사이드>의 전신) 제작진(이하 김) : 제작진들에게 들으니 끝까지 (폐지 여부가) 결정 안됐다고 얘기하더라고 들었다. 마지막 녹화날이 돼서야 그 사실을 알려줬다고 한다. 예전에도 비슷했다. <미디어포커스> 이름을 바꿀 때도. 이미 <미디어비평>이라고 바꾼다는 공지가 나왔는데도 팀장은 제작진에게 와서 이름을 어떻게 바꿀지 의견을 내 보라고 했다. 나중에 알게 돼서 따지면 ‘공지는 했지만 결정은 안 된 거다’라는 황당한 소리를 한다. 민감한 사항일수록 (회사는 나름대로의) 민주적 절차를 지켰다는 내외부적인 포장을 하려고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명시적으로 얘기를 안 하려고 한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고 한다. 이런 상황이 꽤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정미정 공공미디어연구소 부소장 ⓒ미디어스

정미정 공공미디어연구소 부소장, KBS 시청자위원회 위원(이하 정) : 왜 폐지했는지 문의하니 ‘KBS에는 <TV비평 시청자데스크>, <뉴스옴부즈맨>, <미디어인사이드>가 있는데 유사 프로그램을 통폐합해 깊이 있고 밀도 있게 만들고자 한다’는 답을 보냈다. KBS는 세 프로그램을 유사하다고 했지만 다 다르다. <시청자데스크>는 법에서 의무적으로 하게끔 하는 것이고, <뉴스옴부즈맨>은 월 1회 하는 자사 뉴스비평이고 <미디어 인사이드>는 상호비평을 하는 프로다.

: KBS 말은 월화드라마 한다고 수목드라마 폐지한다는 거나 다름 없다. 다 다른 것이다. (웃음)

: 마지막 방송을 보니 심포지움에서 ‘매체비평 프로그램이 왜 필요한가’라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더라.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은 요즘 같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국민들의 뉴스 리터리시를 신장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내용이 나간 직후에 “우리는 막을 내리겠습니다”라고 한 거다. 한 프로그램 안에서 논리적 모순이 너무 극명하게 보여서 황당하더라. 시청자 입장에서 보더라도 우스꽝스러웠을 것 같다.

: 폐지는 유감스럽지만 <미디어 인사이드>가 과거 <미디어포커스>처럼 날카로운 비평을 하지는 못했다는 평가도 있다.

김언경 민언련 사무처장(이하 언) : 민언련이 굉장히 미디어 모니터를 많이 하다 보니, <미디어포커스> 때는 아이템이 겹칠 때도 많았고 기획에도 참여하곤 했었다. (<미디어포커스>와 비교하면) <미디어 인사이드>는 확실히 제대로 못했다. ‘아 이걸 어떻게 피해?’ 싶은 아이템만 하는 정도. 이 프로그램을 유지하려면 ‘비판하는 목소리’를 담아야 하는데 그걸 부담스러워했던 것 같다. 톤다운되거나 편집되는 일이 잦았다. 제작진도 센 기자들은 점점 빠지고 온건파 기자들 위주로 배치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예전에 수신료 인상 필요성 아이템을 할 때 인터뷰를 거절한 적이 있었는데 제작진이 (간부들과 인터뷰이 사이에서) 너무 힘들어하는 게 느껴졌다. 위축돼 있었고.

신기하게 그 이후로 인터뷰 요청이 한 번도 안 왔다. <미디어 인사이드>가 예전보다 제작진 운신의 폭이 정말 좁구나 느꼈다. 그래서 이번에 <미디어 인사이드> 폐지 과정이 매끄럽게 됐으면 더 얄미웠을 것 같고, 이렇게 세련되지 못하게 끝난 게 참 KBS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진보적인 매체나 시각을 담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KBS 입장에서 얼마나 불편했을까. 고대영 사장 되고 나서는 특히 이렇게 되는 게 (예상된) 그림이 아니었나 싶다. KBS마저 매체비평 프로그램 명맥 잇는 것을 그만두는 것은, 굉장히 유능한 기자들이 거쳐가는 프로그램을 폐지해 ‘간판’ 역할을 했던 산실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게 아닐까. (* KBS를 떠나 <뉴스타파>로 간 기자들 가운데 김용진, 최경영, 박중석, 김경래 기자는 <미디어포커스> 탄생과 제작에 기여한 인물들이다) 한심하다. 자해행위다. (웃음) 자기네 회사를 망치는 행위다. 진보 진영을 취재하고 타 매체를 비판하는 것에 대한 부담 때문에 자해를 한 것이다.

: 저도 성완종 리스트 보도 관련 아이템 다룰 때 인터뷰를 했었는데 ‘그렇게 하면 방송 못 나간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단어 수정도 많이 하고 표현도 고치고 하면서 인터뷰를 했는데 정말 애매하게 말한 부분만 딱 나갔다. 그때 많은 생각을 했다. 기자가 이미 다듬은 결과물 자체도 안 나가는구나. <미디어 인사이드>는 존재 자체로서 의미가 있었지, 역할을 해 내기에는 힘들었던 상황 같다. 물론 살아 있는 것과 죽어 있는 것은 매우 다르겠지만.

홍성일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 연구원 ⓒ미디어스

: <미디어 인사이드>의 공정성에 대한 평가는 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공정성은 어떤 사람에겐 공정하고 다른 사람에겐 불공정할 테니. 다만 뉴스 저널리즘 제반 환경에 대한 내용은 좋았다. 피키캐스트 특집, 네이티브 광고 등 뉴스는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현직 기자들이 이런 고민을 하기 힘든 만큼, <미디어 인사이드>는 자사 기자들을 트레이닝시키고 뉴스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투자’ 개념으로 봤다. 이걸 폐지한 것은 뉴스에 ‘투자’를 하지 않겠다는 거고, 이렇게 되면 KBS 기자들은 다 민경욱처럼 될지도 모른다. 뉴스 투자를 통해 기자로서의 실력을 늘리기보다 뉴스 시청자를 정치권으로 두는 해바라기 기자들만 양산하게 되지 않을까. 뉴스를 메타적인 관점으로 보게 하는 기회를 자사 기자들에게서 빼앗은 것은 심각한 위기의 신호고, 자연히 저널리즘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들 수밖에 없다. 더구나 대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비평 프로그램조차 사라진다는 건 KBS뉴스의 심각한 정치화를 예고하는 것 아닌가 싶다.

“KBS, 프로그램 힘빼 놓고 프로그램 품질 낮다고 하면 안돼”

: <미디어포커스>는 첫 방송부터 파격적이었다. 군사정권부터 국민의정부를 거치는 동안 KBS가 권력 압박으로 인해 어떤 방송을 해 왔는지를 담은 ‘반성문’을 내놨다. 또, 조중동 등 주류 언론에 대하 비판에도 몸 사리지 않았다.

: 당시 조중동에서 항의를 많이 받았을 것 같다.

: 그땐 일상이었다. (웃음) 토요일 저녁에 방송이 나가면 조중동이 일요일에 반박기사를 내고, 우리는 미디어지에 기고해서 재반박을 한다. 일주일 돌아가는 사이클 중 하나였다. 방송도 보고, 제작진하고도 이야기해 봤는데 자기검열이 심하다고 하더라. 그건 특별히 무슨 일이 지금 일어나서가 아니라, 2008년 이후로 내면화된 결과 같다. 성완종 리스트 같은 아이템은 안 다룰 수가 없으니 하지만, 약간 아리까리한 아이템은 안 한다. 발제가 잘 안 된다고 들었다. ‘왜 이걸 안 했을까’ 하고 가장 의심한 편이 문창극 보도였다. KBS가 특종한 거였는데도 그런 아이템은 못 내는 거다.

저도 그랬던 경험이 있다. 2008년 사장이 교체되고 나서 유인촌 장관이 공식석상에서 기자들에게 ‘찍지마 시X’이라며 욕한 해프닝이 있었다. 그때 제작진은 해프닝이긴 하지만 언론 주무 장관이 언론을 대하는 태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고, 언론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취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처음엔 안 된다고 했는데 제작진이 ‘이런 아이템 못할 거면 프로그램 왜 하냐?’라고 항의하자 일단 하라고 하더라. 유인촌 장관 앰부시 인터뷰(반드시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인물 이동경로에서 미리 기다리다 인터뷰를 시도하는 취재 방식)를 1분 간 했는데 굉장히 재밌었다. KBS 기자라고 하니까 어깨동무를 딱 하더라. 질문 내용에 대해서는 ‘KBS 기자가 그런 거 물어보면 안 되지’라고 하고. 기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화면이라 넣었더니 위에선 안 된다고 했다. 길다고 해 줄이기까지 했는데도 방송 직전까지 편집을 못하고 있었다. 결국 방송이 나가긴 했지만 그런 아이템 하나가 나가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든 거다. 그러니 다들 안하게 된다. 뭐하려고 그 개고생을 하나. 팀장, 부장 다 친한 사람들인데 싸워가면서…

김경래 뉴스타파 기자 ⓒ미디어스

당연히 지금 KBS에선 못했겠지만 ‘MBC 백종문 본부장 녹취록’ 이런 건 의지가 있어야지 하는 아이템이다. MBC 내부 일이라고 할 거고, 또 숱하게 싸워야 했을 거다. 이게 싫으니 안 다룰 수 없는 것들은 의무방어전으로 하고 정치적 이슈는 외면하는 것이다. 시장변화는 민감하게 잘 쫓고 언론의 품격에 집중하고. 주제를 고르게 다루지 못한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같은 사안도 ‘한겨레 경향은 반대 논조, 조중동은 찬성 논조를 보였다. 둘 다 문제다’ 이게 끝이다. 그렇게 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 저는 매체비평 프로그램은 ‘취재제작과정’이 있기 때문에 취재물이라고 생각한다. 기자들이 어떤 현상을 취재해 새로운 사실과 시각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어서 옴부즈맨 프로그램과는 다르다고 본다. 그런데 취재를 하면 ‘편파적’이라는 공격도 같이 받는다. 제작진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한계를 느꼈을 것 같다.

: KBS는 오랜 시간에 걸쳐 프로그램 힘을 뺐다. 제대로 된 발제를 못하게 해서 물타기성으로 맥 빠지는 보도를 만들게 하고. 이제 와서 프로그램의 품질이 낮다고 하는 건 KBS가 할 말은 아니다. 그걸 조장한 게 경영진이니까.

: <미디어 인사이드>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계몽적으로 얘기하고 싶진 않지만, 미디어 뉴스에 대한 시청자들의 이해도가 크게 높지는 않다. 뉴스를 이해하는 데에 숙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생활인으로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할 이유도 없는 뉴스가 나가는 게 더 문제지만. <미디어 인사이드>가 날이 안 서 있고 민감한 아이템이 빠져 있다고 하더라도 ‘아,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구나’ 하는 것과, 뉴스에서는 전달하지 못하는 새로운 시각을 전달할 수는 있다고 봤다.

그런데 어쨌든 프로그램에 자사 비판적인 얘기가 계속 들어가게 되는데, 그건 수뇌부들의 생각과는 다른 방향이다. 간부들이 직접 만들 수는 없고, 프로그램을 100% 통제하려면 결국 없애는 것밖에 답이 없지 않나. <미디어 인사이드>가 특정 정치세력의 ‘입’ 노릇을 한다는 편협하고 꼬여 있는 시각을 공유하고 있다가 ‘이쯤 되면 없애버려도 되지 않나?’ 하면서 없앤 거다. (많이 무뎌졌다는) 지금 수위의 방송마저도 불편하게 느꼈나 보다.

: 똑같은 프로그램이 많다, 성격이 다 다르다 이런 소리도 말이 안 되지만, 프로그램 힘을 빼놓고 이제 와서 프로그램 탓을 하는 게 너무 웃기다. 이제 와 시청률 이런 소리를 하니까…

: 공영방송에서 시청률을 제일 우선한다는 게…

: 제작진한테는 가성비가 낮다, 화제성이 낮다, 프로그램 생명력이 다한 것 같다 이런 3가지 얘기를 했다고 한다.

: <미디어포커스> 때는 프로그램 자문위원단 아이템 회의비, 자료조사비 등이 잘 갖춰져 있었는데 요즘은 기자가 혼자 알아서 해야 되는 것 같더라.

: 편당 제작비가 700만원 정도라고 한다. 700만원에 30분이면 되게 싼(가성비가 좋은) 프로그램이다. 화제성? 화제성은 민감한 아이템을 못하게 하니까… 제작진이 ‘이 정도 돈으로 이 정도 프로그램 나오기 어렵다. 이슈 갖고 열심히 만들어서 화제성 높여 보겠다’고 했는데도 안 된다고 했단다.

: (<미디어 인사이드> 폐지는) 4·13 총선 이후 첫 리액션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KBS가 어버이연합 보도를 계속 안 하고 있는 것도 그렇고. (총선 이후) 위기의식 때문에 이런 프로그램조차 불편하게 느껴서 아예 싹부터 잘라나가는 작업을 한 게 아닌가 싶다.

“거버넌스 개선과 제작자율성 보장 함께 가야”

: <미디어 인사이드>뿐 아니라 ‘공영방송 KBS’가 해야 할 역할을 담당하고 있던 프로그램들이 근 7~8년 사이에 힘을 잃거나 사라졌다. 시사 프로그램도 예전만 못한 상황이고, KBS가 한 특종(대기획 <훈장>)조차 타사에서 먼저 방송돼 김이 빠졌다. 제작자율성이 충분히 보장되지 못하는 환경이 점차 악화되고 있는데.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미디어스

: 총선 모니터하면서 느꼈는데 요즘 친구들은 ‘원래 뉴스는 이렇게 하는 건가 보다’ 하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더라. 옛날에 잘 만들었던 <미디어포커스>는 아예 모르고. 그러니까 질 높은 보도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는 거다. SBS처럼 기계적 균형만 딱딱 잡는 보도를 모범으로 생각하고, JTBC 보도는 정치적 강도가 있기 때문에 편파적으로 본다. 그러니 방송사 윗선도 그런 논리로 방어를 하는 거다. <시사기획 쌈>, <미디어포커스>를 다시 보면서 좀 환기를 해야 한다. 2007년만 해도 후보 검증 프로그램 다 하지 않았나. 요새 ‘예전엔 그런 걸 보도했다’고 얘기하면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다.

무보도 기조는 기자들만 순치시키는 게 아니라 시청자들도 그런 보도 행태에 익숙해지게 만든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매체비평 프로그램은 미디어 교육 효과가 큰 만큼, 쉬운 수준에서라도 ‘저런 유형의 보도는 문제가 있구나’ 하면서 계속 느끼게 하는 기회를 줄 수 있다. 그래서 반드시 공영방송에서 해야 하는 건데, 그런 ‘교과서’가 없어진 셈이다. 분명히 젊은 층 시청자들에게 영향이 있을 거라고 본다.

: 매체비평 프로그램은 경영진 의지가 없으면 존속하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기자들이 하기 싫어한다. 제가 있을 때만 해도 의무 복무기간처럼 1년을 채우면 다음에 가고 싶은 부서로 보내줬다. (매체비평 프로그램) 소속 기자들을 안에서도 안쓰럽게 본다. 더럽고 치사한 걸 아니까. 저도 타사 취재하면서 ‘너 몇 년차니?’ 그런 얘기 제일 처음으로 들었다. 제작진에게 제작자율성을 주고 프로그램을 버틸 수 있게 해야 하는데 그런 구조가 안 돼 있으니까.

: <TV비평 시청자데스크>에서 뉴스 프로그램을 다루기는 쉽지 않다. <뉴스옴부즈맨>은 현 KBS 보도 기조를 옹호하는 몇 분, 반대하는 몇 분 이렇게 가장 안정적인 시스템으로 이뤄져 있고 취재도 없다. 가장 기대할 만한, 의미 있다고 볼 만한 프로그램이 날아간 거다. 근데 세 프로그램을 겹친다고 보는 것 자체가 (경영진이) 이걸 봤는지도 의심이 간다.

: KBS 역사에서 그나마 자율적인 분위기에서 사람들이 의욕적으로 일했던 때가 정연주 사장 시절이었다. 그때가 사실 특이했는데, 지금 보니까 그때 일을 너무 많이 벌여 놓은 거다. 시사교양 프로그램들에 PD를 잔뜩 집어넣었고 프로도 많이 신설했는데, 하나씩 죽여가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PD들의 시사 프로그램은 <추적60분> 말고는 거의 다 뺏겼는데 그조차 힘이 많이 빠졌다. 보도본부에서 만드는 데일리 뉴스 말고 다른 프로그램을 연성화하거나 없애는 수순인데, 그렇게 되면 상명하복과 관료질서로 통제하기 쉬운 뉴스만 남고 나머지는 굉장히 연성화된 비정치적인 프로그램으로 꽉 채워지는 형태만 남는다. <미디어 인사이드> 폐지만의 문제가 아니라 KBS가 NHK처럼 굉장히 고답적인 길로 가서 시청자들이 떠날까봐 그게 걱정이다.

: 논란이 될 만한 결정을 내리고도 ‘우리는 잘못한 게 없다’는 게 KBS다. 뉴스 불공정성을 지적해도 ‘우리는 너무 잘하고 있다’, ‘이상한 정치단체의 헛소리를 듣지 말아야 한다’는 식이다. 결국 거버넌스 개선밖에 답이 없는 것 같다. 현재의 사장 선임 구조(여야 추천 이사 7:4로 구성된 KBS이사회가 사장을 1명 선임해 대통령의 재가를 얻는 방식)에서는 이런 문제들을 피하기 어렵다고 본다.

: 거버넌스 개선과 함께 제작자율성 보장이 같이 가야 될 것 같다. 간부들은 제작자율성이라고 하면 ‘노조로부터의 제작자율성’을 거론하며 공격하는 용도로 쓰고 있다. 처음에는 황당했는데 벌써 일상화가 된 것 같더라. 어쨌든 노조가 됐든 협회가 됐든 제작실무자들 단위에서 제작자율성을 지킬 수 있는 공식적인 창구가 강화되지 않으면 거버넌스 구조가 바뀌어도 굉장히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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