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한민국의 광고업계와 미디어업계를 먹여살리는 광고주는 단연 전자와 이동통신 업종이다.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가 지난해 방송광고 10대 광고주를 집계한 결과를 보면, 삼성전자가 814억원으로 1위에 올랐고, SKT가 789억원으로 바짝 뒤를 쫓았다. LG전자(504억원), KTF(503억원)는 3, 4위를 차지했다. 이 순서대로라면 당신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광고는 삼성전자 광고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2위 SKT나 4위 KTF일 확률이 오히려 높다. 삼성전자나 LG전자 광고가 SKT나 KTF 광고만큼 ‘반사적’으로 떠오르지 않는 건 이들의 광고가 여러 종류의 제품 광고로 골고루 분산돼 있기 때문이다. 반면 SKT와 KTF는 거의 대부분 브랜드 이미지 광고여서 그만큼 집중도가 높다. 장담컨대 지금 대한민국에서 “생각대로 하면 되고~”와 “쇼를 하라 쇼!”의 인지도를 능가하는 광고 카피는 없다.

‘동어반복’과 ‘무한변주’, 수용자 눈에 24시간 노출시켜라

이들 두 광고는 카피와 음악/음향의 집요한 ‘동어반복’에 출연 모델과 상황설정의 ‘끝없는 변주’를 입히는 표현전략으로 수용자의 주의를 끌고, 관심을 붙들어 놓는다. 또 온갖 미디어에 동시다발적으로 노출시켜 수용자의 눈과 귀를 24시간 쫓아다닌다. (미국 언론학자 토드 기틀린이 개념화한 ‘무한 미디어’를 실감하게 한다.) 라이벌 관계가 형성되면서 두 광고가 서로의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시너지 효과까지 일으킨 것도 크게 한몫했을 것이다.

▲ “생각대로 하면 되고~”는 다양한 변용으로 확대재생산됐다.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의 ‘원자력 되고송’ UCC 캡처. 원자력도 된다는데, 한반도 대운하도 생각대로 하면 될까?
그러나 두 라이벌의 대결로만 좁혀놓고 보면, 단연 SKT의 우세승이다. 두 광고 모두 숱한 화제를 뿌렸지만, 수용자들에 의한 ‘확장’이라는 면에서 “생각대로 하면 되고~”가 “쇼를 하라 쇼!”를 압도했기 때문이다. “생각대로 하면 되고~”는 수많은 현실 상황에 맞춰 그때그때 수용자들의 자발적 변용에 의해 확대 재생산돼 왔다. “쇼를 하라 쇼!”는 변용할 만한 현실상황이 훨씬 제한돼 있다. 여기에다 SKT는 수용자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리도록 하는 광고음악(CM송·Commercial Song) 덕도 톡톡히 보았다.

정보성 광고는 수용자의 이성에 소구하지만 이미지 광고는 감성에 소구한다. 광고에서 감성이란 곧 ‘소비 욕망’이다. 애플사 최고경영자인 스티브 잡스는 “고객의 욕망을 ‘창조’하라”고 말한다. 그의 말은 광고에 더욱 그럴싸하게 들어맞는다. 광고(특히 이미지 광고)는 소비자의 욕망을 좇아가는 게 아니라 ‘창출’한다. 정보성 광고조차 종래에는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광고는 마침내 수용자의 의식 세계를 넘어 무의식 세계까지 넘본다.

“생각대로 하면 되고~”에 중독된 당신

무의식에 호소하는 광고를 ‘식역하 광고(subliminal advertising)’라고 한다. 메시지가 사람의 잠재의식 속에 남도록 하는 전략인데, 가장 일반적인 기법이 ‘반복’이다. 타당성과 신뢰도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긴 했지만, 제품 광고를 인간이 인식할 수 없는 3천분의 1초씩 끊어서 주기적으로 반복 노출하면 해당 제품에 대한 소비욕구가 증가한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길을 걸으며 까닭없이 “생각대로 하면 되고~”를 흥얼거렸던 경험을 떠올려보라. 광고에 의해 무의식 세계를 지배당한 것이라고 단정하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당신은 ‘중독’된 것이다.

SKT가 2월 들어 새로운 광고 콘셉트를 내놓았다. “비비디 바비디부~”. 젊은 여성이 쇼윈도 앞에서 사고 싶은 옷을 골똘히 바라보자 “비비디 바비디부~”라는 주문과 함께 ‘80% 할인’ 알림판이 나붙는다. “비비디 바비디부~”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신데렐라>에서 할머니 요정이 신데렐라의 누더기를 파티복으로, 호박을 꽃마차로 바꾸는 요술을 부리면서 외우는 주문이다. 동화와 달리 광고 속 여성은 그 주문과 함께 옷값의 20%를 지불해야 신데렐라가 된다. 자본주의 시대에는 신데렐라도 그 정도 경제력은 있어야 하는 건가?

SKT가 “생각대로 하면 되고~” 같은 초대박 광고를 내리고 “비비디 바비디부~”를 내놓은 데는 그만한 사정이나 계산이 있었을 터이다. SKT는 “고객이 자신의 생각이 실현되는 최고 순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응원하는 친구가 되겠다는 브랜드 철학을 전하려 한다”고 밝혔다. 광고의 세계에서 실현돼야 할 ‘자신의 생각’이란 결국 ‘소비 욕망’이다. 이 텍스트에 대입해보면 예쁜 옷을 갖고자 하는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그녀(당신)는 SKT와 동행해야 한다. 그럼 SKT는 이 메시지를 전하는 데 “생각대로 하면 되고~”로는 충분치 못하다고 판단한 걸까?

“비비디 바비디부~”는 진화인가 퇴행인가

“비비디 바비디부~”는 “생각대로 하면 되고~”의 연장(延長)이다. 둘의 차이라면 ‘욕망’과 ‘실현’ 사이를 매개하는 것이 ‘주문’이냐 ‘생각’이냐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생각’과 ‘욕망’은 동시적인 것이어서 매개 자체가 필요없다. 즉, “생각대로 하면 되고~”는 ‘욕망’의 드러냄이 직설적이고 ‘실현’의 과정은 즉각적이다. 주문까지 외우는 건 번거로운 노릇이다. SKT는 수용자에게 굳이 그 번거로운 일을 하라고 메시지를 수정한 셈이다. 편익의 측면에서만 보자면, “비비디 바비디부~”는 진화가 아니라 오히려 퇴행이다.

누구는 ‘생각대로 하면 된다’는 단정적 메시지 대신 ‘생각대로 되길 바란다’는 기원으로 바꾼 것이라며, 언제 끝날지 모를 경제 위기를 고려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과연, 그럴 듯하다. 현실과 괴리가 너무 크면 광고 효과는 반토막(半減) 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반감(反感)을 일으킬 수도 있다. 자칫 부정적인 패러디 소재로 인기를 끌면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제 얼굴에 침뱉은 꼴이 되고 만다. 하지만 이런 그럴 듯한 분석이 현실에 부합하는지는 따져 볼 일이다. 최근 경제 위기 때문에 “생각대로 하면 되고~”가 부정적 효과를 낸 경우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난 “비비디 바비디부~”는 “생각대로 하면 되고~”보다 한수 위의 표현전략이라고 본다. “생각대로 하면 되고~”는 직설적 메시지이면서 구상(具象)의 기호다. “비비디 바비디부~”는 이 메시지의 ‘연장’으로서 추상(抽象)의 기호다. 말로서 아무 의미도 없는 이 주문은 따로 떼놓고 보면 메시지가 약하지만, 이미 우리 의식의 영역에 활착한 “생각대로 하면 되고~”와 연결해서 보면 사정이 전혀 다르다. “비비디 바비디부~”는 “생각대로 하면 되고~”를 용해해 의식 영역과 무의식 영역 사이에서 삼투압을 일으키게 하는 ‘주술’이다. 내 눈에 이 광고는 ‘식역하 광고’다.

우리를 현실로부터 격절시키는 판타지 자판기

두 광고 모두 비현실적인 판타지이기는 마찬가지다. 판타지 없는 인생은 광막한 사막과 같다. 하지만 ‘무한 미디어’를 통해 무차별적으로 유포되는 판타지는 깊은 수렁이다. 프로이드는 “행복한 사람은 절대 환상을 꿈꾸지 않으며 현실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만이 환상을 꿈꾼다”고 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판타지를 유포한다면 오히려 현실이 사막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이 광고의 비현실성은 현실의 역설이다. 행복의 주문은 판타지로만 실현되면서, 우리를 현실로부터 격절시키는 가공할 주술이다. “비비디 바비디부~”는 ‘기원’이 아니고 몰(沒)현실적 판타지 자판기에 넣는 ‘이데올로기 동전’이다.

더구나, 이 광고의 설정은 구조적 모순이다. 마지막 신에서 SK 프로농구팀 방성윤이 “비비디 바비디부~”와 함께 버저비터를 날리고, 치어걸들이 깡충깡충 뛰면서 코트로 몰려나온다. 방성윤의 욕망 실현은 상대팀의 절망이다. 신데렐라의 욕망은 신데렐라 엄마, 언니의 욕망과 양립할 수 없다. 호혜와 평등에 대한 욕망만이 이 광고 설정의 모순을 지양할 수 있다. 그런 욕망이 있기는 한가? SKT는 그런 욕망도 실현시켜 줄 수 있을까? 모두의 자기본위적 욕망이 실현되는,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가짜 세계, 바로 디즈니랜드로 상징되는 ‘시뮬라크르’의 세계다.

당신은 곧 “비비디 바비디부~”를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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