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는 독재자라서 나빠요.”

어린이 대상 방송 프로그램에서 나온 이 발언에 대해 방통심의위는 ‘품위유지’ 조항 위반을 들어 행정지도 제재를 결정했다. 불쾌감·혐오감을 등을 유발해 시청자의 윤리적 감정이나 정서를 해쳤다는 결론이다. 삼단논법의 한 ‘예문’으로 나온 표현일 뿐인데,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에서 부적절했다는 게 이유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산하 방송심의소위(위원장 김성묵)는 11일 재능방송(JEI) English TV <한마디로 영어> 4월 26일 방영분 관련 건을 심의했다. 해당 방송에서 진행자 박기범 씨는 영어 동사 ‘have’의 “~와 함께 하나가 돼서 존재한다”라는 의미를 추론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이승만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전두환 대통령, 노태우 대통령은 독재를 했습니다’, ‘독재자는 나쁩니다’라는 두 가지 문장에서 무엇을 추론할 수 있느냐”며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는 독재를 해서 나쁘다’를 추론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그 분들의 지지자들은 저를 욕하겠지만 예문을 든 것이니 흥분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JEI English TV 페북 페이지 캡처

“순수한 어린이 프로그램에 정치적인 비유는 비정상…역사적 사실도 아냐”

이에 대한 정부여당 추천 심의위원과 야당 추천 심의위원들 간 의견은 크게 갈렸다. 정부여당 추천 심의위원들은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에서 부적절한 예문”이라며 행정지도를 주장했다. 반면, 야당 추천 심의위원들은 “독재자를 독재자라고 했는데, 무엇이 잘못됐느냐”고 문제없음 의견을 밝혔다.

정부여당 추천 하남신 심의위원은 “재능방송 시청 대상은 어린이 아니냐”며 “(그런 시청자들을 상대로)진행자가 철딱서니 없게 발언했다. 치기 어린 진행자의 치기 어린 발언이라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순수한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독재자를 운운할 이유가 뭐가 있느냐. 이런 걸 문제없다고 해버리면 그것이 문제이다.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느껴진다”고 말했다.

하남신 심의위원은 “프로그램의 성격과 대상을 봐야 한다”며 “통념상 드레스코드라는 것도 있다. 회의하는데 잘못 입고 올 수 없지 않느냐.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정치적인 비유를 드는 것은 비정상적이고 부적절하다. 수용가능한 적절성이라는 게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독재자를 독재자라고 했는데 무슨 조항을 걸 수 있느냐’는 지적에도 하남신 심의위원은 “독재자라고 하는 걸 문제 삼는 게 아니다”라면서 “굳이 영어 프로그램에서 전직 대통령의 독재까지 운운하는 게 튄다는 말이다. 그게 영어 교육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방송의 품위에 어긋난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전직 대통령 4명이 독재자인지 여부와는 별개로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정치를 이야기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논리다.

김성묵 소위원장은 “이승만-박정희 정권에 대해서는 역사학자들도 손을 못 대는 부분”이라며 “(4명의 대통령이 독재자라는 건)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어떻게 할 것이냐. 행정지도에서 의견을 통일하자”고 주장했다. 이렇듯 김성묵 소위원장은 더 나아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함귀용 심의위원은 처음에는 ‘문제없음’을 주장했다가 정부여당 추천 심의위원들이 다수 행정지도 주장을 내자 입장을 선회했다. 그는 “(해당 비유를 든 것이)비정상적인 게 맞는 데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중 걸 조항이 없다”며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이 독재자라는 건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주의국가를 완성시켰고 박정희 대통령은 후대에 ‘훌륭한 대통령’으로 꼽히는 큰 공과가 있다. 노태우 대통령이 여기에 끼어 있는 건 부적절한 비유를 했지만 문제없다”고 말했다.

함귀용 심의위원은 “‘독재자는 나쁘다’라는 삼단논법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어린아이를 상대로 하는 프로그램에서 적절한 건 아니라고 볼 수 있다”며 “노태우 대통령이 독재자인가. 뒤로 돈을 먹은 건 잘못했지만 독재자와는 달리 (통치는)민주적이었다”고 말해 기존 입장을 바꿨다. 이어, “행정지도 ‘의견제시’라면 합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삼단논법의 한 비유…독재자에 독재자라고 한 건데 문제없다”

반면, 야당 추천 윤훈열 심의위원은 “독재자에 독재자라고 한 것인데 문제될 게 없다”며 “노태우 정권 또한 군사정권의 연장선상에서 보는 분들도 많다.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한 것을 문제될 게 없다”고 주장했다. 장낙인 상임위원 또한 “삼단논법을 설명하기 위한 비유를 든 것”이라며 “노태우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비유한 것은 할 말이 있을 수도 있지만 문제 삼을 정도는 아니다. 또, 재능방송이 어린이 대상으로에서 부적절한 비유라고 제재한다면 ‘사회현상’을 예로 든 모든 방송들을 문제 삼아야 한다”고 말해 ‘문제없음’ 의견에 동조했다.

방송심의소위원회는 논란 끝에 해당 건에 대해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7조(품위유지) 5호 위반으로 행정지도 ‘의견제시’를 의결했다. 표결 이후 장낙인 상임위원은 “해당 방송이 불쾌, 혐오감을 준 것이냐. 이런 걸 제재하니 방통심의위가 희화화되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