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안산시 단원 대부도 방조제에서 하반신 시신이 발견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3일에는 인근 시화호 물가에서 상반신 시신이 또 발견됐다. 토막살인에 이은 사체유기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피해자는 연수구에 살고 있던 최 모 씨로 밝혀졌다. 신상이 밝혀진 직후 용의자로 지목된 동거남 조 모 씨는 검거됐다. 그는 “어리다고 무시해 살해했다”며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잔혹한 범죄 사건이 하루가 멀다 하고 보도 되지만 문제는 늘 같다. 언론은 피의자 조 씨의 기행만 보도하고 사회 안전망에 대해선 사실상 방치할 게 뻔했다. ‘당신의 안전은 당신이 지켜라’라는 교훈으로 끝날 터였다.

안산 토막살인 사건의 파장은 이러한 일반적 상황과 비교해 더 커졌다. 경찰이 피의자 조 씨의 얼굴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이걸 토대로 '검색'에 돌입한 일부 극성스런 네티즌들에 의해 사건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조 씨의 옛 여자 친구 사진 역시 공개됐다. 결국, 이번에도 피의자 신상정보 공개로 인한 2차 피해자들이 발생한 것이다.

언론도 바빠졌다. 언론 매체들의 이 사건에 대한 태도는 크게 나누면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경찰이 공개한 시점에 맞춰 조 씨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한 매체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연합뉴스 그리고 지상파 MBC·SBS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 매체들은 피의자의 이름을 ‘조 씨’로 표기하고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 했다가 경찰의 얼굴 공개 시점에 맞춰 이를 노출시켰다. 두 번째는 경찰의 공개여부와 별개로 조 씨의 얼굴과 이름을 비공개로 유지한 매체다. 여기에는 한겨레와 경향신문 등이 포함된다. 한겨레는 <‘안산 토막살인 용의자’ 얼굴공개 괜찮나요>라는 기사를 배치해 얼굴 공개의 문제들을 조목조목 짚었다. 경향신문은 사설 <경찰의 강력사건 피의자 얼굴 공개 신중해야>를 배치했다. 이들 신문은 지금도 조 씨의 이름과 얼굴 등 신상정보를 비공개하고 있다.

경찰의 피의자 얼굴 공개 오락가락 행보비판하며 따라가는 JTBC

세 번째는 조 씨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면서도 경찰의 오락가락 행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매체다. JTBC와 한국일보가 여기에 속한다. 10일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 <아들의 이름…태양이와 큰별이>에서 손석희 앵커는 이렇게 말했다.

5월 10일 jtbc 뉴스룸 캡처

“경찰은 피의자의 실명과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학력, 직업은 물론 옛날 여자 친구의 신상정보까지 샅샅이 털리는 세상. 누구나 공분할 수밖에 없는 범죄이지만 또 한 편으로는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범죄로 인해 드러난 현대사회의 몰 인간성을 한낱 이야깃거리로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옆집 총각 같은…악마’, ‘멀쩡한 외모·충격’이라는 언론이 뽑아낸 그 제목들처럼 말입니다. 그동안 대중 앞에 얼굴이 공개된 여러 범죄자들의 사진입니다. 얼굴이 공개된 이들을 향해 분노하고 또 다시 사형제 부활을 이야기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경계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이른바 ‘괴물’들은 왜 끊임없이 나오는 건지… 세상은 그들에게 무엇이었는지…(구로동 총기난사 사건의 희생자)‘태양’이와 ‘큰별’이의 이름을 비로소 찾아주었던 작가 박완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묻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_손석희 앵커

JTBC는 앞서 9일에도 <‘오락가락’ 흉악범 얼굴·실명 공개…기준은 무엇인가> 리포트(▷링크)를 배치했다. 이 리포트에서 JTBC는 “경기도 안산 시신 훼손 사건의 피의자 조OO(뉴스에서는 그대로 나감, 이하 조OO)의 얼굴과 실명 공개를 두고 지금 논란이 한창 뜨겁다”며 “국민의 알권리 충족이 경찰이 공개한 이유이긴 하지만, 흉악한 범죄에 대해 경종을 울린다는 취지는 많은 분들이 공감하지만, 문제는 원칙이 없다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과거 사례를 보면, 김하일·오원춘·박춘봉의 얼굴은 검거되자마자 지체 없이 공개된 반면, 서초구 세모녀 살해 사건의 피의자 강모 씨, 자식을 학대 끝에 죽이고 암매장한 김모 씨 얼굴은 영장이 발부됐을 때조차 비공개처리됐다는 것이다.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8조의 2(피의자의 얼굴 등 공개) 제1항은 검사와 사법경찰관에 의해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사건, △피의자가 그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때,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할 때 “피의자의 얼굴, 성명 및 나이 등 신상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 수사기관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될 요소가 많다는 점은 문제로 지적된다.

JTBC 또한 이 점에 주목했다. JTBC 손석희 앵커는 “피의자를 두둔할 생각은 누구에게도 없다”며 “다만, 민주국가라면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달라는 요구가 있는 것이다. 또, 주변 인물들에 대한 피해가 워낙 크기 때문에 그 부분들도 우리가 너무 경시해서는 안 될 그럴 사안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고 말하며 문제를 제기한다. JTBC의 일관된 인식이다.

5월 7일 jtbc 보도 캡처

한국일보 역시 9일 <안산 토막살인 피의자 옛 여친 신상까지 무차별 노출> 기사를 통해 경찰의 자의적 판단에 따른 범죄자 얼굴 등 신상공개 문제를 거론했다. 해당 기사에는 조 씨의 얼굴이 공개된 연합뉴스 사진이 포함돼 있었다. 물론, 정확한 얼굴이 나온 사진을 피한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모자이크 등의 처리는 돼 있지 않았다. 이름 또한 그대로 노출됐다. JTBC는 경찰이 조 씨의 얼굴 등 신상정보를 공개한 7일에도 같은 행보를 보였다. <‘안산 시신 훼손’ 피의자 조OO 구속…얼굴 등 공개> 리포트(▷링크)에서는 “회색 후드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의 조OO 씨가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리지 않은 채 모습을 드러낸다”며 경찰의 얼굴공개에 따라 함께 조 씨의 이름과 얼굴을 노출시켰다. 그러면서 조 씨가 SNS에 “지금도 충분히 힘들지만 꿈을 꼭 이루어낸다”(사체 유기 전날), “10년 안에 3억 원을 모을 수 있을 거 같다”는 등의 글을 올렸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런 JTBC는 곧바로 <흉악 범죄자 얼굴 공개, ‘오락가락' 기준 또다시 논란> 리포트(▷링크)를 통해서는 “(경찰이)그때그때 여론에 따라 원칙 없이 얼굴을 공개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피의자 얼굴공개, 언론들 또한 기준 가지고 있어야

따지자면 이상한 논조다. 경찰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원칙 없이 범죄자의 얼굴이 공개되는 것은 문제다. 피의자의 공개된 얼굴을 ‘멀쩡한 외모·충격’ 등 수사를 활용해 가벼운 가십거리처럼 보도하고 소비하는 행태도 문제다. JTBC 역시 조 씨의 이름과 얼굴 등 신상정보를 공개했다. 그러면서도 수사기관의 '기준'에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여기서 JTBC의 범죄자 얼굴 공개의 기준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경찰이 공개하면 언론은 당연히 공개할 수 있다는 게 원칙인 걸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한겨레 원칙은 이렇습니다>를 지면에 게재했다. “<한겨레>는 흉악범이라도 공인이 아닌 이상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는 헌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 그리고 신상 공개는 수사상 필요한 최소한이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인권적·형사법적 측면을 고려한 결과입니다”라는 것이다. 경향신문은 조 씨의 신상정보를 비공개하며 사설을 통해 “헌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과 형사소송법상 기소 전 피의사실 공표 금지 조항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신상정보 공개는 신중해야 한다”며 “여론의 분노가 피의자에게만 집중되면 경찰의 치안 실패 추궁, 범죄척결은 더 멀어질 수 있다”고 꾸짖었다. 사회범죄를 둘러싸고 한 개인에게만 모든 책임을 묻는 것은 올바른 해결책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JTBC의 보도와 손석희 앵커의 브리핑을 통해 유추해보면 이 같은 문제의식을 일부 공유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볼 때 JTBC는 ‘그래도 우리는 피의자의 외모를 소비 거리로 여기진 않았다’고 항변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무런 생각없이 그저 경찰이 공개하면 공개하는 대로 비공개하면 비공개하는 대로 따르기만 하는 지상파보다 나아 보이기도 한다. 최소한 수사기관의 자의적 판단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언론매체를 통한 범죄자 얼굴 등 신상정보 공개 여부는 수사기관의 결정과 별개로 접근해야 할 문제다. 언론보도가 제2의 피해를 양산시킬 수 있고 더욱 확대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단지, 수사기관의 자의적 판단에 대해서만 문제제기 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내 눈'에는 '남의 잘못'만 커보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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