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가 이실직고를 하지 않을 때, 알듯 말듯 말을 흐릴 때, 수사관은 참 답답하다. 그러다가 실수로, 혹은 거짓말을 변명하려다, 유도질문에 본의 아니게 진실을 말하는 경우가 있다. 요즘 한나라당이 꼭 이 모양이다. 너무 거짓말을 많이 해서 앞에 거짓말을 방어하다 뒤에서 앞말을 씹어 먹고 있다.

재벌과 조중동에 지상파방송, 보도전문채널, 종합편성채널을 허용하는 방송법, 신문법 개악안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다 보니 속된 말로 ‘삑사리’가 절로 난다. 자기네들끼리도 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고 개인도 앞말이 다르고 뒷말이 다르다가 마침내 진실을 실토하기에 이르렀다.

▲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왼쪽) 정병국 의원(오른쪽)ⓒ여의도통신
제일 먼저 실토한 이는 한나라당 문방위 간사 나경원 의원이다. 나 의원은 방송법 개정안 발의전 MBC <100분 토론>에 참석해 신문·방송 겸영은 여론의 독과점을 우려해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지난 1월 22일 ‘미디어관련법 개정안 공청회’에서 “당시에는 지상파방송까지 신문과 대기업에 풀게 되면 지나치게 한꺼번에 규제를 푸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종합편성PP와 지상파 방송의 차이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종편만 규제를 풀 경우 오히려 지상파 방송에 대한 규제가 형평적이지 못하다는 판단을 했다”며 말을 바꾼 이유에 대해 해명했다. 한나라당의 양다리 걸치기를 자인한 셈이다. 지상파와 종편, 보도채널 모두를 던져놓게 지상파에 대한 반발이 거세면 보도, 종편으로 방향을 틀겠다는 속셈이었다. 이미 나 의원 스스로 지상파와 종합편성은 차이가 없는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자백한 터다.

다음으로 정병국 의원의 커밍아웃은 반대진영의 집요함에 굴복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정 의원은 두 가지를 실토했다. 첫째 재벌방송, 조중동방송의 실체는 한나라당이 떠들어대는 것과 같은 경제적인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한나라당은 방송법이 개정되면 생산유발효과 2조9천억원과 새로운 일자리가 2만1천여개나 생긴다며 경제난 타계를 핑계로 속도전을 불사했다. 그러나 KISDI의 한나라당 청부 보고서가 발표되자 일자리 창출은커녕 오히려 줄어든다는 반박이 각계에서 줄을 이었다. 지난 2월 3일 방송학회 토론회에서 국민대 이창현 교수가 일자리 2만개 생기는 것은 좀 과장 됐다고 말하는 것이 어떠냐고 정 의원을 압박하자 정 의원은 평소답지 않게 너무 흥분한 나머지 “언론법 개정안의 접근 취지는 여론의 다양성을 어떻게 확장하느냐는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산업적 효과는 부수적으로 봤다. 이상한 논리로 역전되어 전개되고 있다”고 발언해, 사실상 글로벌 미디어그룹의 출현 유도와 일자리 2만개 창출은 쇼라는 것을 실토했다.

▲ 경향신문 2월4일자 23면
결국 경제적인 효과로 글로벌 미디어그룹 출현 유도와 일자리 창출은 거짓말이고 ‘여론 다양성 확보’가 목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정 의원이 말하는 ‘여론다양성 확보’는 보편적으로 이해하는 우리 사회 다양한 의견이 유통되는 통로의 확보가 아니다. 지상파 방송의 힘빼기, 세력약화를 ‘여론 다양성 확보’로 포장한 것이다. 한나라당과 정치적 궤를 같이하는 재벌과 조중동에게 또다른 지상파방송이나 전국적인 종합편성채널을 허가해서 한나라당에 대한 지상파방송의 비판적 힘을 분산시키는 것이 한나라당식 여론 다양성이다.

둘째, 정 의원은 재벌과 조중동에 전국적인 방송을 허용하겠다는 뜻을 확실히 했다. 2월 5일 정 의원이 위원장으로 있는 한나라당 미디어산업발전특별위원회가 주최한 공영방송법 토론회장에서 정 의원은 KBS, MBC의 소유구조에 절대 손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방송법 개악안에는 재벌과 조중동이 지상파 방송의 지분을 20% 소유할 수 있도록 하여 정 의원의 주장에 설득력이 없다고 하자 한나라당이 생각하는 것은 재벌과 대기업에 서울, 수도권 방송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IPTV 등과 경쟁해야 하는 지역 지상파방송의 생존방안으로 재벌이 지역방송에 투자할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지역방송을 살리고자 한다고 했다.

즉 지역 지상파방송을 재벌과 조중동에게 주겠다는 뜻인데, 한번 비틀면 한나라당이 방송법과 신문법을 개정해서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분명해진다. 세상에 선한 자본은 없다. 지역방송은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현상유지도 어렵다. 이익 없는 지역방송에 자본 투자는 없다. 산업으로서 방송은 직접자본 투여로 살아날 산업이 아니다. 주변산업의 성장으로 공생하는 처지다. 한나라당의 목적은 전국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방송을 위해 변죽을 건드리고 있다.

또 하나, 지역방송이건 전국방송이건 한나라당의 목적은 분명하다. 방송을 재벌과 조중동에게 쥐어줘 함께 권력을 오래도록 누려보자는 것이다. 재벌과 조중동에게 전국방송은 반발이 심하니 줄 수 없고 힘없는 지역방송을 던져 주고자 하는 것은 또다른 지역홀대다. 지역방송은 재벌을 대변하고, 조중동의 논조를 확산시키는 도구가 되어도 괜찮다는 뜻인가? 방송언론은 구역에 관계없이 자본과 정치권력에서 독립해야 한다.

강승규 의원은 신문기자 출신답게 좀더 솔직한 대답을 내놓았다. 강 의원은 2월 10일 국회 토론회에서 대기업이 언론 소유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미디어에 우리사회의 권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나라당이 재벌과 족벌신문에 우리사회 권력을 나눠주려는 뜻임을 분명히했다. 그러면서도 지금은 시대가 달라져 권력으로서 신문이나 방송에 대한 대기업의 투자 요인은 거의 사라졌다고 첨언함으로써 여전히 한나라당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게 했다.

KISDI의 보고서가 엉터리라는 것은 이미 밝혀졌다. 또 재벌과 조중동이 지역방송에 관심 없다는 것도 명백해졌다. 한나라당에서 언론악법을 주도한 세 의원은 비자발적으로, 누구나 알 수 있는 언어로 커밍아웃을 했다. 즉, 보도는 권력이다. 그 권력을 한나라당의 정치적 동지에게 나눠주어야 한다. 기왕 줄 거면 잔챙이가 아닌 전국방송이어야 한다는 것. 나눠줄 때는 아무도 모르게 경제 살리기, 일자리 창출, 글로벌 미디어그룹 탄생, 여론 다양성 확보로 포장해야 한다는 것.

한나라당의 마지막 커밍아웃은 이래야 한다. “간악한 요설로써 국민들을 속이려 했습니다. 글로벌 미디어 그룹과 일자리 창출, 경제 살리기는 다 거짓이었습니다. 언론을 장악해서 영구집권을 꿈꿨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언론노조는 지난 총파업에 이어, 이번 2월 임시국회는 물론 신문법·방송법을 개악해 재벌방송·조중동방송을 탄생시키려는 한나라당의 기도를 모든 역량과 방법을 동원해 저지할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해둔다.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최상재)은 전국 150여개 언론사 노동조합과 조합원 1만8000여명이 속한 전국 단위의 산별노조입니다. 분야별로는 신문, 방송부터 인터넷매체, 출판, 인쇄, 광고, 언론관련기관까지 다양합니다. 언론노동자의 권익 향상은 물론 언론자유 및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며 싸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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