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케이블 업계 3위 딜라이브(구 씨앤앰)는 지난 4월 6일 사명 변경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그리고 딜라이브는 이날 행사에 참석한 기자들에게 아웃도어업체 네파의 가방을 선물했다. 이 가방의 소비자가는 13만8천원이다. 기자들은 밥도 먹고 가방도 챙겼다. 좋지 아니한가.

#2. KT는 4월 20일 서울 앰배서더호텔에서 드림웍스채널 독점런칭 관련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KT는 기자들에게 호텔밥을 대접하고,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인형들과 올레TV 쿠폰 3장을 줬다. 한 달 통신비를 한 시간만에 돌려받은 꼴이다.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3.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은 출입기자들을 몇 그룹으로 나눠 같이 밥을 먹는다. 16일에도 오찬이 열리는데 장소는 복집이다. 4월 7일 열린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는 한정식집서 열렸는데 객단가는 1만8천원이었다(술 제외). 밥과 술은 세금으로 먹어야 제맛 아니겠는가.

기자랍시고 밥과 차와 술을 얻어먹고 선물을 받는다. 사례를 들자면 끝이 없다. 정부부처와 기업이 기자회견, 기자간담회, 기자설명회를 왜 식사시간만 골라서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낮 2~3시에 두어 시간 진행하면 더 진지하고 폭넓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데도 말이다. 쇼핑백을 왜 준비하는지도 모르겠다. 기자도 월급받는 사람인데 말이다.

이런 질문도 할 수 있다. 기자는 왜 밥과 술을 얻어먹고 다니고 선물을 챙길까. 기자는 평소에도 많은 ‘호의’를 받는다. 취재할 때가 그렇다. 기자는 출입처를 찾아가 스스럼없이 ‘소문이 사실인지 확인해 달라’고 요청한다. 부조리나 비밀이 기사화되는 것을 무서워하는 기업과 정부부처는 최대한 낮은 자세로 기자를 응대한다. 5인 미만의 인터넷신문사의 기자에게도 말이다.

그런데 언론은 아직도 목마르다. 국회가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키고, 정부가 시행령안을 입법예고하자 언론은 또 노골적으로 불만을 쏟아냈다. 국민권익위원회(위원장 성영훈)가 9일 내놓은 시행령안은 공직자, 사립학교 교원, 언론인이 받을 수 있는 음식물, 선물, 경조사비의 가액기준을 정했는데 음식물은 3만원, 선물은 5만원, 경조사비는 10만원이다. 음식물과 선물을 함께 수수(收受)한 경우는 5만원, 부조금을 선물·음식물과 함께 수수한 경우 10만원이다.

시행령안이 이대로 확정되고 오는 9월 28일 김영란법이 시행된다면, 이후 기준가액을 초과한 식사, 선물, 경조사비를 수수하거나 한 번에 100만원이나 1년에 300만원이 넘는 향응을 받은 공직자, 교원, 언론인과 이들의 배우자는 물론 금품을 제공한 사람까지 처벌을 받게 된다. 수위도 세다.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권익위는 13일 이 시행령안을 입법예고하고, 이후 40일간 공청회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한 뒤 시행령을 확정할 계획이다.

이에 대한 보수언론의 반응은 ‘불만’ 그 자체다. 애초 언론은 민간인인 언론인까지 이 법의 적용대상으로 삼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반발을 해왔다. 한국기자협회와 대한변호사협회는 김영란법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그러나 김영란법에 언론인이 포함되는 것이 맞다는 여론이 압도적이었다. JTBC는 지난 3월 리얼미터에 의뢰해 전국 19세 이상 남녀 500여명에게 의견을 물었는데 응답자의 69.8%가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그래서 김영란법에는 언론인이 포함됐다.

여론이 언론인에 대한 불신을 보여주고, 법률이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보수언론은 다시 칼을 빼들었다. 심지어 김영란법 시행령안이 확정되면 내수가 위축될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쓰고 있다. 중앙일보는 10일자 사설에서 김영란법의 근본 취지에 찬성한다면서도 적용대상에 사립학교와 언론사를 포함한 것을 과감히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10일자 신문에서 ‘기자와 취재원이 함께 골프를 칠 수 있나’라는 자문자답 기사를 내놨다.

언론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이다. 동아일보는 <朴대통령 지난달 “경제위축 우려”… 수정론 힘받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지난달 26일 박근혜 대통령이 언론사 보도·편집국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영란법이) 이대로 (시행)되면 우리 경제를 너무 위축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속으로 많이 했다”고 발언한 것을 언급하며 국회가 법률을 바꾸고, 권익위가 시행령을 수정할 가능성을 띄웠다.

또한 언론은 헌법소원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조선일보는 “헌법재판소는 민간 포함 조항에 대한 위헌 여부를 심리해 9월 이전 발표할 예정”이라며 “위헌 판결이 나면 법을 고쳐야 한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법 시행까지 5개월도 남지 않았는데도 헌법재판소는 결정을 미루고 있다”며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시행령은 물론 법까지 고쳐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헌재의 신속한 결정이 필요한 이유다”라고 주장했다.

언론이 중요하게 지적하지 않는 사실 중 하나는 시행령안의 내용이 예측보다 후퇴했다는 것이다. 현행 공무원 행동강령 기준(음식물 3만원 이하, 경조사비 5만원 이하, 선물은 수수 금지)보다 경조사비 기준을 완화했고, 선물 수수 금지는 완전히 풀어줬다. 강연의 경우, 장관급은 시간당 40만원에서 50만원, 차관급은 30만원에서 40만원, 4급 이상은 23만원에서 30만원으로 그 기준이 완화됐다.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직원이 외부강연을 할 경우, 직급과 관계없이 시간당 100만원이다. 실비로 지급한 교통비는 제한이 없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음식물·선물 등의 가액기준과 관련해 대국민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자료=국민권익위원회.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이번 시행령안의 내용은 일반 시민들의 기대에 못 미친다. 권익위가 월드리서치에 의뢰해 지난해 7월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음식물·선물 등의 가액기준 관련 대국민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가장 많은 응답자가 적절하다고 판단한 가액기준은 음식물 3만원(46.5%), 선물 5만원(35.3%), 경조사비 5만원(45.5%)으로 조사됐다. 시행령안은 시민들이 생각하는 적정 경조사비보다 많은 것이다.

언론인 2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음식물은 5만원(36.5%)이 적절하다고 꼽은 언론인이 가장 많았다. 10만원으로 응답한 언론인은 27.5%로 3만원(23.5%)이나 7만원(8.0%)으로 응답한 언론인보다 많았다. 선물은 10만원(42.5%) 5만원(28.5%) 3만원(15.0%) 7만원(6.5%) 순이고, 경조사비는 10만원(52.5%) 5만원(26.0%) 20만원(10.0%) 7만원(6.0%) 순으로 조사됐다.

지금 언론의 요구는 김영란법 적용대상에서 언론인을 아예 빼달라는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경제 활성화를 위해 상한선을 올려달라는 것이다. 기업과 정부부처가 기자들에게 돈을 뿌릴수록 이들의 관계는 끈끈해진다. 물론 대다수의 기자들은 비싼 음식과 고가의 선물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기업과 정부에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한정식, 가방, 상품권, 골프 말고 차 한 잔 하면서 이야기하자고 말이다. 5만원짜리 밥을 얻어먹고 10만원짜리 선물을 받아야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는 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언론이 김영란법에 불만을 갖고 호들갑 떨수록 언론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만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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