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2일 대한축구협회 대의원총회에서 제51대 대한축구협회장으로 당선된 조중연씨는, ‘주변 분들의 고견을 듣겠다’는 각오와는 다소 다르게, 갑작스러운 월드컵 유치신청을 발표했다. 그 때가 2월 3일이었다. 이미 2002년 한 때, 월드컵의 마력과도 같은 힘을 경험한 적이 있던 우리로선, 반길 만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과연, 그게 꼭 반길 만한 일일까 싶다.

월드컵, 그 땐 그랬지…

2002한일월드컵 당시로 돌아가보자. ‘그 땐’ 참, 행복했다. 뭐, 온 국민이 행복했던 것 같았다. 지나고 난 뒤 다소 허탈한 맘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특히 스페인전에서 홍명보의 페널티킥 마지막 순간엔 생판 모르는 옆 자리의 여성과 포옹까지 하는 ‘고마운’ 경험도 했었다. 그 누구보다 재미있게 월드컵을 봤고, 즐겼던 나였더랬다.

‘그 땐’ 각 지방마다 월드컵 구장 짓는다고 해서 정말 ‘좋았다.’ 내가 살고 있는 대전지역에도 하나 들어섰다. 대전월드컵구장. 경기장이 지어지기 전 보여주는 조감도에 난 ‘뻑’ 갔다. 와우, 이런 게 우리 시에 들어온다 이거지? 그럼 여기서 시민들 축구도 하고, 소풍도 하고,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레스토랑에서 밥 먹고, 영화도 보고, 뭐, 이런 거 할 수 있는 거지? 와우, 쩌는데. ‘그 땐’ 그랬다.

월드컵 광풍이다 뭐다 해서 진짜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빨간 티셔츠 입고, 경적 소리도 ‘빠빠빵~빵~빵’이었으며, 여자 꼬실 땐 월드컵‘만’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일상의 대화는 경기에서 누가 이길지, 경기는 언제인지, 선수들은 어땠는지, 히딩크 정말 짱이라든지, 뭐, 이런 거였다. 일상의 대화는 축구 이외의 그 무엇도 허용되지 않았던 그 시절, 시간도 금방 갔더랬다. ‘그 땐’ 그랬다.

‘그 땐’ 시청 앞 광장이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우리뿐 아니라 해외언론도 놀랐다. 도대체 이렇게 많은 인파들이 모이면서도 이리도 정갈스럽게 안정적일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국민 모두가 ‘하나’될 수 있었던 것 역시 놀라움 그 자체였다. 물론, ‘그 땐’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비리사건들도 많이 터졌던 상황에서 국민들 심기가 불편하기도 했었지만, 월드컵 때문에 ‘그 땐’ 그 딴 거 다 잊어버리고 즐겁게 축구생각에 행복해 했었다. 여중생이 장갑차에 깔리고, 서해교전에서 군인들이 사망하는 안타까움도 있었지만, 뭐, 골치 아프게, 내 일도 아닌데, 그냥 즐겁게 축구만 보고, ‘그 땐’ 그랬다.

월드컵 향수병, 다시 한 번 느껴보자?

▲ 2월 5일자 동아일보 20면 기사.
‘그 때’가 그리워서 그랬던지, 이번엔 단독으로 월드컵을 유치해보겠다고 한다. 2018년과 2022년에 말이다. 유치신청이 늦어져 마치 ‘일본이 하니까’ 따라 하는 꼴이 되어 일본 네티즌들에게 ‘스토커냐’는 막말까지 들었음에도, ‘아시아의 프라이드’를 지키기 위해선 이번에 유치해야 한다는 게 조 회장의 ‘방침’인 듯하다. 2010년은 남아공, 2014년은 브라질. 이 때문에 2018년은 유럽 쪽으로, 그리고 2022년엔 아시아권 국가에 배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희망을 가지고, 특별한 비전이나 로드맵도 없이 유치하겠다고 나선 형국이다.

그런데, 유치를 ‘왜’ 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해 별다른 이유가 언급되지 않아 궁금하다. 왜 하려고 하는지? 분열된 축구인들을 하나로 결집시키기 위해서?(동아일보, 2009.02.05, 20면) 그럼, 회식하신 후 노래방에서 진하게 한바탕 노시면 되고. 2002한일월드컵의 향수를 기억하는 국민들에겐 유치 추진만으로도 힘이 되고, 기쁨이 될 것이기 때문에?(한국일보, 2009.02.06, 18면) 언제 우리들에게 물어보셨나. 그런 거 아니라면 축구 인프라 구축과 유소년 축구와 같은 풀뿌리 축구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인가? 그건 진짜 아닌 것 같고.

특별한 이유나 명분이 없으니까 자꾸 일회성 쇼다, 정몽준이 대선 노린다, 조 회장이 임기 내 대박 터트리려고 한다는 ‘뒷담화’가 나오는 거 아니겠는가. 유치 신청한 거에 대해서 난, 그 이유나 유치 가능성을 막론하고, 회의적인 입장이다. 특히, 현재 있는 경기장에 두 세개를 더 지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누가 감당할 것인지에 대해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10개 구장에 10개를 더 짓는다는 얘기도 들리는데, 농담일거라 생각하고). 내가 월드컵을 유치하려는 시도에 불편해하는 이유는 하나다. ‘지금 낳아 놓은 애들도 기르기 힘든 와중에 또 뭘 어쩌겠다고?’

술 먹고 여성과의 원나잇스탠드를 즐긴 백수. 그 땐 좋다. 그러다 덜컥 애라도 낳아 버리면, 당사자는 어찌할 수가 없다. 애를 버릴 수도, 기를 수도 없는 애매한 입장. 지금 각 지자체의 월드컵 구장들이 딱 이 상황이다. 지역의 인구와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인프라의 구조가 마련되지 못한 상황에서 급하게 지자체가 구장건설권을 따오려 한 ‘막가파’ 행정 덕분이었는데, 그나마 인구나 구조 조금 되는 서울상암구장만 살아남고 있는 실정이다.

▲ 2월 6일자 한국일보 25면 기사.
지금 있는 애들 관리는 어떻게?

FIFA는 이번 월드컵의 유치조건으로 12개의 운동장을 제시했다. 개회식과 폐막식 때 8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구장 하나에 기본적으로 4만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운동장들, 합이 12개다. 우리는 이 조건을 수용하려면 8만 수용이 가능한 경기장을 하나 짓거나 리모델링해야 한다. 현재는 우리나라에서 관중수용력이 가장 높은 대구스타디움(6만5857명)을 개조하겠다고 하는데, 수천억원의 신설자금이 없는 상황에서 그 방법밖에는 대안이 없는 듯하다. FIFA가 그걸 인정해줄지도 의문이지만. 지금까지 서울상암월드컵구장이 제일 큰 걸로 아셨던 분들, 참고로 6만4677명 규모다.

그렇다면, 우리는 월드컵을 단독으로 유치하기 위해서 세 개 내지 많으면 네 개를 더 지어야 한다. 하지만, 어느 시도에? 지금 서울만 빼놓고는 모두 만성 적자인데. 참고로, 얼마나 적자를 겪고 있는지 감이 잘 오지 않는 분들을 위해 내가 살고 있는 대전월드컵구장의 자료를 간략하게 소개해드린다. 전국의 모든 자료를 알아보면 좋으련만, 내 정보력의 한계로 인해 이것만 소개한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2002년부터 지난해 2008년까지 7년 간 대전월드컵구장의 운영적자는 91억원이다. 7년 동안 경기장 운영을 위해 총 지출된 금액이 122억원이었는데, 7년으로 나누면 연평균 18억원이 조금 안 되는 금액이다. 이는 아마 다른 지역도 별반 차이가 없을 듯싶다. 그렇다면 운영수지를 맞춰보려면 수입내역이 있어야 할 텐데, 7년 간의 총 수입액은 겨우 31억원이다. 총 91억원의 운영적자를 7년 간 시가 부담해 왔던 것이다.

이러한 적자를 대전광역시시설관리공단의 운영능력 부족으로 보면 안된다. 왜냐하면 대전광역시는 그 애매한 조례로 인해 구장 내의 수익사업을 하기 어렵게 되어 있고, 또한 대전시티즌이라는 축구팀이 ‘시민구단’인지라 임대료나 사용료 등을 전혀 내지 않는 것도 이러한 적자운영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경기장 입장료도 조례 문제로 경기장 측에서 모두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내부구조적인 문제도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인구의 문제고, 그 인구를 활용할 수 있는 대안과 비전 부재의 문제였다. 너무 급하게 입지를 선정하고, 이 건물에 무엇을 집어넣을 것인지에 대한 장기적인 대책이 없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였던 것이다. 이는 대전 뿐 아니라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다른 시도 역시, 알아본 바로는 평균 8억에서 10억 정도의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애 그만 낳을까?

정 애를 더 낳고 싶다면, 애를 어떻게 기를 것인지, 명확한 비전과 계획을 가지고 출산계획 짠 후 낳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번 유치신청을 하겠다고 나서는 모양새를 보니 이번에도 ‘후다닥’ 식으로 처리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유치신청을 논의하는 과정이 생략됐기 때문이다. 신문선 명지대 교수는 이와 관련해, “유치 신청을 논의하는 과정과 절차가 없었던 점에서 어떠한 특정한 목적과 배경, 계산이 깔린 것이 아니겠느냐”는 의견(경향신문, 2009.02.04, 스포츠 면)을 피력한 바 있는데. 모르겠다. 정몽준씨의 다음 대권도전의 정치적 발판이 그 배경인지, 아님 다른 그 무엇이 있는지.

차라리, 애를 낳을 거라면, 튼실한,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애를 낳는 게 좋지 않을까. 어차피 우리나라는 기후의 문제로 천연잔디에서 공을 차는 건 어렵고. 때문에 지금 있는 월드컵경기장은 소수의 선수들을 위한 ‘박물관으로서의 축구장’으로 남아있을 뿐인데. 단지 1회성 경기장은 K리그와 같은 프로리그를 위해서만 쓰일 뿐일 텐데. 그럴 바엔 천안에 대규모로 건설된 축구센터처럼 일반인들을 위한 인조잔디 형식의 축구장을 만드는 것이 오히려 더 환경친화적이고, 건강중심적이며, 국민지향적인 출산계획이 아닐까 싶다.

주말만 되면 발 들이댈 틈도 없이 수많은 인파로 꽉 찬 축구경기장. 내 차례가 언제인지 몸을 풀면서 앞의 시합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열의에 찬’ 축구광들. 주말리그 참가를 기다리면서 평일 내내 가슴 설레며 지내는 아이들. 월드컵 같이 ‘쇼’말고, 진짜 우리가 스스로 땀 흘리면서 뛰어놀 수 있는 이런 축구장 몇 개 더 만드는 것이 나라 발전을 위해 더 좋은 거 아닐까?

월드컵 유치, 재고해보시길

얼마나 훌륭한 계획과 전략을 가지고 유치를 추진할 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2020년 하계올림픽 유치를 선언한 부산시와 2018년 동계올림픽 3수를 신청한 평창에 이어 대한축구협회의 2022년 월드컵 단독개최 신청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바야흐로 스포츠메가이벤트 강국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메가이벤트가 강한 국가가 국력이 강한 국가가 되는 것도, 그 국민들이 행복해하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마치 그것이 우리가 진정한 강국이 되는 것으로 착각한다.

한번 물어보자. 2002년 이후 한국 축구가 더 좋아졌나? 아닌 것 같다. 그럼 운동할 수 있는 제반 여건이 더 훌륭해졌나? 그건 더더욱 아닌 것 같다. 그것도 아니라면, 삶의 질적인 차원에서 뭔가 좋아진 것이 있나? 글쎄다. 뭐 하나 나아진 것은 없는 것 같건만, 왜 그리 이런 메가이벤트 같은 쇼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다, 놀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없는 곳에서 살아왔던 우리들의 삶의 조건 때문이었으리라.

잠깐 말이 딴 데로 갔다. 이번에 월드컵을 유치하겠다고 나서는 대한축구협회,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해 조중연 회장의 의도가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젠 월드컵과 같은 메가이벤트 쇼에 치중하기 보단 우리가 사는 주변 공간에서 공 차고 즐겁게 놀 수 있는 ‘삶의 조건’을 형성하는데 더 신경을 써줬으면 한다. 월드컵 유치건, 다시 한 번 재고해보고, 진짜 명확한 대안이 나오지 않는다면 신청 철회하셔도 된다. 그렇다고 대한축구협회 욕할 사람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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