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홍진이 의외의 출사표를 던졌다. <추격자>와 <황해>를 내놓은 지라 세 번째로 선보일 신작도 스릴러이겠거니 하고 예상했지만 나홍진 감독은 기존에 익숙한 스릴러 대신 완전히 새로운 장르에 도전했다. 그가 단 한 번도 선보이지 않았던 오컬트라는 새로운 영역에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열린 결말이라 보는 이마다 결말에 대한 해석이 엇갈릴 듯하지만, 오컬트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한 나홍진의 결과물은 기대 이상이었다.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이후 두 번째로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된 <곡성>은 무속이라는 한국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 동시에 해외 관객, 특히 기독교나 가톨릭 문화에 익숙한 서구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코드를 영화 안에 삽입한다. 그 코드는 나홍진 감독의 전작인 <추격자>나 <황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성서적인 코드다.

영화 <곡성> 스틸 이미지

<곡성>에 함의되어 있는 기독교적 코드를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한에서 몇 가지를 살펴보자.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누가복음을 자막으로 보여준다.

“그들은 놀라고 무서움에 사로잡혀서 유령을 보고 있는 줄로 생각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희는 당황하느냐,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을 품느냐,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너희가 보다시피 나는 살과 뼈가 있다”

이 구절은 예수가 부활한 것에 대해 반가워하기보다는 유령인 줄 알고 공포에 사로잡힌 제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스승의 되살아난 육신을 만져 보라고 하는 구절이다. 그런데 이 누가복음의 구절을 영화 <곡성>은 수미상관의 방식으로, 앞에 보여주고는 후반부에 가서 A라는 캐릭터의 입을 통해 다시 한 번 되새기게끔 만드는 방식을 갖는다.

영화 <곡성> 스틸 이미지

자신이 진짜 악마라면 만질 수가 없는 허깨비이겠지만, 자신은 만질 수가 있으니 악마가 아니라고 상대방을 안심시키는 발언을 통해 영화는 초반에 제시한 누가복음의 구절을 관객으로 하여금 되돌아보게 만든다. 캐릭터 A의 이런 대사의 의미를 좀 더 고찰해보면 ‘가현설’을 조롱하는 대사이기도 하다. 참고로 가현설은 예수가 이 땅에 육체를 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 단지 육체로 보이는 것처럼 가장했을 뿐이라는 학설이다.

그런데 캐릭터 A의 손바닥을 보면 손바닥 한가운데에 구멍이 뚫려 있는 걸 볼 수 있다. ‘스티그마타’라고 불리는 성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손바닥에 뚫린 못자국이 나타난 것이다. <곡성>은 이런 다양한 가톨릭 또는 기독교적 코드를 영화 안에 심어놓아 서구 관객도 공감대를 형성하게 만드는 오컬트 호러다.

영화 <곡성> 스틸 이미지

<곡성>은 ‘누가 진짜 악마인가’를 관객이 캐내야 하는 추리적 요소도 담긴 영화이다. 단순히 특수효과에만 기대는 오컬트적 요소에만 치우치는 것이 다가 아니라, 누가 마을에 괴상한 역병을 퍼트리는 악마인가를 관객이 유추해야 하는 추리적인 요소도 가미된 영화이기에 <곡성>의 지옥도가 그리는 마지막 장면은, 어지간한 공포영화엔 하품하는 관객이라 할지라도 ‘심장이 쿵’하게 만들 여지가 다분하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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