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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3가 쪽방 김씨의 ‘한 달 살이’[5월은 ‘어떤’ 가정의 달?] 쪽방촌에는 새로운 가족과 공동체가 필요하다
박장준 기자 | 승인 2016.05.07 13:40

그는 피카디리 극장 앞에서 만나자고 했다. 나는 도착해서 허름하고 남루한 옷부터 찾았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많았다. 전화를 한 통 더 했고, 나는 싸구려 슬리퍼를 신고 나온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종로3가의 한 쪽방에 사는 65세 남성 김씨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김씨가 머무르는 쪽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다녀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는 길에 소주 2병과 사이다 2병을 샀다. 안주는 필요 없다고 했다.

궁금했던 것은 하나였다. 어떤 가족을 꿈꾸는지…. 김씨는 십대 후반에 고향을 떠나 서울에 올라왔고, 이후 49년 동안 혼자 지냈다고 했다. 가족 사진이 한 장도 없다고 했다. 그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되기 위해 부모가 남긴 재산을 포기한다는 각서를 썼고, 태어나면서 가졌던 가족과는 연락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했다. 심장이 안 좋고 당뇨도 있지만 그의 원래 가족은 이런 사정을 모르는 것 같았다. 한 평 남짓 작은 쪽방에서 그는 풋고추 하나에 연신 소주를 들이키며 당신의 인생사를 읊었다.

   

김씨는 “내가 어디 있는지 (가족들도) 모르는 사람들”이 이곳에만 240명쯤 된다고 했다. 김씨가 말하는 쪽방 기초생활수급자의 일상은 매달 20일 60여만원의 수급비가 들어오면 24만원짜리 달방의 월세를 내고, 쪽방촌 구멍가게에 달린 외상과 집주인에게 빌린 돈을 갚고, 조건부 수급자는 일주일에 이틀이나 사흘 공공근로를 나가고, 그렇지 않으면 집에서 TV를 보고, 탑골공원과 남대문 같은 곳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전부다.

그를 포함한 쪽방촌 사람들은 오로지 기초생활수급비로만 한 달을 버틴다. 남은 돈 10만원과 외상으로 말이다. “나까마(중간상인)에게 몇 천원 받고 휴대폰을 넘겨주거나, 달건이(동네건달)의 심부름을 하거나” 하는 정도로 소줏값을 번다. 그렇지만 아프면 답이 없다. 그래서 쪽방촌 사람들은 이런 꿈을 꾼다고 한다. “차라리 더 늙어서 기초노령연금까지 더 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는 동사무소와 구호단체에서 나눠주는 쌀과 김치로 하루하루 버틴다고 했다.

사실 수급자가 되는 것도 어렵다. 가족과 인연을 끊어야 수급비를 탈 수 있다. 또 정기적으로 일을 해서 소득이 좀 생기면 수급대상에서 탈락한다. 내게 가족은 없고, 나는 아프고, 일할 능력도 없다는 것을 직접 증명해야만 이런 아슬아슬한 ‘한 달 나기’ 인생을 유지할 수 있다. “지금 수급제는 고생하라고 자르고 몸이 아파 사정사정하면 다시 해준다.” 김씨는 “일과 수급 중 하나를 포기해야만 살 수 있는데 지금은 몸이 안 좋아 일을 전혀 하지 못한다. 1년에 한 번씩 진단서를 떼서 증명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애초 김씨는 쪽방과 거리를 오가는 삶을 반복했다고 한다. 지난해 4월까지 남대문 지하상가에서 지내다가 종로3가로 돌아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리어카를 끌고 폐지를 모아 팔거나, 고물상에서 일당 5만원을 받고 일을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몸이 좋지 않아 아예 일을 못한다고 했다. 그가 머무는 쪽방에는 구두와 안전화가 있었는데 거의 새것이었다. 그는 “멋 낼 일도 없고, 일도 못한다”고 했다. “몸이 좋아지면 다시 저 신발을 신을 수 있겠지….” 그는 이렇게 말했다.

청량리와 미아리에 있는 병원의 간호사들에게 “술을 끊으라”는 이야기를 듣는 일이 그가 지금 경험하는 가장 적극적인 관계인 것 같았다. 다들 형님, 동생하면서 지내고 종종 함께 술을 마시지만 서로의 사정은 잘 모른다고 했다. 홈리스행동과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들,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들이 간혹 만나기는 하지만 그가 사랑방과 동사무소에 직접 찾아가지 않는 이상 사람들을 만날 일은 없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가 걱정됐다. 그에게 가족이 없는 것도, 몸이 좋지 않은데도 소주를 들이키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나는 그에게 “가족이 그립지 않나” 물었다. 그는 “정이 그립다”고 했다. 그는 “(홈리스행동 활동가인) 달자, 동현이가 내 가족이다. 맨날 보고싶다”고 했다. 남대문 지하에 있을 때 두달치 월세를 건네며 “방에 들어가라”고 했던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활동가 선미와 윤혁도 보고싶다고 했다. “내 번호는 평생 그대로니까 연락을 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쪽방촌에는 새로운 가족과 공동체가 필요하다. 김씨는 “술 말고 얘기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 사회가 이런 위태로운 ‘한 달 살이’를 ‘도덕적 해이’라고 비난하는 것이 바로 ‘윤리적 해이’ 아닐까. 그럴 시간에 자신이 가난하고 건강하지 않고 가족도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이런 복지제도를 바꾸는 게 낫다. 그는 “같이 살고 싶다”고 했다.

 

 

박장준 기자  weshe@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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