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들이 경기 서남부 지역 연쇄살인사건 피의자 강아무개씨의 얼굴을 공개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언론의 피의자 얼굴 공개는 언론사 내부 지침을 따르거나, 언론윤리강령에 따라 자율적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9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2층에서 열린 ‘언론의 범죄피의자 얼굴 공개와 인권에 관한 라운드 테이블’에 참석한 토론자들은 언론의 얼굴 공개가 각 언론사의 자율적 영역이라는 데 한 목소리를 냈다. 일부 토론자들은 “얼굴 공개가 국민의 ‘알권리 차원’의 핵심은 아니다”면서 언론의 비본질적인 보도 태도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 9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2층에서 ‘언론의 범죄피의자 얼굴 공개와 인권에 관한 라운드 테이블’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송선영
◇ 피의자 얼굴 공개는 언론사 자율

토론회 발제를 맡은 성낙인 서울대 교수는 “이 사건을 계기로 언론사별로 독자적인 논거에 따라 공개와 비공개를 결정하고 이를 실행한 것은 우리 사회가 다원적 의사를 수렴해 가는 성숙한 과정을 보여준 것”이라며 “앞으로 이 문제는 법의 잣대보다는 언론보도윤리강령을 통해 점진적 합의를 도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도 “언론 보도의 경우, 피의자 인권이 침해되고 무죄 추정의 원칙에 반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자율적인 자체 강령을 통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얼굴 공개가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소송 판례가 언론사 내부 지침 혹은 교육을 통해 홍보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호 한국기자협회장도 “어느 부분까지 공개할 것인가는 언론사, 기자들의 판단에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며 “공론화 과정을 거쳐 언론사가 결정을 하고, (얼굴 공개에 따른) 법적 책임 부분은 법원에서 판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정정훈 변호사는 얼굴 공개에 대한 언론의 자율적 판단 주장에 문제를 제기했다.

정 변호사는 “언론은 보도함에 있어 가치 판단을 할 수밖에 없고 이런 것들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수사기관은 구체적 물증, 자백이 있더라도 확정 판결 이전까지는 피의자로 수사해야 한다”며 “수사기관은 오히려 강아무개씨를 피의자로서 존중할 필요가 있기에, (이런 가운데) 언론의 자율적 판단은 위험한 측면이 있다”고 반박했다.

◇ 조선일보 “인권보다는 ‘알권리’”

이날 토론회에서는 강아무개씨의 사진을 공개한 조선일보와 얼굴 공개의 부작용을 우려해 얼굴을 공개하지 않은 한국일보 관계자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 정권현 조선일보 사회부 차장. ⓒ송선영
정권현 조선일보 사회부 차장은 “얼굴 공개는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언론사 자율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언론사는 경찰이 마스크로 피의자를 가리더라도 이슈라고 생각하면 사진을 입수해 실어야 한다”며 “인권 보도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데, 이를 수용하는 것은 과거 선배 언론인들이 쟁취해 온 언론 자유를 스스로 목조르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는 “경찰이 사법적 판단을 할 수 없는 국가인권위원회 권고를 수용한 것(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이 오버”라며 “지난 2004년 이전에는 흉악범들에 대한 사진 공개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에 대한 논란은 사실 사법기관이 판단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얼굴 공개가 무죄 추정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한다면) 각 경찰서에 붙어있는 용의자 공개 수배 전단도 무죄 추정의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그는 조선일보가 각계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 강아무개씨의 얼굴을 공개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강아무개씨의 경우, 거의 다 성장한 중고등학생 가족이 있었다. 우리가 보도하면서 각계 전문가들에게 물어보니 ‘범죄자 가족들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을 감내해야 한다’ ‘피의자 가족들이 권리 주장하려면 피해자 가족에게 먼저 보상해야 한다’고 말했다”며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 강씨의 얼굴을 공개하는 게 당연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피의자 인권도 중요하지만 공익성도 크기에 연쇄살인범의 경우 신상 공개는 논쟁할 이유가 없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며 “법적 공방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 한국일보 “얼굴 공개 부작용 우려 ‘비공개’”

▲ 김상철 한국일보 사회부 차장. ⓒ송선영
김상철 한국일보 사회부 차장은 “얼굴 공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충분치 않기에 ‘공론화 과정을 거쳐 합의가 이뤄졌다고 판단될 때 얼굴을 공개해도 늦지 않다’ ‘신중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조선일보가 얼굴을 공개한 뒤 많은 언론들이 공개했지만 언론사마다 충분한 성찰 하에 이뤄진 결정이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언론들이 과거에 그랬고, 저 역시 반성할 부분이 없지 않지만 언론이 대세를 추종하고, 여론에 쉽게 영합하고, 상업적인 부분으로 경쟁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피의자 얼굴 공개가 하나의 사안에 머물지 않고 경쟁적으로 ‘누가 먼저 공개하나’ ‘ 누가 먼저 사진을 입수해 시선 끌 수 있나’에 대한 경쟁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신정아 사건이 단적인 예”라며 “당시 언론들은 보도하는 과정에서 보도해야 할 가치가 공익에 부합하고, 어느 정도 인권을 침해하는지에 대해 신중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이러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지적했다.

◇ 얼굴 공개가 ‘국민의 알권리’ 차원 본질 아니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이번 사건에서 무엇이 국민의 알권리인지 진지하게 논의를 해야 한다”며 “얼굴을 공개하기 보다는 범죄의 양상, 범죄가 일어날 수 있었던 사회적 요건, 주의해야 할 점 등을 언론이 이끌어나가는 게 진짜 알권리 차원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피의자 얼굴을 공개하는 게 실익이 있는지를 세심하게 따지는 것이 필요하다”며 “원칙과 절차에 따라 이뤄진 일인지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정훈 변호사도 “‘범죄자와 범죄 사실은 구분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 기준이 이 사안을 바라보는 핵심이 돼야 한다”며 “언론에서 정말 정당한 관심사를 보도하기 위한 기준이 있는지, 이를 공적으로 학인하기 위한 기준이 있는지를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언론이 무엇을 위해 국민의 알권리를 보도하는지 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표창원 교수도 “핵심이 얼굴 공개는 아니다”면서 “(언론이) 무죄 추정의 원칙에 관심이 있다면, 보도 내용 중 ‘살해범’ 등의 표현을 통해 확정되지 않은 혐의를 사실인 것처럼 추정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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