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삼성 비자금 사건 특검보다 훨씬 많은 19명의 검사와 24명의 수사관을 투입하고 내린 결론은 초등학교 자연 교과서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결국 밝혀낸 건 딱 한 가지였다. ‘인화물질은 불에 탄다’는 사실. 그리고, 검찰은 자신과 관련한 하나의 사실을 분명히 확인시켰다. ‘검찰은 뭐든 우려했던 대로 한다’는 것.

▲ 검찰이 용산참사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검찰은 농성자 5명을 구속기소하고 농성에 가담한 15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가담 정도가 경미한 1명은 기소유예 하기로 했다. ⓒ민중의소리
어제(8일)는 <조선일보>마저 “좌파단체들이 ‘재개발 갈등’을 ‘계급 갈등’으로 몰고 가며 활개를 칠 공간이 생겨남”(9일자 조선일보 사설 ‘“너는 목이 철로 됐냐”고 세입자 위협한 철거업체’ 중)을 우려하던 시간이었다. 지난 주말엔 용역업체가 재개발조합/시공사들과 정해진 기한내에 구역 내 모든 건물을 철거하지 않으면 하루 지체보상금을 계약금액의 0.1%, 510만원씩 물어야 하는 계약을 맺었다는 내용도 폭로됐다. 그 비슷한 시간, 검찰도 수사결과를 마지막으로 다듬었을 것이다.

우려들이 많았다. 검찰이 편견, 편파, 편향의 집단으로 변절하고 있다는. 그 우려가 사실이 아님을 증명하려 했다면, 아니 최소한 검찰이 전철연을 테러집단으로 몰고 가며, 김석기 지키기에 국가의 자존심을 걸자는 선동을 벌여댄 조중동의 청부를 받고 수사한 것이 아니었다면. 최소한의 것은 있어야 했다. 그런데 없었다. 아무것도. ‘화재는 화염병과 시너 때문’이고, 기소된 사람 가운데 경찰은 한 명도 없다. 물대포를 쏜 철거용역원들은 기소하면서, 물대포를 쏘도록 시켰거나 방조한 경찰은 무혐의 처리했다. 경찰은 한 식구이거나, 검찰의 수사범위 밖에 있다는 것을 검찰 스스로 입증했다.

그렇다. 검찰의 수사에 포함되어 있는 유일한 사실 관계는 화재물질 때문에 화재가 발생했다는 것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해석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법리적 전문가 집단으로서의 검찰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해석은 ‘공모공동정범 이론’이다. 철거민들이 범죄를 공동으로 모의하고 실행했다는 것, 그래서 기소한다는 것. 그리고 정치적 집단으로서의 검찰의 지향도 녹아있다. 이 정권하에서 경찰의 행위 그러니까 형식적 의미로서의 공권력은 앞으로 무엇을 집행하건 그 내용과 상관없이 언제나 정당하다는.

돈이 있는 곳에 위법이 있고 용역이 있는 곳에 폭력이 있지만, 검찰은 밝혀내질 못한다. ‘공모공동정범 이론’은 경찰에겐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보고를 받고 무전기를 갖고 있었지만 경찰청장은 무혐의이다. 공공에 대한 위험을 방지하려는 경찰 행위의 합목적성이 결국, 가장 시급한 위험에 빠져있던 여섯 생명을 공공연히 방기했지만, 그건 검찰 지배 영역 밖의 문제가 됐다. 검찰은 그 여섯 명이 죽지 않을 수 있었는지, 아니면 죽어도 싼지 판단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죽음에 어떤 사법적 값어치도 매기지 않았다. 사법 영역에서 이런 죽음은 ‘자연사’ (또는 ‘병사’) 다. 과연 그들은 제명만큼 살다 죽었는가?

우린 왜 민주주의를 하는 걸까? 삼권분립 따위를 교과서적 가치로 가르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정보화된 사회에서 미디어의 역할과 한계는 또 어디까지일까? 너무 확연하게 늘어져 있는 사실들 앞에서 검찰의 해석은 단호하게 협소하다.

언어의 오염을 경계하며 한 가지만 정확하게 짚고 가자. 검찰은 “작전수행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선택할지 여부는 원칙적으로 경찰의 ‘합목적적 판단’에 맡겨야 하는 사항”이라고 했다. ‘합목적성’은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상관없다는 뜻이 아니라, 목적에 맞게 수단을 써야 한다는 뜻이다. 경찰의 공권력이 합목적적이었다면, 앞으로 운전할 때 신호정지선을 넘어 정차하려거든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이다. 그럴 자신이 없으면 시민 스스로 공권력이 되는 수밖에. (이건 혁명 선동이 아니라 경찰직에 투신해야 한다는 뜻.)

>>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 검찰 수사 발표에 대한 진상조사단의 입장'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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