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앙일보를 시작으로 10여개에 달하는 전국단위 신문과 지상파 방송들이 군포 등 경기서남부 지역 연쇄살인사건 피의자 강모씨의 얼굴을 연달아 전격 공개했고, 이에 대한 논란은 연일 뜨겁다. 일단 공개된 상태라 물릴 수도 없지만, 공개된 후 언론들과 포털 등은 여론조사로, TV는 토론프로그램 등으로 이 열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 가운데 지난 6일 서울 인사동 관훈클럽에서는 언론인권센터 주최로 변호사와 언론학자 등이 모여 ‘언론의 얼굴공개’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발제를 맡은 송경재 경희대 교수는 “공개 찬반이 본질이 아니다”면서 “대체 언론에게 무슨 권한을 줬기에 자의적 판단으로 공개했는지에 대한 기준과 논의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일부 언론이 예로 드는 미국 등 다른 나라의 사례는 모두 결과론적인 얘기”라면서 “우리 언론들은 과정과 절차 없이, 곧바로 비공개를 뒤엎고 모호한 개념의 ‘공익’을 이유로 공개해버렸다”고 비판했다.

▲ 6일 오후 서울 종로 인사동 관훈클럽에서 열린 언론인권센터의 언론인권포럼 ‘얼굴 공개의 한계선은?-사이코페스 ‘강아무개’를 둘러싼 논쟁’에서 박미숙 박사(형사정책연구원)가 발언중이다.ⓒ정영은
이날 토론자 중 김창룡 인제대 신방과 교수는 영국 등의 예를 들며 ‘조건부 공개’를 주장했다. 즉 연쇄살인범, 흉악범, 아동성폭행범 등은 인권에서 예외로 하자는 것이다. 김 교수는 희생자 유족들의 피해는 피의자 가족들의 불이익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것과 범죄예방효과 등을 근거로 들었다.

뜨거운 이슈라 그런지 사회를 맡은 오미영 교수도 토론에 가세했다. 그는 “범죄자의 얼굴은 분노와 궁금증, 호기심으로 보고싶은 것 아니냐”면서 “언론이 그런 대중의 호기심에 영합한 것이고, 어찌 보면 법 위에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미숙 형사정책연구원 박사도 “우리 사회는 이미 얼굴 비공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지 않았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2004년 국가인권위의 권고와 경찰의 ‘피의자 인권보호수칙’, 서울지법 등의 ‘수사광경촬영 금지’ 판례, 범죄사건 관련 인적사항 공개 금지를 담은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등을 예로 들었다. 사회적 합의의 산물인 법과 제도가 존재하지만, 언론이 갑자기 2009년에 공개해버렸다는 것이다.

이어 박미숙 박사는 “우리나라 성범죄자의 신상공개도 엄격한 절차와 기준에 따라 유죄확정 판결을 받은 자에 한해서 얼굴이 아닌 신상공개 처분을 내린다”며 독일의 예를 들면서 “얼굴 공개는 지난 논의와 역사를 같이 고려해야 한다. 외국 법제도와 규정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김지미 변호사는 “수사단계에서의 얼굴공개는 물론이고 유죄판결 이후의 공개도 사법부 판정 이외의 명예형으로, 이중처벌이어서 반대한다”면서 “피고인과 피고인 가족 등의 인권을 침해한다고 해서 피해자의 인권이 보호받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공개에 따른 범죄예방효과에 대해 “피의자 인권보다는 여죄수사와 목격자 제보 등 수사편의를 위한 논리지만 법에서 고문에 의한 자백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며 “이미 범죄수법과 신상 등이 다 알려진 상황에서 얼굴까지 공개하면, 그 가족들은 나중에 혹시 무죄 판정이 나도 되돌릴 수 없는 피해를 받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김종천 변호사는 “유무죄 여부와 상관없이 얼굴 공개는 다른 측면에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미 체포돼 극형이 예상되는데 범죄 예방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고, 일반인들에게 얼굴을 공개한다고 해서 ‘범죄하지 말아야겠다’고 하겠는가”고 반문했다.

그는 “사형제도의 범죄 억지력에 대한 효과도 의문시되고 있는데, 얼굴 공개로 범죄예방이 되겠느냐”면서 “흉악범죄자의 인권은 보호가치가 없다는 인식은 사형제 존폐에 대한 논의와도 맥이 닿아있다”면서 “결국 언론의 얼굴 공개는 호기심 충족 정도의 기능이다”고 지적했다.

또 헌법상 알권리에 대해서도 “헌법상 알권리는 국가 등 공권력 주체에 대한 권리 행사를 뜻하는 것으로, 사적 개인인 강호순의 얼굴이 궁금하다고 언론이 국민을 대신하여 마스크를 벗기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며 “범죄 행위 자체에 대한 공적 관심이 있다면 범죄수법과 범행동기 등을 알리면 되지, 얼굴에 대한 관심은 정당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송경재 박사는 “사이코패스 등 사회병리적 병폐가 세계적으로 증가추세라면 사회적 예방 대책과 함께 이에 대한 언론보도의 가이드라인 등을 깊이있게 고민해야 한다”면서 “과연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다는 언론사들이 얼마나 알권리와 공익, 인권에 대해 충실히 보도해왔나”고 반문하며 “언론은 인권보호와 민주주의의 퇴행을 불러 올 수 있는, 상당히 위험한 이슈를 성급하게 결정했다”고 비판했다.

▲ 언론인권포럼에서 한 청중이 참석자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있다.ⓒ정영은
그러나 성급한 언론에 대한 참석자들의 날선 비판이, 흥분한(?) 관객들에게까지 전달되지 못한 것일까. 뜨거운 쟁점 토론 후 이어진 청중 질문에서는 다시 신상공개와 별도의 문제인 얼굴공개에 대해 ‘흉악범 얼굴은 공개해야 한다!’는 외침들만 쏟아져 나왔다. 그들 주장의 근거는, 토론회 내내 반박의견이 나왔던 ‘흉악범은 인권 없어도 된다’나 ‘범죄예방효과’, 혹은 ‘외국은 그렇다던데’였다.

토론회는 무섭고 격한 분위기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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