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의 독립영화 보기

독립영화 관련 일을 하면서, 요즘처럼 경사스러운 경우는 처음이다. 이유인즉 1월15일 개봉한 <워낭소리>가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에 연일 독립영화 신기록을 갱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놀랍고, 다른 한편으로는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놀라운 것은 무엇보다 기대이상의 관객반응이다. 소박한 관객수에도 실망하지 않고, ‘또다시 앞으로’를 되뇌던 몹쓸 우직함은 촌스럽게도 이 경사가 조금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반대로 당연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만큼 한국의 독립영화가 손색없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다만 그동안 관객들이 독립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누리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여기서 잠깐 개인사의 샛길로 빠져보자. 내 인생에 첫 독립영화는 단연코 <파업전야>였다. 1990년 제작된 이 영화는 당시 상영금지 처분으로 대학가를 중심으로 상영되어 약 30만 관객을 동원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한참 후에 이 영화를 본 나는 최루탄을 맞으면서 보지는 않았지만, 대신 그 영화를 보기 위해 홍역을 치렀던 선배들의 무용담을 실컷 들어야 했다. 대안적 문화콘텐츠가 빈곤했던 시대 <상계동 올림픽>이나 <파업전야>와 같은 독립영화는, 세상에 대한 다른 시선을 품었던 용기 있던 영화들로,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 주었다.

90년대 중반 이후 나의 독립영화 보기와 활동은 활기를 띠었다. 독립영화를 통해 어렴풋하게 세상을 발견한 나는 그 즐거움을 나누고 싶었고, 독립영화 상영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극장에서 독립영화를 상영할 만한 여건이 마련되지 않아 비극장 상영운동을 했는데, <낮은 목소리>와 같은 작품들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낮은 목소리>의 경험은 <파업전야>의 상영활동을 경험하지 않은 나에게 공동체 상영운동의 유의미성을 일깨워 준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한편 다양한 영화제가 생겨나면서, 독립영화는 다른 방식으로 관객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페스티벌이라는 그릇 속에 정치사회적으로 예민한 독립영화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다양하고 풍부한 표정을 가진 작품들이 담기면서, 독립영화는 ‘영화’로서 점점 더 큰 매력을 안겨 주었다.

2. 독립영화의 즐거움

일반적으로 독립영화는 산업적으로 자본시스템 바깥에서 제작되고 배급되는 영화를 일컫는다. 그러나 독립영화 보기의 즐거움은 독립영화의 물리적 좌표에 의존하지 않는다. 이것은 모든 독립영화가 절대적으로 옹호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독립영화의 매력은 각자 느끼는 것이겠지만, 무엇보다 독립영화 안에 ‘세상’이 오롯이 담겨있다는 것을 꼽고 싶다. 활동가이기에 앞서, 관람자로서 나는, 독립영화를 통해 내가 딛고 서 있는 이 땅 위에 생생한 삶의 온도를 느껴왔다. 그것은 때로는 살갗을 태울 것 같은 아스팔트의 온도였고, 혹은 혹한에 뼛속을 파고드는 얇은 비닐 천막의 온도였다. 지금 이 순간도 도시의 싸늘한 겨울은 누군가에 의해 기록되고 있는지 모른다. 독립영화 역시 보여지는 ‘영화’이지만, ‘영화’가 동시에 또 다른 세상과 만나는 체험일 수 있음을, 나는 독립영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당신이 만약 유명배우와 화려한 스펙터클을 기대한다면, 독립영화는 그 기대를 아마도 충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독립영화의 주인공이 그저 평범한 우리의 이웃, 친구, 가족이라는 사실에, 당신은 아마도 주변을 새삼스럽게 환기하게 될 것이다. 삶 가까운 곳에서 발견하는 진실과 감동이 경쟁 속에서 황폐화된 우리 내면을 치유하는 소중한 선물이 될 수 있음을 당신 역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3. 당신에게 권유하며

그렇다면 가까운 시기, 당신은 어떤 독립영화를 만날 수 있을까. 단돈 천만원으로 제작한 재기발랄한 장편 극영화 <낮술>이 지난 2월5일 개봉하여 관객을 만나고 있는 중이다. <낮술>에 이어 주목받았던 독립영화들이 속속 개봉계획을 발표하고 있는데, 일본 열도를 뜨겁게 달군 정신대 위안부 송신도 할머니에 관한 다큐멘터리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와 가족과 역사의 문제를 함께 사유하는 <할매꽃>이 연이어 개봉을 준비 중이다. 로테르담영화제에서 타이거상을 수상한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도 관객을 만날 채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한다. <워낭소리>에 이어 이 작품들 또한 당신에게 상상한 것 이상의 즐거움을 줄 수 있기에 자신있게 강추한다.

이 영화들을 보고 싶은 당신이 제일 먼저 문을 두드려야 할 곳은 2007년 11월 명동에 자리 잡은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이다. 이곳에서 당신은 365일 독립영화를 만날 수 있다. 개봉 독립영화의 대부분을 관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디스페이스에서 단독 개봉하는 실험적 예술적으로 가치있는 독립영화들도 만날 수 있다. 인디스페이스 홈페이지에는 독립영화 상영 정보가 집적되어 있으니, 개봉영화 외에 독립영화 기획전 혹은 영화제들에 관한 정보도 넉넉하게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발견한 독립영화를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보고 싶다면, ‘공동체상영운동’을 신청해 보는 것은 어떨까. ‘공동체상영운동’은 극장이 아닌 비극장 상영시설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관객운동이다. 이 사업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독립영화배급지원센터에 문의하면 상세하게 알 수 있다.

<워낭소리> 이전에 <송환>, <후회하지 않아>와 같은 작품들이 극장에 개봉되어,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새삼스럽게 강조하자면, 지금의 독립영화의 성과는 한순간 이루어진 게 아니라 오래전부터 조금씩 싹트기 시작했던 것이다. 더디지만, 쉬지 않고, 걸음을 밀어왔던 노력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과거에 만들어졌던 독립영화는 DVD로 제작되어, 관객들과 꾸준히 만나고 있다. 더 많은 독립영화를 찾아보고 싶다면 독립영화 DVD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다.

* 독립영화 관련 주요문의처
(사)한국독립영화협회 : www.kifv.org / 02-334-3166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 www.indiespace.kr / 02-778-0366
독립영화배급지원센터 : www.indiedb.net / 02-778-0366
서울독립영화제 : www.siff.or.kr / 02-362-9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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