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목고 제도의 존폐 여부가 사실상 다음 정권으로 넘겨졌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외고 등 특목고 제도의 존폐 여부에 대해 충분한 여론 수렴과 연구를 거쳐 내년 6월에 결정하겠다고 29일 발표했기 때문이다.

'입시명문고로 변질된 일부 외고 등이 사교육 과열의 주범'이라면서 수개월 동안 대책을 검토해 온 교육부가 당초 방침을 뒤집고 특목고 폐지 결정을 사실상 유보하자 '정치권 눈치보기'라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물론 교육부 방침에 '반대'해온 보수 언론들은 '정권 말기에 당연한 일'이라며 반기는 분위기다.

KBS "교육부 소신없는 행보" 비판, MBC '외고 신설 제한' 초점

29일 KBS와 MBC 메인뉴스는 이 내용을 첫 소식으로 다루며 쟁점화에 나섰다. KBS가 교육부 방침 '유보'에 초점을 맞춰 정부의 태도를 강도높게 비판했다면 MBC는 외고 신설 추진이 제한되는 점을 이슈로 삼아 차별화를 꾀했다.

▲ 10월29일 KBS <뉴스9>(왼쪽)와 같은 날 MBC <뉴스데스크>(오른쪽).
KBS <뉴스9>는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스스로 특목교 폐지를 들먹였던" 교육부의 소신없는 행보를 강도높게 문제 삼았다. KBS는 "정권 말기에 접어들어 교육부에 힘든 숙제들이 떨어지고 있지만 소신없이 손댄 정책들이 잇따라 헛발질로 끝나고 있다"며 "정권 말기에 쫓기듯 밀어붙인 교육정책이 오락가락하면서 교육부에게 백년대계를 맡겨도 될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MBC <뉴스데스크>는 이미 외국어고등학교가 설립된 지역에 대해서는 추가 신설을 허가하지 않겠다는 교육부 방침을 쟁점으로 뽑아올렸다. MBC는 "현재 외고가 있는 서울, 경기 등 수도권 지역과 부산, 경남 등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외고 신설이 불가능하게 됐다"며 "현재 각 지자체가 추진 중인 외고는 전국적으로 수십여 개, 이미 개교 일정을 잡은 것만 9개여서 상당한 마찰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MBC는 이어지는 꼭지에서도 '우리나라의 사교육비가 OECD 국가 가운데 1위이며 OECD 평균보다 4배 높다'는 사실을 보도해 앞서 다룬 '외고 문제'와 사교육비 문제를 연결시키는 구성을 선택했다. 그렇지만 '정치권 눈치보기'라는 비판까지 사고 있는 교육부의 특목고 폐지 유보 방침의 배경이나 문제점은 비중있게 다루지 않았다.

SBS, 단순 전달에 그치고 분석·쟁점은 빠져

▲ 10월29일 SBS <8뉴스>
반면 SBS는 MBC처럼 특정 이슈를 '선택'해 쟁점화하거나 KBS처럼 정책 과정과 내용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보단 평이하게 나열하는 '쉬운' 방식을 택했다. 이번 교육부 대책만 '알맹이'가 없는 것이 아니라 SBS 보도에도 '알맹이'가 빠져버린 셈이다.

"현행 외고의 존폐 여부는 내년 6월 말 최종 결정됩니다. 외고와 국제고를 통합해 특성화고로 전환하는 방안과 그대로 유지하는 방안이 검토됩니다. 따라서 외고 신설은 유보되며 다만 현재 외고가 없는 시,도에 한해 제한적으로 신규 지정을 협의합니다. 반면 특목고 입시제도는 다음 달부터 대폭 손질하기로 했습니다. 우선 내년부터 입시와 무관한 구술면접을 없애고, 교과과정을 편법운영할 경우 지정 취소를 요구하기로 했습니다. 이 밖에 과학고와 예술,체육고는 2009년부터 영재학교로 전환됩니다. 한편 수월성 교육을 확대하기 위해 내년부터 일반고와 전문계 고교에서 학년당 2과목 이상, 과목별 3단계에서 4단계로 수준별 학급이 운영됩니다."

이처럼 SBS는 교육부가 발표한 내용을 단순히 소개하는 수준에 그치면서 이번 정부 대책이 가진 문제점이나 향후 쟁점 사항이 무엇인지에 대한 분석은 하나도 다루지 않았다. "현재 외국어 고등학교가 계속하여 특수 목적고로 유지되기를 강력히 요청한다"는 외고쪽 입장과 "실패한 특목고 정책에 대한 대책은 없고, 오히려 평준화를 와해하고 정권말기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물타기 방안을 내놓았다"는 전교조쪽 반응으로 구색을 맞췄을 뿐이다.

특정 나무만 골라 조명을 한다고 해도 그 나무가 딛고 서 있는 숲 전체를 비춰보지 않으면 그 나무를 제대로 봤다고 말할 수 없다. 숲 전체를 봐도 나무 하나하나를 자세하게 들여다 보지 않으면 세세한 결을 놓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SBS 보도는 '알맹이'도 없었고, 나무와 숲 어느 하나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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