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 언론이 ‘서울시공무원 간첩사건’으로 명명하고 대대적으로 보도를 쏟아냈던 사건은 황당하게도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인 걸로 결론이 났다. 당시 이 사건을 가장 열심히 추적 보도한 매체는 비영리독립언론 뉴스타파 였다. 이 과정에서 2012년 170일 파업 기간 중 MBC에서 해직된 최승호 PD의 역할이 컸다. 바로 그 최승호 PD가 국정원과 고나련된 3년 간의 취재 기록을 다큐멘터리 <자백>에 담았다. “국정원 개혁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는 게 제작 취지다.

3일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한 최승호 PD는 다큐 <자백>과 관련해 “취재를 한 것은 2013년부터 3년이고 영화 제작기간은 1년”이라며 “서울시공무원 간첩사건과 다른 사건(간접 관련)들 관련 사실을 더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다큐 <자백>은 현재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연일 매진을 기록하며 호평을 받고 있다.

“간접조작, 예나 지금이나…국정원 개혁에 도움 되고자 <자백> 만들게 돼”

최승호 PD는 “대법원에서 국정원 직원들이 유죄판결 나고 유우성 씨는 무죄판결을 받았다”며 “실질적으로 어마어마한 불법행위를 한 국정원 조직에 대해 어떤 형태의 개혁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다. 지금도 간첩 사건을 조작하고 있지 않다고 이야기하기 어렵다”면서 “서울시공무원간첩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국정원의 민낯이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대선개입 논란 이후 국정원 개혁을 책임지겠다던 박근혜 정부는 오히려 정보기관의 권한을 강화시키는 ‘테러방지법’ 처리를 강행했다. 최승호 PD는 “(국정원 조작사건 관련)고스란히 카메라에 담아놓은 것을 영화로 만들어 국민들한테 보여준다면 국정원을 개혁해야 되겠다는 어떤 결심을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자백>을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전주국제영화제에 초대받은 다큐 '자백' GV에서 나선 최승호 PD(사진=언론노조)

최승호 PD의 설명에 의하면 간첩 조작 사건 당시 유가려 씨에 가혹행위를 했던 국정원 직원들은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합동신문센터의 존재와 가혹행위 사실이 밝혀진 이후 이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서울시공무원 간첩조작사건으로 처벌받은 사람은 ‘증거를 조작하는데 개입’한 이들 뿐(4명)이다. 그 중 실형을 받아 복역 중인 사람은 단 한명이고 나머지는 고등법원에서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이에 대해 최승호 PD는 “사실은 죄가 없다고 선고한 거나 진배없는 판결”이라며 “국정원이라는 조직이 실무자 한 사람이 결심해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곳인가 의문이다. 당시 국정원장이 현재 청와대 이병기 비서실장으로 ‘(합동신문센터 조사 기간을)6개월을 반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했는데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큐 <자백>은 서울시공무원 간첩조작사건의 책임자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을 직접 지목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승호 PD는 “(두 사람) 다 자기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원세훈 전 원장은 심지어 ‘유우성이 누구냐, 나는 모른다’고 답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또, 최승호 PD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40년 전 중앙정보부에서 대공수사국장으로 5년 동안 일하면서 많은 사건들을 조작했던 책임자”라면서 “그 분이 간첩으로 잡아넣었던 사람들 중 재심해서 무죄를 받은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그건 법원에서 하는 일이고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최승호 PD는 “‘우리 주변에 간첩이 있다’는 걸 입증을 해야 국정원이라는 조직의 존재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라며 “그런 걸 통해서 이제 우리 사회에 공포를 만들어낸다. 그 공포를 통해 대중들을 컨트롤해내는 기제로 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선진된 정보기구로 바뀌어야 하는데 그런 노력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리는 그런 부분들이 있다. ‘국정원이 권한을 빼앗기면 종북으로 인해 어떻게 될 것 같다’는 불안감을 조장하는 사람들과 언론들도 많다”고 지적했다.

“국정원, 책임의식 뿐 아니라 실력도 없는 무서운 조직”

최승호 PD는 “(정치권에서)국정원 개혁 말만 꺼냈지 실질적으로 나선 적이 없다”며 “야당 역시 (국정원에)겁을 낸다. 역풍에 대한 걱정들이 적극적인 개혁을 막는 효과들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국정원은 유우성 씨와 관련해 ‘실수를 했지만 여전히 우리는 간첩을 잡는 데 필요한 존재’라고들 한다”며 “국민들한테 책임진다는 의식이 없는 굉장히 무서운 조직”이라고 꼬집었다. 또, “실력도 없다. 맨날 자백만 받아왔으니 ‘과학적인 증거를 수집하는 실력’이 어디 있겠느냐”고 덧붙였다.

끝으로, 최승호 PD는 MBC와의 해고무효소송과 관련해 ‘해고무효 선고가 나면 복직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고민스러운 대목”이라며 “앞서 대법원에서 복직 판정 나서 복직한 이상호 기자는 복직되자마자 6개월 징계를 받고 그거 지나니 또 6개월 징계를 먹더라. (내가 복직되더라도)그럴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그래서 고민스럽다. 복직할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인터뷰를 마쳤다.

위 인터뷰에서 최승호 PD는 이번 작품을 만든 하나의 계기가 된 '서울시공무원 간접조작사건'의 전말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2012년 10월에 유우성 씨의 동생 유가려 씨가 한국에 온다. 탈북자로서 오빠와 같이 살려고 왔는데 탈북자들이 한국에 오면 이제 간첩인지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서 합동신문센터라는 곳에 들어가서 조사를 받게 된다. 그런데, 유가려 씨를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6개월 동안 독방에다가 가둬놓은 상태로 감시카메라로 계속 감시하면서 구타하고 그 다음에 회유하고 이런 식으로 해서 ‘오빠가 간첩이다’라는 허위자백을 받아낸다. 그 허위자백으로 결국 유우성 씨를 구속했던 것. 그런데, 변호사들이 노력해 유가려 씨가 합동신문센터에서 나와 ‘내가 그동안 국정원에서 한 얘기는 전부 허위자백이었다. 나는 강제로 할 수 없이 그런 거짓말을 했다’ 이렇게 고백했다. 그래서 저희 뉴스타파가 그걸 포착하게 돼서 중국으로 가서 국정원에서 제시했던 여러 가지 증거들이 전부 다 거짓말이고 가짜라는 것을 취재를 해서 밝힌다…(중략)…유우성 씨가 풀려서 나와서 2심 재판이 시작이 되는데, 국정원이 멈추지 않고 이번에는 ‘유우성 씨가 북한에 두 번 들어갔다 왔다’는 중국 쪽 국경의 출입국 기록을 조작해서 법정에 제출을 했다. 조작된 증거를 우리(뉴스타파)가 중국에서 그 기록을 발행했다는 곳에 가서 담당 공무원한테 물어봤다. ‘이게 당신이 발행한 것 맞냐?’라고 하니 ‘아니라’고 답했다. 위조라는 거다. 해당 영상을 방송하고 법정에다가 제출도 했다. 결국은 나중에는 중국 정부가 우리 한국 법원에다가 공식적으로 ‘검찰이 제출했던 문서 세 가지는 다 위조된 것’라고 공식 통보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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