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KBS 조직개편 모범 사례로 나온 게 삼성과 네이버다. 물론 삼성과 네이버가 효율적인 조직일 수 있다. 하지만 공영방송 조직이 삼성, 네이버처럼 가야 하나. 근본적으로 출발점부터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_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성재호 본부장

KBS가 1실(전략기획실) 6본부(방송·미래사업·운영·보도·제작·제작기술본부) 2센터(라디오·네트워크센터) 1사업부(드라마사업부) 체제로의 조직개편 시행을 앞두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당초 KBS는 4월 18일 임원회의, 19일 양대 노조 설명회, 20일 이사회 보고 이후 2~3차례 간담회를 거쳐 27일 이사회 의결을 이끌어낸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여야 이사들은 일정상 촉박함과 내부 구성원 의견 수렴 부족 등을 들어 일정을 한 주 연기했다.

KBS는 지난 29일 조직개편 수정안을 임원회의에서 통과시켰고 오는 4일 이사회에서 의결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KBS 내부에서는 수익성 극대화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수신료를 재원으로 하는 공영방송으로서의 임무와 역할을 포기했고, 내부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부족했던 것을 이번 조직개편의 문제점으로 꼽고 있다. (▷ 관련기사 : KBS, 조직개편 논란으로 ‘시끌’… 왜?)

3일 오전 11시,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주최한 <KBS 어버이연합 보도 은폐 규탄 및 공영성 말살 조직개편 철회 촉구 기자회견>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성재호, 이하 새 노조)는 이번 조직개편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3일 오전 11시,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주최한 이 열렸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성재호 본부장(왼쪽에서 3번째)이 조직개편 문제점을 설명하고 있다. ⓒ미디어스

새 노조는 이번 조직개편안을 △광고와 마케팅에 좌우되는 KBS 편성 △방송본부와 제작본부는 ‘갑을 관계’ △‘수익성’ 제고도 기대하기 힘듦 △수신료 포기 선언 △밀실·졸속 추진으로 구성원 분노 등 5가지로 요약했다. 또한 4월 29일 임원회의에서 통과된 수정안 역시 약간만 달라졌을 뿐 큰 방향이 달라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자세한 내용 보기)

수정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아… “정체성마저 잊어버린 조직개편”

성재호 본부장은 “(바뀐 게) 아주 많지는 않다. 방송사업본부에서 ‘사업’ 자를 떼서 방송본부라고 했지만 편성을 하나의 사업으로 보는 것은 똑같다. 촬영기자와 보도그래픽팀 등 뉴스 영상을 만드는 조직이 (보도본부에서 빠져나가 영상제작센터로 갔었는데) 그게 (기존 상태로) 수정됐다. 제작본부 프로덕션에서 예능총괄담당이 생긴 점, 당초 방송본부에 있던 송출기능이 돌아와 (기존 네트워크센터가) 네트워크본부가 된 점 정도”라며 “본질적으로 투자 대비 산출 중심의, 위에서 사람들을 쥐어짜기 좋게 짰다”고 설명했다.

새 노조는 방송본부가 편성과 광고, 마케팅 업무를 동시에 담당하고 있어 예산을 쥐고 프로그램의 생존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성재호 본부장은 “(방송본부에) 광고, 마케팅과 제작투자담당 부서를 넣어 놨다. 이렇게 되면 편성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시청률과 수익이 될 것이다. 아예 대놓고 KBS를 돈벌이 조직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제작본부에 도입되는 프로덕션 체계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성재호 본부장은 “제작본부에서는 장르 구분 없이 드라마, 예능, 시사교양, 라디오 등을 각 프로덕션별로 나누어져 있다. 무한경쟁을 시키겠다는 의도다. 이렇게 되면 한 프로덕션 안에서 프로그램별로 경쟁해야 한다. 예를 들어 <1박2일>에 영향력 있는 예능인이 나온다면 다른 예능에서는 예산과 인적자원을 따내기 위해 이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드라마 PD, 예능 PD들은 이대로라면 수익성을 꾀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얼마 전 한 드라마를 놓치지 않았나. (현재 조직개편안이라면 드라마 방송에 대해) 제작본부가 방송본부와 협의해야 해서 빠른 의사결정이 어렵다”고 우려했다.

4월 29일 KBS 임원회의에서 통과된 조직개편 수정안 (표=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성재호 본부장은 이번 조직개편의 모범사례로 소개된 것이 삼성과 네이버라는 점을 언급한 후, “가장 큰 문제는 공영방송 KBS 재원, 수신료라는 부분을 사실상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고대영 사장이 내놓은 조직개편안에는 수신료가 없고, 그러다 보니 시청자가 있을 수가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수신료 현실화 관련 조직은 과거 ‘수신료 현실화 추진단’ 같이 별도 조직이 아닌 대외협력실 산하의 하나의 ‘업무’로서만 존재하게 됐다.

이어, “왜 이런 안이 나왔을까. 고대영 사장은 과거 보도본부장 시절에도 아주 독선적인 불통의 상징이었고, 결국 보도본부의 양대 노조 조합원으로부터 불신임을 당해 물러났던 인물이다. 그런 인물을 19대 국회가 다시 사장으로 앉혔는데 (그가) 밀실 졸속 조직개편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성재호 본부장은 “정연주 사장 시절에도 현재 국부제를 팀제로 전환시킨 적이 있었다. 간부 수를 줄인 굉장히 큰 규모의 조직개편이었다. 전 사원 공청회만 3번 이루어졌고 노조와도 3개월 협상했으며 이사회 의결까지도 그만큼 걸렸다. 이런 기본적인 절차도 지키지 않고 있다”면서 “KBS도 변화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국민이 왜 공영방송을 만들라고 했는지, 우리의 정체성마저 잊어버린 조직개편을 한다면 어느 누구도 동의할 수 없지 않을까”라고 반문했다.

이러한 우려를 표현하고 있는 것은 새 노조 뿐만이 아니다. 앞서 비상대책위원회로 전환한 KBS PD협회(협회장 안주식) 역시 2일 호소문을 내어 △1라디오 시사정보 프로그램의 보도본부 이관 및 시사·교양·다큐멘터리의 컨트롤 타워 부재, 방송본부 제작투자담당 통제는 KBS 공영 프로그램의 심각한 위축을 가져오고 △현재의 조직개편안은 타사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KBS의 프로그램 경쟁력을 유지시켜온 드라마와 예능이 가지고 있던 무기를 완전히 빼앗아 버린 것으로, 이런 관료주의 조직개편은 현장의 실무피디들로부터 외주하청업체로 전락하게 됐다는 자괴감을 낳을 것이라고 전했다.

KBS PD협회는 “귀를 닫은 혁신추진단과 군사작전처럼 개편안을 추진하고 있는 경영진들의 태도를 볼 때,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수단은 이사회뿐”이라며 “KBS의 공영성과 경쟁력을 지켜야 할 최후의 보루인 이사회가 조직개편안 의결을 늦추고, 조금 더 합리적인 토론이 가능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