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말기는 각종 ‘대책’, 특히 미래 관련 보고서들이 백가쟁명을 이루던 시기였다. 그럴 만도 했던 것이 정권 교체가 이뤄질 것이 너무도 확실해진 상황에서 인계될 가능성이 없는 프로젝트의 담당자로 남는 것은 지옥으로 가는 급행열차와 다름없었다. 그동안 꾸려온 일들을 서둘러 마무리하려 버둥대는 공무원/학자들이 도처에 차고 넘쳤다.

참여정부는 3개 정도의 단계로 구분해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동북아 허브가 되자’는 꼬임에 영혼이 지배당했던 전반기, 묻지마 ‘대연정’ 제안으로 금쪽같은 시간을 까먹은 휴식시간 그리고 전열을 가다듬어 찬 볼이 결국 최악의 똥볼이 되고 말았던 후반기의 FTA 올인까지. 결과적으론 셋 다 신통치는 않던 것이었다. 어찌되었건 곡절에 가까운 단계 변화 때마다 공무원들은 영혼을 바꾸어야 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 중에서도 말기적 상황을 살펴보면 전 관료집단이 하나의 보편적 증후군을 앓았다. FTA는 참 독한 앓이였다. 백약이 무효였다. 쇼였는지 아니면 잘 훈련된 연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전 관료가 ‘FTA=선진국’의 환각에 취해 있었다. 세계로 나가는 지름길을 보았다는 환영담이 난무했고, FTA는 한민족을 위해 신이 내린 계시라는 환청을 들었다는 간증도 있었다.

바로 그 무렵,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던져진 허섭스레기 같은 보고서들이 참 많았다. 당시 시민단체 정책팀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이건 뭐 분석을 해주기도 뭣하고 논평을 쓰자니 전에 했던 얘기 같고 난감할 때가 참 많았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을 하나 꼽자면,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 종합대책>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경제의 미래를 서비스산업에서 찾겠다는 한 문장으로 압축되는 그 보고서는 21개 부처 공동 명의로 발표되었다. 곧 사라질 참여정부의 마지막 허장성세이기도 했다.

그 보고서의 정치적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선 일련의 흐름들을 알 필요가 있다. 참여정부는 서비스산업을 국가경제의 신 성장동력으로 호명하고, 2003년부터 서비스 분야별 T/F를 만들어 운영했다. 그 결과물로 2004년에는 ‘관광수지 개선 대책’, ‘서비스 분야 세제·금융 인프라 개선 방안’, ‘비즈니스 서비스’ 등 총 18개 서비스 분야의 경쟁력 강화 대책이 발표되었고, 2005년에는 문화, 관광, 레저, 생계형 서비스, 광고, 방송 등 총 27개 서비스 분야를 선정하고 관련 대책을 발표했다. 그리고 그 모두를 집대성하여 2006년 7월 재정경제부는 <우리 경제의 미래…서비스산업에서 찾는다. Beyond Manufacturing>는 단행본을 발간했다. 내용은 역시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우리도 두바이처럼’.

착실한 준비 기간과 나름의 체계성도 갖추었던 실로 대단한 호들갑이었다. 그런데 실패했다. 왜? 그 모든 것이 결국, 하나의 결론으로 모아졌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스스로 정지작업의 일환이라고 밝혔던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 종합대책>이 적나라한 예이다. 그러니까 모든 것의 결론은 FTA를 하자!

그것은 각각 떼어놓고 보면 일정정도 개연성을 갖춘 논리들이 통치자의 의지에 부응하면서 주술로 전락해버리는 지리멸렬의 과정이었다. 그 때, 두바이에 견학을 다녀오는게 참 유행이었다고 한다.

정권이 바뀌었다. MB는 어떠한가? 이건 뭐 시작부터가 주술사스러웠다. 747이니, 주가 5000이니 하는 주문을 외웠다. 그 숫자를 따라 경제가 요동을 쳤다. 그 후로 상황은 어떻게 되었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 2월 5일자 한겨레 4면 기사.
청와대 지하 벙커에 모여 있던 비상경제팀이 바깥 구경을 한 모양이다. 이 자리에서 MB가 ‘닌텐도를 만들라’고 해석될 수밖에 없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말 끝나기가 무섭게 출시됐다. 인터넷에서 배꼽 바이러스 조기매진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명텐도’가 대유행이다.

앞서, 장황하게 참여정부 사례를 이야기했던 것은 이 닌텐도 발언을 보며 임기 1년이 갓 넘었을 뿐인데 그럴싸한 허장성세 부릴 꿈조차 꾸지 못하는 이 정부의 협량이 진심으로 안타까워져서이다. 대통령이 이렇게 현물적으로 저열한 것에 관심을 가지면, 관료들은 상상력을 가질 까닭이 없어 진다. 어떻게 증명할 수 있냐고? 비슷한 시간 문화부 장관이 강남의 한 노래방에서 ‘음악산업 진흥 중기계획’을 발표하는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K-POP 차트를 만들고, 가수의 군 입대를 유예해주겠다는 사소한 발상이 중기계획으로 포장되어 버젓이 진흥을 얘기하는 경로가 되고 있다. 이 정도면 자리 보존도 사치여야 하는데….

그들은 뒷방 노인네가 아니다. 국가 단위 정책을 최종 결정하는 사람들이다. 서비스산업, 특히 지식 산업은 미래에 대한 전망에서 출발한다. 참여정부는 ‘두바이’라고 하는 유토피아적 목표를 설정하고 산업 각 편제를 통일성 있게 개편하겠다는 형식 논리 정도는 갖추고 있었다. 이후에 논쟁이 됐던 것은 그 형식논리가 대다수 서민의 삶을 시장에 내다파는 신자유주적 재편이라는 점이었다.

이 정부는 어떠한가? 그야말로 막무가내, 마구잡이, 막가파식으로 일을 만들고 있다. 최소한의 형식논리도 없고, 언제나 전면화되는 건 주술사의 말뿐이다. 대통령이 닌텐도를 만들라고 했다는 뉴스를 아무런 의견 없이 전달하는 언론들은 아직도 이 주술사를 믿기 때문일까, 아니면 무서운 것일까. 모든 아이들이 닌텐도를 갖고 노는 모습과 노래방의 쌍방향 서비스를 보며 뒤늦게 감동한 그들을 기특하다고 할 텐가. 하지만, 당신의 그 감동 위험하다. 우린, 지금 방향과 나침반을 모두 잃어버렸다. 게다가 길을 찾아야 하는 이들은 좀스럽기까지 하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