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2월4일자 <중앙일보> 1면에 미담기사가 실렸다. “선생님 한 명이 학교를 바꿨다”는 이 기사는 현 덕성여중의 김영숙 교장의 이야기로, “교사들이 모든 교육을 책임지는 ‘사교육 없는 오고 싶은 학교’를 만들기” 프로젝트가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내용이다.

▲ 2월 4일자 중앙일보 1면의 '선생님 한 명이 학교를 바꿨다' 기사

사교육 없는 덕성여중을 만들기 위해 김 교장은 먼저 “사교육 없는 학교로 만들 테니 아이가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특화반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맡겨 달라”는 내용의 가정통신문을 학부모들에게 보냈다. 전교 1등이던 학생의 부모는 망설였지만 김 교장의 설득으로 다니던 학원을 모두 끊고 학교 교육에만 충실하게 됐고 결과적으로 성적도 올랐다고 한다. 김 교장이 덕성여중 교장으로 옮긴 것은 지난해 9월로 그 전에는 같은 재단의 덕성여고의 평교사로 재직했다고 전했다. 그가 평교사에서 덕성여중의 교장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던 것은 덕성여고에서의 활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2001년 덕성여고의 국어 교사이던 김 교장은 ‘사교육 없는 오고 싶은 학교’를 만들자는 제안을 하고 ‘우수 학생 수준별 수업’, ‘실력 부진 학생 별도 지도’, ‘통합논술·심층면접팀 운영을 통한 맞춤형 지도’를 실시했다고 한다. 또한 선생님들에게는 10시까지 자발적으로 근무해줄 것을 부탁해 학교 교육만으로도 실력이 늘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결과는? 실제 기피 대상이던 덕성여고의 지원률이 올해 130%로 뛰었고, 7년간 서울대 합격생을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던 덕성여고에서 지난해는 세 명이나 합격시켰다. 그에 따라 상위권대 진학률도 급상승했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중앙일보의 이야기다.

돈 안 드는 입시교육이 ‘공교육’인가?

중앙일보의 요지는 ‘사교육을 없애는 것이 진정한 공교육의 모습이다’ 정도로 읽힌다. 고려대 고교등급제 관련 비판기사 한 줄 없는 중앙일보에서 ‘사교육’을 없애는 ‘공교육’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것은 오해에 불과하다. 오늘 중앙일보의 기사는 지금까지 중앙일보가 보여온 교육관련 논리와 하등 다를 것이 없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덕성여중에는 더 이상 사교육에 뛰어드는 학생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덕성여중 학생들 역시 사교육시장에서 가르치는 교육 그대로를 단지 ‘학원’이 아닌 방과후 ‘학교’에서 배웠다는 사실이다. 사교육이 다시 학교로 고스란이 넘어간 것이다. 무한경쟁체제가 사라진 것이 아닌 그 무대가 학교 ‘안’으로 이동해왔을 뿐이다. 돈 안 드는 ‘입시전쟁 교육’, 이것이 진정한 공교육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어륀지’ 영어교육 정책 그 자체다. 이명박 정부의 영어교육 정책은 ‘영어교육을 학교에서 강화해 사교육이 필요치 않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 안에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왜 영어공부를 해야 하는가’의 근본적 문제는 빠져 있다. 그러고는 ‘영어’로 귀결되는 입시경쟁체제를 강하게 구축해 온 것이 이명박 정부의 영어정책이다. 중앙일보는 자신의 논리와 이명박 정부의 논리에 덕성여중의 일화를 끼워 맞추고 있을 뿐이다.

EBS 교육방송은 과외방송?

중앙일보가 덕성여중의 사례를 주요하게 바라본 것은 이명박 정부가 <EBS> 교육방송을 바라보는 시각과도 맞닿아 있다. 사교육을 학교에서 대신해주고 방송에서 대신해줘야 한다는 논리 그대로다. 이 논리의 최대 희생자는 바로 EBS 교육방송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고 생겨난 EBS <e-Learning> 체제는 “정부가 적극 나서 공영방송을 통해 전 고교생을 대상으로 과외를 실시하겠다는 발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실제로 교육부에서 작년 10월 발표한 사교육 경감대책에는 EBS활용방법이 포함돼 있다. 물론, 노무현 정부에서도 EBS 수능 프로그램에서 수능시험을 출제하도록 하는 등 공영방송을 통한 사교육 경감대책을 시행했으나, 이명박 정부의 접근을 훨씬 노골적이다.

<한겨레>는 지난 29일자 “‘교양 부족한’ 방송”이란 기사를 통해 EBS에서 봄 개편 때 ‘한영애의 문화 한 페이지’, ‘책으로 만나는 세상’, ‘고전극장’, ‘강지원의 특별한 만남’ 등이 폐지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폐지된 프로그램 후속으로 “‘모닝스페셜’, ‘직장인 성공시대’, ‘팝스 잉글리시’ 등 영어·처세·취업 프로그램이 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EBS 교육방송이 표방해온 교육·문화 가치에 대한 몰이해로 해석된다. 이에 이택광 문화평론가는 <미디어오늘> 칼럼에서 “교육방송의 역할은 동네 사설학원에서 할 일을 대신해주는 게 아니다”라고 비꼬기도 했다. 1W의 출력인 공동체라디오 설립의사를 밝힌 이들에게는 주파수가 없다면서 주파수 1KW의 출력을 보장하는 영어FM을 실시하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입장과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학교가 도움상회?

“대다수의 학부모님들 애들 학원비 대느라 등골 빠지시죠? 이제 학교에서 아이들의 성적에 맞게 맞춤형 사교육을 대신해 서울대 보내드리겠습니다. 월 0원에 만나는 고품격 사교육 서비스.” 이것이 곧 중앙일보에서 이야기한 덕성여중의 교육이었다.

김 교장의 미담은 아름다울 수 있으나 교육정책의 본질을 꿰뚫지는 못했다. ‘공교육’의 역할은 사교육을 대신하여 많은 학생들을 서울대로 보내는 것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의 본질이 바뀌지 않고선 전국의 학교에 제2의 김 교장이 등장한들 ‘입시전쟁교육’으로 인한 청소년들의 고통에는 한 치의 변함도 없을 것이다.

“KBS 간판프로그램 ‘체험사교육현장’의 성우이신 양지운 선생님도 함께하고 계십니다. 오늘도 학원가에선 서울대가 목표라고 하고, 학생들은 열심히 땀방울을 흘리고 있는데, 사교육을 없앤다던 이명박 정부는 ‘학교’와 ‘방송’이 사교육을 대신하도록 만드는 꼴이란, 아주 개판 5분전이로구나~. 학생들의 입에선 불만의 소리가 콸콸콸, 코에선 쌍코피가 콸콸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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