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힘들고 각박한 시대에 국민이 종교인에게서 가두투쟁을 이끄는 전사(戰士)의 모습을 찾겠는가. 이런 시대일수록 종교인은 국민 마음과 이 사회 안에 평화를 심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져야 한다.”

조선일보가 오늘(3일)치 사설 “각박한 시대에 국민이 종교인에게서 듣고 싶은 말”을 통해 용산 철거민 참사를 규탄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나선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행동에 대해 훈수했다. 용산 참사에 대한 야당과 시민단체의 연대에 이미 지면을 통해 수차례 삐딱한 시선을 드러낸 바 있는 조선일보는, 지난해 촛불 정국의 경험 때문인지 종교인들이 나서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새다.

앞서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은 지난 2일 오후 7시 서울 청계광장에서, 지난해 7월초 미국산 쇠고기 반대 시국미사 이후 7개월 만에 거리로 나와 ‘용산 참극과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시국미사’를 열었다.

▲ 조선일보 2월3일치 31면(오피니언)
◇ 사제단 신부들의 모습이 가두투쟁을 이끄는 전사의 모습?
조선일보는 사제단 대표신부의 인터뷰 “현 시국은 70년대를 연상케 한다. 국민투표로 선출된 정부 행태가 과거 독재와 다를 바 없다”를 전하며, 이에 대해 “독재정권 타도에 나선 70년대 투사 말투”라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또 “국민이 힘들어 하는 시대”라며 “모두가 힘들고 각박한 시대에 국민이 종교인에게서 가두투쟁을 이끄는 전사의 모습을 찾겠냐”고 반문했다.

조선일보의 주장처럼 국민이 힘들어 하는 시대이다. 어려워진 경제 상황은 그렇다 치더라도, 무자비하게 밀어붙이는 지난 1년간의 이명박 정부의 강한 추진력에 국민이 힘들어 하고 있다. 지난해 촛불 정국과 최근 용산 참사에서도 드러났듯, 잘못은 인정하지 않은 채 수습하기에만 급급한 ‘뻔뻔한’ 정부 태도에 국민이 힘들어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3일 국무회의에서의 한승수 국무총리 발언, “용산사고를 제2의 촛불집회로 연결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규모가 크지 않아 다행으로 생각한다”를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그렇다면 모두가 힘들고 각박한 시대, 우리들은 종교인에게서 어떤 모습을 찾아야 하는 것이며, 나아가 종교인들은 어떤 모습을 갖춰야 하는 걸까? 모두가 힘들고 각박한 시대이기에 종교인들은 나서면 안 되는 걸까? 촛불에 심하게 데인 뒤, 어떤 사안이든 거리로 나서는 것을 경계하기 시작한 조선일보로서는 종교인들이 그저 가만히 그들의 기도 혹은 수행을 통해 조용히 성찰하기만을 바랄지도 모른다.

지금 시점에서 왜 사제단 신부들이 거리로 나섰는가를 먼저 곱씹어봐야 한다. “용산 참사는 과연 이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또 파국의 종점은 어디인지 국가 구성원 모두에게 질문과 충격을 던진 무서운 사건”이라는 사제단의 시국선언문처럼, 그저 신부들이 미사를 드리며, 기도를 통해서만 ‘평화’를 외칠 수만은 없는 시점이 왔다.

▲ 2일 밤 서울 청계광장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용산 참극과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시국미사’를 열고 있다. ⓒ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 이런 시대일수록 종교인은 평화를 심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져야?
조선일보의 지적이 맞다. 이런 시대일수록 “종교인은 국민 마음과 이 사회 안에 평화를 심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단, 조선일보가 말하는 ‘침묵한 채 가만히 있음’을 의미하는 평화가 아니라, 소외된 사람들도 평온하고 화목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종교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사제단은 시국선언문을 통해 “신앙의 소명과 역사의 책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우리 사제들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며 국민들을 향해 “공권력과 나라의 장래를 언제까지 맡기고 인정할 것인지 함께 고뇌를 나누어달라. 정의 없는 평화는 양들의 침묵일 뿐”이라고 촉구했다.

철거민들이 “생계 대책을 우선 마련하라”며 건물 점거에 들어간 지 하룻만에, 경찰특공대를 비롯한 용역 직원들을 동원해 강제진압 하고 나선 정부다. 무자비한 정부의 행동에 평화의 상징인 사제단 신부들이 나서지 않는다면, 그 어떤 강심장이 정부의 무겁고도 날카로운 방패에 맞서 떳떳하고 당당하게 나설 수 있을까.

◇ 국민이 종교인에게 듣고 싶어하는 말은?
조선일보는 “국민이 지금 종교인에게서 듣고 싶어하는 말은 누구를 몰아내고 타도하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면서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 이 어려운 시대를 타고 넘어가자는 말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이 조선일보에게서 듣고 싶어하는 말은, 거리로 나선 사제단 신부들을 훈수하거나 지적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를 훈수하기 이전에, 사제단 신부들이 왜 거리로 나오게 되었는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왜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우선이 아니었을까.

조선일보를 향한 과한 욕심일지 모르겠으나, 이번 사안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종교계를 되레 꾸짖는 것을 국민들은 더 듣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싶다. 용산 시국미사에 대한 내용은 일체 보도하지 않은 채, 사설을 통해서만 종교인의 태도를 운운하는 것은 비겁한 보도 태도이다.

▲ 2일 밤 서울 청계광장에서‘용산 참극과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시국미사’를 마친 사제단 신부를 비롯한 시민들이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종교인에게 자제를 촉구하는 조선일보에게는 안타까운 소식이 될지 모르겠으나, 용산 참사와 관련한 종교계의 움직임은 앞으로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오는 5일, 불교계 시국법회추진위원회는 추모 시국법회와 천도제를, 용산참사기독교대책위원회는 ‘용산참사 진상규명 촉구와 희생자 추모를 위한 기도회’를 열 예정이며, 사제단도 시국 기도회와 시국미사를 매달 열 계획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가 그리는 종교인의 참 모습은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과 옳지 않은 것에 대해 나서지 않고, 그저 침묵한 채 기도만 하는 것인가 보다. 앞으로 종교인들이 거리로 나설 때마다, ‘각박한 시대의 종교인의 역할’을 강조한 조선일보가 지면을 통해 어떤 식의 주장을 펼쳐 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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