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29일 보신각에서 “전 세계 노동자 단결하여 노동권을 쟁취하자”는 슬로건으로 2012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집회가 열렸다. 대학생 때 이주노동자 집회에 몇 차례인가 참석한 적은 있었지만 그해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집회는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수백여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보신각을 가득 채우고 모국어로 구호를 외치고 피켓을 흔드는 진풍경은 쉽게 보지 못할뿐더러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사회진출을 앞두고 있던 당시 마음속으로 ‘내년에는 반드시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집회를 직접 준비해보겠다’는 결의를 나름대로 다지기도 했다. 그래서 2011년에 이주노동자 한글교실을 하면서 친하게 지낸 미셸 이주노조 전 위원장을 만나서 이주노조에서 일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고자 했었지만 끝내 미셸 동지를 만나지 못했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서울출입국관리소는 2011년 2월 10일자로 당시 미셸 이주노조 위원장에 대한 체류허가를 허위취업이라는 이유로 취소하고 출국명령을 내렸다. 역대 이주노조 위원장에 대한 탄압의 연장선이었고 위원장이라는 것을 이유로 한 표적탄압이었다. 이러한 출입국관리소의 부당한 처분에 대해 이주노조는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법원은 2011년 9월 15일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출입국관리소는 고등법원에 항소했고, 고등법원은 2012년 5월 미셸 위원장 패소판결을 내렸다. 이후 대법원에서도 패소했다.

그러한 와중에 미셸 위원장은 2012년 2월 위원장을 그만두고 조모의 병간호를 위해 필리핀으로 돌아갔다. 그해 4월 30일 재판 점검 등을 위해 재입국 했으나 출입국은 허위취업을 했다는 이유로 인천공항에서 입국시키지 않고 다음 날인 5월 1일 강제추방했다. 공항에 억류되어있다는 미셸 동지를 만나러 가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다가 끝내 강제추방됐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많이 아팠다.

이듬해인 2013년 이주메이데이도 역시 보신각에서 열렸다. 2012년도에 가장 큰 화두였던 사업장 변경 내부지침 투쟁(기존의 사업장변경시 이주노동자에게 제공하던 구직 회사명단을 더 이상 제공하지 않고 사업주가 이주노동자를 선택할시 간단한 문자를 제공하는 것으로 제도가 변경됨)의 연장선상에서 수백여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함께 모여서 우리의 목소리를 알려나갔다. 딱 일 년 전에 ‘내년에는 반드시 이 자리를 함께 준비하겠다’는 꿈을 꿨는데 현실로 이루어지니 남몰래 벅차올랐던 기분에 여러 이주동지들과 더욱 신나게 구호를 외쳤던 것 같다.

2014년 이주메이데이는 바로 몇 일전이었던 4월 16일 세월호참사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이었기 때문에 예전처럼 왁자지껄한 퍼레이드 형식의 집회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결국 세월호 참사에 대한 추모의 의미를 담아 침묵행진을 하기로 결정하고 급하게 노란리본을 공수하여 이주동지들에게 나눠줬다. 이주노동자들이 가져온 피켓 중에 “세월호를 위해 기도한다”는 내용이나 “한명도 빠짐없이 가족 품에 돌아올 수 있게 해달라”는 내용들이 적혀있었다. 보신각에서 청계천을 따라 노란리본을 단 이주노동자들의 침묵행진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2015년 이주메이데이는 이주노조 10주년을 맞이해 그 의미가 남달랐다. 반드시 이주노동조합 합법화를 쟁취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이미 4월 1일부터 대법원 앞 기자회견, 1인 시위, 서명운동 등을 진행하면서 투쟁의 열기가 고조되어 있었다. 때마침 이주노조 10주년까지 겹쳐서 이주노조 조합원들에게 연락을 하던 도중에 네팔에서 7.9 규모의 대지진이 발생하여 수천 명의 사상자와 천문학적 규모의 건물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미 조합원 중에 “현지 가족과 연락이 안 된다”면서 생사조차 확인하기 어렵다거나 본국에 급히 귀국을 해야 하는데 공장에서 휴가를 받지 못한다는 등의 어려움들이 속출했다. 급히 회의를 거쳐서 이주메이데이는 2014년과 동일하게 네팔 지진 피해 희생자 추모와 실종자귀환을 위한 추모행진으로 진행했다. 정말 T.S 엘리엇(Eliot)의 시 ‘황무지’(The Waste Land : 1922년작)에 “4월은 가장 잔인한 달”(April is the cruelest month)이라는 표현이 꼭 들어맞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다시 흘러 2016년 4월이 됐다. 올해 이주메이데이는 때마침 노동절이 일요일인 덕분에 한국인노동자와 이주노동자가 함께 노동절 투쟁을 할 수 있게 됐다. 보신각에서 알바노조와 이주노동자 집회가 각각 오전 11시, 오후 1시에 열리고 오후 3시에 시작되는 메이데이 본집회장소인 마로니에공원으로 행진을 할 예정이다.

지난 글에서 밝힌 것처럼 출입국관리사무소의 광역단속으로 인해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잡혀가고 있고 서울출입국, 대구출입국사무소 앞에서는 이주단체들의 1인시위와 단속반대 기자회견, 집회가 연이어 열리고 있다. 이번 이주메이데이 역시 강제단속에 대한 규탄 및 저지가 주요한 핵심 요구가 될 것이다. 언제나 이주노동자 집회현장에서 화려한 춤과 아름다운 연주를 보여주는 쿨레칸이 오프닝무대를 맡고 수도권에서 모인 각 나라 이주노동자 당사자발언, 이주노동단체들의 연대발언이 뒤를 잇는다. 2016년 이주노동자의 삶에 대한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싶다면 이번 주 일요일 1시 보신각에서 열리는 이주노동자 메이데이에 함께 하는 것이 어떨까? 끝으로 2014, 2015 이주노동자 메이데이가 어떠했는지 궁금한 분들을 위하여 이주민방송 MWTV에서 당시 현장을 생생하게 담은 영상을 추천한다.


박진우_ 2012년부터 이주노동조합의 상근자로 일을 하고 있다. 어릴때부터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어서 언젠가는 이주아동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일을 한지 3년이 되어가지만 외국어를 못해서 무조건 한국어로만 상담을 하고 있다. 이주노조가 반드시 합법화되서 한국에서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이주노동자들의 튼튼한 조직으로 우뚝 설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개인적으로 몸무게가 계속 늘어서 movement(운동)가 아닌 exercise(운동)를 심각히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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