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초’적 시간이다. ‘본능’적 심판의 욕구가 치솟는 건 어쩌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여긴 문명 이전의 초원이 아니지 않는가? 문명화된 사회의 진짜 ‘쌩얼’은 원초적 본능을 발휘한다고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야만의 현장에 맞서는 우리의 무기는 바로 우리의 글이다. 하수상한 시절에, 하수상한 일들의, 하수상한 상황이지만 우린 ‘상식 있게’ 글로 싸울 뿐이다.

그래서 준비했다. <제1회 미디어스배 YTN 투쟁 200일 기념 4행시 대회> “이(죽일 놈을 향한)백일장”. 참고로, 오늘은 YTN 투쟁이 200일 하고도 하루를 맞은 날이다.

각설하고, 총 24편의 수준 높은 글들이 자의삼 타의칠(!)의 기세로 접수되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YTN의 채널 숫자와 같은 편수가 응모된 것은 이번 대회의 범상치 않음을 잘 보여주는 일이 아니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작년과 비교할 순 없지만, 4행시 대회치곤 평균적으로 수준이 높았다. 심사는 전문성을 기하기 위해 미디어스 편집국 3인(문학중년, 문학할 년, 문창과 중퇴 완군)이 맡아, 격한 수다 끝에 총 4편의 작품을 최종심에 올렸다.

소리와 시간의 대비로 시작되는 김은숙님의 시는 뜻밖에도 ‘티눈’과 ‘엔돌핀’이라는 첨단 과학의 용어를 동원하는 수완을 발휘했지만, 4행시의 지루한 특성인 실시간 연상 단어를 사용한 한계가 지적되었다. 고한석님은 구본홍 사장에 대한 실존적 묘사를 통한 리얼리즘 언어의 구사와 마지막 압축적인 한 문장을 통해 세대적 교감을 시도한 점이 높이 평가되었지만, 부호의 잦은 사용이 옥에 티였다. 정혜진님은 평이한 구성이었지만, 마지막 반전이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가열차게 투쟁하리라! 아자!’의 힘찬 언어를 구사한 이현직님의 글은 서사적 묘사와 반복법의 활용을 통해 민중문학을 계승하는 활달함을 보였다.

최종적으로 고한석님과 정혜진님의 시를 놓고 고민하다, ‘엔장!!’이라는 유행예감 신조어를 직설적이고 적절하게 사용한 고한석님의 시를 최종 당선작으로 선택했다. 사실 응모된 원고들 중에 기가 막히는 글을 발견할 수 없어 최종 당선작을 선정하지 말자는 의견도 있었다. 몇 잔의 맥주 끝에 YTN 투쟁의 사회적 의미와 공정방송을 향한 그들의 열정을 높이 평가하며 당선작을 결정했다. 부디, 한 문장으로 언론장악의 결을 베는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의 지구력에 대한 유쾌한 계기가 되길 바란다.

부상으로 본지 안영춘 편집장과 함께하는 거나한 폭탄주 동반 저녁 식사에 초대된 고한석님 이하 최종심 당선자들의 건투를 빈다. 덧붙여 타의칠(!)의 기세를 발휘하느라 고생하신 권석재 사무국장께 각별한 감사의 말씀과 함께 역시 폭탄주 동반 식사에 초대되셨음을 알려드린다. 모두에게 개별 연락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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