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31일자 1면에 군포 여대생 살인사건의 피의자로 지목된 강씨의 사진이 실렸다. 강씨의 사진은 당일 제일 잘 보인다는 상단 중앙에 배치됐다. 중앙일보에서도 이에 뒤질세라 4면을 통해 강 씨의 사진을 전격적으로 게재했다.

범인 얼굴 공개에 대한 찬반여론이 뜨겁다. 물론 여전히도 ‘찬성’비율이 더 높다. 생각해보면 대형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범인의 얼굴 공개 여부 논란은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손님 같은 주제였다. 그러나 그것은 일각에 불과했다. 언론매체에서도 단지 “(피해자 가족·국민들의)피의자 얼굴을 공개하라는 여론이 있다”는 정도로만 다뤘다.

그러나 군포 여성 살인사건의 피의자로 지목된 강씨에 대해서는 달랐다. 언론매체에서는 이미 강 씨의 언론을 공개하고 나섰고, 다른 때와는 달리 범인 얼굴 공개 논쟁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왜? 그것은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에 따져 물어야겠다.

얼굴공개가 먼저였고 논쟁은 그 이후다

강씨의 얼굴을 가장 먼저 대대적으로 공개한 것은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였다.

조선일보는 31일자 1면에서 강씨의 사진과 함께 “범인사진을 공개합니다”를 실었다. 조선일보는 “국내 언론은 1990년대까지는 살인 등 강력사건의 피의자 얼굴을 공개해왔다”며 “하지만 2004년 무렵부터 ‘인권수사’가 강조되면서, 피의자들이 언론에 노출될 때 모자와 마스크를 씌워 주는 관행이 생겨났다”고 밝혔다. 그래서 연쇄 살인범 유영철 사건(2004년)과 정남규 사건(2006년) 때도 국민들은 범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반 인륜범죄자들의 얼굴은 마땅히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 조선일보는 1월 31일자 1면에서 강씨의 사진을 공개했다.
중앙일보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31일자 4면을 통해 “본지는 ‘인륜을 저버린 흉악범의 인권보다는 사회적 안전망이 우선’이라고 판단·강○○씨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키고 했다”고 전했다.

▲ 중앙일보는 1월 31일자 4면에서 강씨의 사진을 공개했다.
그리고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오늘 2월2일 신문을 통해 사진공개는 곧 공익을 위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조선일보는 만평을 통해 범인의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 인권침해라고 이야기하는 인권위를 향해 “이젠 짐승도 보호하나?”라며 국가인권위원회를 인‘수’(獸·짐승 수)권위라고 비꼬았다. 또한 8면 “‘얼굴 공개해야 한다’ 압도적…‘관행’ 바꿔야”라는 기사를 통해 얼굴 공개 기사에 이틀 만에 300여개의 댓글이 올라왔고 90% 이상이 “얼굴 공개를 환영한다”는 입장이었다고 전했다. 그리고 마지막 “반사회적 범죄자 얼굴 공개하는 게 옳다”는 사설을 통해 “강○○처럼 인간이기를 포기한 연쇄살인범에게까지 신원 보호원칙을 적용해야 하는지 따져볼 때다”라며 “흉악범 얼굴 공개는 시민들의 분노를 풀어주는 것 이상 공익 효과가 크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 역시 2월 2일자 신문에서 “조인스 ‘강○○ 얼굴’ 106만 클릭…네티즌 95% ‘신상 공개 찬성’”기사에서 “공개 찬성론자들은 반인류적 범죄자의 인권보다 사회적 안전망이 먼저라는 논리를 폈다”며 제보 효과를 예로 들었다. 또한 “조인스닷컴이 실시 중인 인터넷 여론조사에선 1일 6천여명이 참가해 95%가 (범인 얼굴 공개) ‘찬성’에 표를 던졌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100만명 이상이 조인스닷컴을 통해 이 기사를 봤다”며 “강○○의 얼굴이 공개된 중앙일보 기사는 1일 오전 네이버에서 ‘가장 많이 본 사회 포토 뉴스’ 1위로 기록됐다”고도 전했다.

이렇게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로 인해 범인의 얼굴공개 논란은 시작됐다.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해봐야 하는 요지는 논란을 누가 부추겼냐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질문은 ‘왜?’가 되어야 한다.

범인 얼굴공개 선택의 기로에 선 타 언론매체들

▲ 한국일보는 2월 2일 3면을 통해 강씨의 사진 게재 입장을 밝혔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사진공개로 인해 나머지 언론사들 역시 선택의 기로에 서야만 했다. 이에 지상파 방송 메인뉴스 중 SBS의 <8시뉴스>와 KBS1TV의 <9시뉴스>는 지난 31일에 강씨의 얼굴을 공개했고 MBC의 <뉴스데스크>는 어제 1일에 공개하는 것에 동참했다. 이로써 지상파 방송 3사에 의해서도 강씨의 얼굴이 모두 공개했다. 의외로 동아일보는 조선·중앙보다 늦은 오늘 2일자 신문에 사진을 게재했고 대부분의 신문들 역시 동아일보와 같이 2일에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을 공개하지 않은 주요일간지는 경향신문과 한겨레 그리고 한국일보뿐이다. 그 중 경향신문은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이름만 공개했고 한겨레와 한국일보는 사진 공개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국일보는 “국민적 합의 아직 충분치 않아 본보, 강씨 얼굴 공개 안합니다”라고 밝혔다. 한국일보는 “사진 공개에 따라 얻어지는 공익과 이를 위해 치러야할 사회적 비용을 둘러싼 국민적 합의가 아직은 충분치 않다고 판단”했다며 범인의 얼굴 공개에 대한 입장을 전달했다. 또한 사진 공개에 대한 흉악범의 기준,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하면서도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기회 보장 절차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조속히 마련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겨레 또한 “흉악범이라 할지라도 공인이 아닌 이상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면서 “헌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 아무리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신상 공개는 수사상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인권적 형사법적 측면을 두루 고려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실명까지 공개하지 않는 언론매체는 한겨레밖에 없다.

▲ 한겨레는 2월 2일 8면을 통해 강씨의 사진 게재 입장을 밝혔다.
범인 얼굴 공개를 부추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그리고 그들로 인해 선택의 기로에 선 타 언론매체들. 대부분은 얼굴을 공개하는 것이 ‘국민의 알권리’이며 ‘공익’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중앙일보의 논리를 그대로 따랐다.

누구를 위한 인권인가. 우리는 조선·중앙에 말렸다.

범인의 얼굴을 공개하는 것이 진정 ‘국민의 알권리’이며 ‘공익’이라 할 수 있나. 이에 한국일보는 사진공개 여부 입장을 밝히며 “피의자가 이미 구속된 만큼 사진 공개로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이익은 미미하며, 흉악범이 사진 공개를 두려워할 것이라는 가정도 현실성이 낮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일보의 “사진 공개 시 피의자의 가족에게 보복이 가해지는 등 2차 피해가 우려된다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은 오히려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언론은 범인 얼굴의 공개는 철저히 추가범죄를 막기 위해 활용해왔다. 특히 중형 이상의 범죄를 저지른 자가 얼굴 공개 대상이 되는 것은 물론이었다. 물론 강씨가 잡히지 않고 도주 중이었다면 대대적으로 공개해서 추가 범죄를 막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강씨는 지금 유치장에 있다. 그리고 아마도 지금 이대로라면 사형을 선고받을 확률이 높다. 범인에게 가해지는 형벌이 교화를 목적으로 하는 것인지 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인지에 대한 논쟁을 뒤로하고라도 강씨는 사회와 격리되어 탈옥하지 않는 한은 제2차, 3차의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 공개를 하는 것이 어떤 측면에서 공익이라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국민의 알권리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공익의 목적이 뚜렷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국민의 알권리’는 그 해당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강씨의 얼굴이 밝혀짐에 따라 살인사건과는 관계없이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조선·중앙은 강씨의 얼굴 공개를 통해 스스로도 밝히고 있듯 네티즌들의 수많은 지지를 얻었다. 최근 조선·중앙에서 이처럼 지지율이 높았던 때가 또 있었을까? 이 단 한 건으로 조선·중앙은 공익을 위해 일하는 신문이 되었다. 1면 제일 잘 보이는 곳에 강씨 사진을 게재한 조선일보의 당일 판매부수가 궁금하다. 또한 사진 공개로 인해 조인스닷컴의 이 기사에 100만명 이상이 조회했다면 그것으로 중앙일보가 무엇을 얻게 될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2월2일 스스로를 공익이라고 이야기하는 신문, 조선일보에는 지난 31일 강씨의 사진이 걸려있던 곳에 “31일 청계천에서 열린 용산 철거민 참사 관련 집회에 참가한 시위대가 전경버스 앞 유리를 부수고 경찰 점퍼를 빼앗아 불을 붙였다”는 사진이 실렸다. 이것이 단 하루 만에 공익신문이 된 조선일보의 참 모습이다. 중앙일보라고 다를까?

▲ 2월 2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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