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이후 다수의 드라마들이 '계몽주의적 방식'을 택해왔다. 그 방향은 달라도 세상 사람들을 향해 사람 사는 도리를 이야기한다. 하물며 전쟁과 테러, 자연 재해를 빌어 결국은 사랑 이야기를 했던 로맨틱 멜로 <태양의 후예>마저도. 결국은 사랑꾼이었던 유시진의 입을 빌어 어린이와 노인, 여성이 그 무엇보다 우선이어야 하며, 국가는 무릇 국가라는 전체보다 국가를 이루는 구성원의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물론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유시진의 보편적 인류애가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당국자의 맘도 흔들고 평범한 시청자들의 맘도 흔드는, 사상적 정체성에 애매모호함을 지녔지만 말이다. 그러나 <태양의 후예>가 '대한늬우스' 같은 뻔한 교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해도, 그 문제의식의 발원처는 우리 사회가 봉착한 사회적 윤리의 위기라는 점에선 다르지 않다.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계몽주의 드라마들

SBS <리멤버- 아들의 전쟁>, tvN <시그널>

드라마는 영웅적인 주인공을 통해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 작가가 원하는 싸움을 전개한다. 최근 높은 시청률이나 화제성을 보였던 <리멤버-아들의 전쟁>이나 <동네 변호사 조들호>, 그리고 <시그널>은 공통적으로 주인공이 구조적인 사회악을 향해 처절한 싸움을 벌인다. 그들이 싸우는 대상은 시대를 달리해도 한결같다.

1980년에서 90년대를 살았던 이재한 형사(조진웅 분)든, 아버지를 잃은 서진우(유승호 분)든, 그리고 한때 잘나가는 검사였던 조들호(박신양 분)든 국가와 손잡은 자본주의, 자본주의의 비호를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킨 공적 기구, 그리고 그의 엄호를 마다하지 않는 법과 그 제도 등을 향해 돌진한다는 설정이다. 그 싸움의 과정은 화성연쇄살인 사건, 홍제동 살인 사건 등에서 거대자본에 밀려나는 영세 상인의 싸움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우리의 현대사의 현장을 밟는다. 그리고 드라마는 현실에서 그저 하나의 사건이나 패배로 끝난 기록들을 복기하고 새로이 써간다.

KBS 2TV 월화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

물론 싸움의 방식은 작가의 개성에 따라 다르다. <시그널>이 미제 사건을 통해 당시 해결되지 못했던 사건 배후에 숨겨진 공공의 적의 실체를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면, <리멤버>는 억울하게 살인자가 된 아비의 죄를 벗기기 위해 아들이 변호사가 되어 법정에 선다. 장장 20회에 달하는, 때론 선보다 악이 더 준동하던 싸움은 그 자체로 우리 사회에 악의 전횡을 증명하는 시간이 된다. 그리고 이제 <동네변호사 조들호>는, 법정을 빌어 사회악의 실체를 밝혀가는 방식에 있어서는 <리멤버>와 유사하지만 그 표현은 명랑 만화처럼 단순 명쾌하다.

현실에서 아직 결론나지 않거나 패배로 끝난 싸움을 드라마로 복기하는 것은 어쩌면 그 자체로 이미 판타지이다. 현실에서도 쉽지 않은 싸움을 드라마를 통해 복기할 뿐만 아니라 현실과 다른 전복을 시도하고자 하는 드라마들은 그 '개연성'의 방식을 고민한다. 그래서 <태양의 후예>처럼 작가는 작정하고 썼지만, 그 작정하고 쓴 대사들이 당국자들조차 감동시키는 광범위한 보편성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할 수도 있고, <리멤버>처럼 선을 표현하기 위해 '악'에 매달리는 본말이 전도된 형국을 보일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선의 통쾌한 승리를 선보이자니 <동네변호사 조들호>처럼 실소가 나오고 마는 어설픈 기승전'미담'으로 마무리되는 구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건 인간들의 선의

KBS2 <태양의 후예>

결국 드라마들이 말하고자 하는 교훈의 결론엔 언제나 '사람'이 중심에 놓여있다. 국가나 공적 이익에 우선하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을 우선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에는 '또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수적이라는 것이 이들 드라마의 공통된 화법이다. 일신의 입신양명에만 뜻을 두었던 '개인' 강모연은 진짜 군인 유시진을 만나 진정한 히포크라테스로 거듭난다. 심지어 사전 제작이었음에도 아쉽게도 유시진의 멋짐에 편향되어 버렸지만 진짜 이 드라마의 주제가 되어야 할 것은 의사 강모연의 인류애적 성장이다.

마찬가지로 주제는 아들의 전쟁이고 유승호의 미모에 기댔지만, 시청자들이 흥미진진하게 지켜봤던 것은 초반 법정에서 서진우(유승호 분)를 배신하고 남규만(남궁 민 분)의 개가 될 수밖에 없었던 박동호(박성웅 분)의 개과천선이다. 아예 자본의 개로 시작하여 개과천선한 조들호의 유쾌통쾌한 반란으로 꾸려져 가는 <동네변호사 조들호>도 마찬가지다. 어리숙한 순경에서 자신의 목숨조차 초개같이 여긴 집요한 이재한도 있다.

주인공들만이 아니다. 주인공들의 영웅담이 성공하기 위해선 결국 주인공의 편을 들어줄, 그리고 그 편에 기꺼이 함께 설 '사람들'이 필수다. 사건마다 '미담'이나 '감동 스토리'로 귀결되는 어설픈 법정 드라마지만, 그럼에도 증인이 나타나지 않는 법정에서 '관심'을 호소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조들호 앞에 문이 열리고 나타나는 '깨인 시민들'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시대의 아픔에 관심을 호소하는 이들 드라마의 클라이막스에서 그 해결의 키를 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사람들의 '변심'이 아니고서는 결국 현실은 변화될 수 없다고 드라마들을 입을 모은다.

비행기 테러를 통해 역설적으로 증명해낸 인간의 선의

이런 일련의 계몽주의적 드라마의 흐름은 종영한 <피리부는 사나이>에서 정점을 맞이한다. 비록 안타깝게도 최근 불거진 드라마 공모전과 관련된 '표절' 논란이 안 그래도 반응이 미미한 이 드라마에 발목을 잡았지만, 표절과 관련된 도덕적 책임과 별개로 <피리부는 사나이>가 내세운 문제제기와 의식은 가치가 있다.

tvN 월화드라마 <피리부는 사나이>

<피리부는 사나이>도 여느 드라마들과 마찬가지로 자각된 주인공으로부터 시작된다. K그룹의 기업 협상가로 잘나가던 주성찬(신하균 분)은 도심 테러 현장에서 사랑하는 이를 잃고 피리부는 사나이의 뒤를 쫓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된 드라마는 경찰 무선을 따던 주성찬이 경찰 위기 협상팀으로 자리를 옮기며 본격 대테러 협상 드라마로 변신한다. 하지만 정작 '협상'과 '대화'를 내걸었던 드라마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우리 사회의 불통과 무관심, 그리고 그 속에서 자행된 약자들의 처절한 희생이었다. 그를 밝히기 위해 철거 현장의 총알받이로 차출된 전경 윤희상(유준상 분)이 도심 테러의 배후 '피리부는 사나이'가 되어 15,6회 비행기 테러까지 자행한다.

13년 전 일어났던 철거 현장의 무모한 죽음, 그런 죽음이 자행되도록 만들었던 당사자들을 하나씩 밝혀가며 그 뒤에 K그룹이라는 자본과 그를 비호하는 경찰, 그리고 그것을 침묵했던 언론의 비리를 낱낱이 밝혀내던 드라마는 마지막에 이르러 다수의 승객을 실은 비행기가 K그룹 본사 건물을 향한다는 설정을 통해, 우리 사회에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에 침묵하거나 방조했던 '사람들'에게 그 비판의 날을 향한다. 마치 침묵하는 다수가 우리 사회의 범죄를 묵인한다고 호소했던 조들호의 업그레이드 버전처럼, 드라마는 다수 시민들의 투표로 항로가 변경되는 납치된 비행기를 통해, 결국 우리 사회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에 ‘나 하나쯤이야’하는 시민들의 무관심과 양은냄비 같은 여론이 있었음을 질타한다.

하지만 테러라는 극단적 방식을 통해 다수의 방관과 표변하는 여론을 질타했던 드라마는 16회 '인간의 선의'라는 판타지 노선으로 급회항한다. 인명의 희생조차 마다하지 않고 진실을 밝히려 했던 윤희상의 마지막 테러는 결국 '인간들의 무관심'이라는 장막을 깨기 위해 자신마저 내던진 살신성인이 되었고, 자폭을 향해가던 비행기는 여전히 우리 사회 무너지지 않는 다수들의 선의로 무사히 안착하게 된다. 99번의 절망 끝에 피어난 한 송이 꽃처럼.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음을, 그 희망은 '사람'을 통해 길어진다는 것을, 드라마는 가장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을 통해 역설적으로 증명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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