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떠러지서 구해놨더니 야당이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총선 직후인 지난 20일 구조조정을 선제적으로 꺼내들며 “본질적인 구조조정이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않고서는 우리 경제의 중장기적인 전망이 별로 좋지 않다. 보다 적극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져야만 앞으로 중장기적 성장 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실업에 대비해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게 김종인 대표가 강조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김 대표와 인식을 같이 하는 최운열 비례대표 당선자 또한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노사가 고통을 분담하는 식의 구조조정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한 기업에서 근로자의 10%를 삭감한다고 칠 때, 기존 근로자들이 임금의 10%만큼 양보한다면 다 함께 갈 수 있는 것 아니냐.”

일견 ‘합리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특히 정부가 ‘정부 주도의 인위적인 인수합병은 없다’고 단언한 가운데, 개별 기업 차원에서 고용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은 없다. 그러나 이미 하청·도급·파견의 단위에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불어민주당 식의 주장은 하나마나하다. 정부가 지적하는 한계기업들, 특히 대기업들은 이미 사용자 책임이 없는 영역에서 구조조정을 본격화했기 때문이다.

▲4월 18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회의 모습 (사진=더불어민주당)

정부의 구조조정 계획은 장기 저성장 국면에 맞는 성장전략을 만들고 거시정책을 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를 유지하면서 정리해고 등을 압박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구조조정으로 발생한 대량실업을 노동개악으로 방어하겠다는 게 박근혜 정부의 계획이다. 그리고 구조조정에 대한 비판 여론을 ‘재벌 대기업의 오너 일가와 경영진에 책임을 묻겠다’는 것으로 넘어가려는 게 지금 정부의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이 정부여당에 대고 발언해야 하는 내용은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를 재편하고, 기업의 배당성향 증가 등을 손보면서 성장 전략을 마련하자는 것이어야 한다. 곳간에 쌓인 사내유보금을 고용과 투자로 유도하고, 과도한 배당을 규제하면서, 원청인 재벌 대기업이 하청 노동자의 고용을 보장해야 하는 사회적이고 제도적인 논의를 주도해야 한다.

특히 금융에 대한 규제를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3천명 구조조정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현대중공업만 하더라도 그 동안 영업이익의 상당부분이 배당으로 빠져나갔다. 박하순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정책연구위원 분석에 따르면, 1995년부터 2015년까지 현대중공업의 영업이익 누적액은 17조원이고, 이중 배당으로 빠져나간 돈이 2조5천억원 규모다. 2007년과 2010년에는 자본금의 150%, 140%인 4666억원, 4290억원을 배당하기도 했고 적자를 기록한 2000년에도 582억원을 배당했다. 2004년과 2005년의 배당성향은 220%, 52.8%나 된다는 게 박하순 연구위원 분석이다.

박하순 정책연구위원은 27일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현대중공업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물에 재정적으로 튼튼한 기업이다. 하청의 고용과 임금을 책임질 능력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야당이 대안으로 제시하는 ‘노동시간 단축-일자리 나누기’에 대해 “조선, 해운업종에서 노동시간은 이미 줄었다”며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저성장과 경제위기 전망에 맞춰 배당을 규제할 필요가 있다”며 “특정업종이 위기라면 정부와 국회가 사회적 지원을 해 고용을 보장하면 된다”고 제안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오른쪽) 등 더민주당 지도부는 지난 3월 7일 서울 중구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을 방문해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과 만났다. (사진=더불어민주당)

이런 상황에서 야당이 제안할 수 있는 구조조정 방안은 사후약방문 식의 땜질 처방이어서는 안 된다. 더 근본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예를 들면 경제민주화라는 기조에서 구조조정을 사고하는 것이다. 그런데 총선 이후, 김종인 대표는 구조조정 이야기를 먼저 꺼내들었고 경제민주화 담론을 스스로 묻어버렸다. 김 대표는 한국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난 한 번도 재벌개혁을 입에 올린 적이 없다”고까지 말했다. 한때 야당이 강하게 제기했던 소득주도성장론은 지금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 법인세 인상과 금융 규제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지 않고 있다.

심각한 것은 김종인 대표가 노동조합을 정책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지난달 민주노총을 방문해 “노조가 사회적 문제에 집착하면 근로자 권익보호가 소외될 수 있다”고 했다. 제1야당의 경제민주화는 이미 후퇴했다. 아니, 보수적 경제민주화라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다. 더불어민주당과 함께 이 당보다 우측에 있는 국민의당, 새누리당이 추진하는 구조조정이 노동자의 고혈만 짜낼 것이라는 우려가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치의 우경화, 보수적 경제민주화에 대한 비판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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