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 KBS 이사는 어버이연합(대한민국어버이연합)이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로부터 돈을 받은 게 뭐가 문제냐고 했다. 물론 그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발언을 일삼는, 언론인으로서 자질이 매우 부족한 사람이라 문제의식이 없을 수도 있겠다고 치부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반응이다. 어버이연합이 정부여당으로부터 돈을 받고 청와대와 국정원의 지시를 받았으리라는 짐작은 그동안 많았기에 놀라기보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 많다. 양파껍질처럼 매일 유착관계의 새로운 내용이 밝혀져 언론지면을 채우지만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지 않아 씁쓸하다.

어버이연합의 추억

누구나 한번쯤 집회에 가거나 집회 주변을 가면 보았을 어버이연합. 그래서 어버이연합에 관한 추억이 하나쯤 있을 게다. 내게도 그들에 대한 기억이 있다. 바로 국가인권위원회를 제자리로 돌리기 위한 활동을 하면서 그들과 처음 대면했다. 물론 그때도 그들은 폭력적이었다.

2010년 11월 현병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정부가 저지른 인권침해를 계속 부결시키면서 인권위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게 되자, 유남영·문경란 두 상임위원이 현병철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사퇴했다. 이명박 정부가 명예훼손이나 집회시위 탄압 등으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용산참사와 쌍용차 정리해고에 대한 국가폭력을 저질러, 어느 때보다 인권위의 역할이 필요했으나 현병철 위원장은 이를 지속적으로 방해하였다.

어버이연합 등이 반인권 논란이 된 현병철 인권위원장을 옹호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사진=참세상)

두 명의 상임위원이 사퇴한 후 처음 열리는 국가인권위 전원위원회에서 어버이연합을 만났다. 전원위원회는 두 명의 상임위원 사퇴에 관한 현병철 위원장의 책임을 묻는 자리였다. 인권위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던 인권활동가들도 전원위원회 방청을 갔다. 다른 위원들이 위원장의 책임을 묻자 위원장은 자신도 역할을 했다며 부인했고 인권활동가들은 위원장 사퇴를 촉구했다. 그런데 갑자기 회의장 밖이 소란스러워지고 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바로 어버이연합 회원 소속 50여명이 "동성애를 거부한다, 빨갱이는 잡아넣어라"고 외치며 난입해 회의가 중단되기도 했다.

그 후에도 어버이연합을 만날 수 있었다. 인권단체들은 현병철 사퇴를 촉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 건물에서 점거농성을 하고 매일 저녁 촛불문화제를 하며 시민들의 지지를 모으고 있었다. 그때마다 몇 번씩 어버이연합이 출동해 우리 집회를 방해했다. 그들은 현병철을 직접 옹호하는 발언을 하지는 않았으나 ‘동성애 조장하는 인권위 규탄’ 등을 외치며 인권활동가들을 공격했다. 그들이 우리를 때리려고 해서 경찰이 막기도 하는 웃지 못 할 일을 겪었다. 인권활동가로서 경찰에게 도움을 받기는 처음이었으니까. (물론 당시 경찰이 공정한 역할을 한 것만은 아니다. 인권위 설립일에 큰 집회를 했는데 바로 옆 장소에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의 집회신고를 경찰이 수리했다. 당시는 경합하는 동일한 내용으로 동일 장소에서 집회신고를 수리할 법적 근거도 없었는데 경찰은 그들의 집회신고를 받아주고 폴리스라인만 치고 갔다.)

아무튼 그때를 떠올리니 그것도 어버이연합이 청와대의 지시를 받은 게 아닌가 싶다. 당시에는 어버이연합이 현병철 옹호도 아닌 엉뚱한 내용(동성애 반대, 인권위 해체)으로 인권활동가들을 공격하나 싶어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청와대가 개입하지 않았나 의심이 가긴 했다. 왜냐면 2009년 현병철 취임식 때 청와대가 보수단체를 동원해 인권활동가들의 반대에 맞불을 놓으려 한 게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어서다. 하지만 어버이연합에서 온 사람들의 구호가 하도 엉뚱해서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밝혀지는 사실을 보니 아마도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성을 훼손하기 위해 청와대가 얼마든지 개입할 수 있겠다 싶다.

혐오를 공공연하게 주장하도록 만든 청와대

지금도 그들 중 일부는 보수 우익혐오세력들이 동성애 반대를 주장하며 인권위 해체나 인권위법 개정을 촉구하는 운동을 하고 있다. 결국 소수자혐오를 당당하게 외치는 혐오세력의 거리활보를 가능케 한 것은 청와대이고 국정원인 셈이다. 이들은 성소수자만이 아니라 세월호 유가족 등 사회적 약자들을 필요에 따라 공격했다. 세월호 유족들에게 ‘놀러가다 죽었는데 웬 단식이냐, 보상금을 노리냐’며 피해자들을 모욕하며 혐오 발언을 일삼았다. <시사저널>이 확보한 어버이연합의 집회 회계장부에는 2014년 4월부터 11월까지 102차례 연 세월호 반대 집회에 7618만원의 알바비를 들였으며, ‘시체장사’ 운운하며 유족들을 모욕했던 엄마부대도 탈북자들에게 돈을 주고 집회를 열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들을 보며 누군가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해 막말을 해도 무언의 제재가 통용되지 않다는 것을 감지하였을 것이다. 경찰도 정부도 언론도 그들의 혐오발언에 어떤 제재도 하지 않았으니까 사람들을 사회적 학습을 받은 셈이다. 저렇게 해도 된다고. 그 후 인권침해 발언이 온라인이고 오프라인이고 차고 넘쳤다. 국제인권기준을 지키며 소수자혐오를 없애기 위해 노력해야할 정부가 소수자 혐오를 부추기다니!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세월호 유족들을 비롯한 소수자들은 그들의 고통은 더욱 커졌을 것이기에 문제다. 목소리가 크고 권력집단의 지원을 받은 그들의 혐오발언이 보수언론에 크게 보도될 때 그들은 사회적 지지를 받지 못한다고 느꼈을 테니까.

공론장을 왜곡하고 권리를 침해하는 어버이연합게이트

이번 청부시위도 대통령 선거 때 국정원이 댓글을 달며 여론을 호도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아니 더 심각하다. 공론장을 더 심각하게 왜곡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사회에서 민의는 여러 공론의 장에서 형성된다. 특히 집회시위는 힘이 없는 노동자 민중들이 자신의 의견을 대변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이렇게 아래로부터 형성된 공론을 수용하는 것이 민주주의에 맞는 정치다. 그런데 청와대, 국정원, 전경련 등 권력집단은 민중의 집회시위를 악용해 마치 민의인양 왜곡했다. ‘우리 정책을 지지하는 시민들도 많지 않냐’며 정당화했다.

청부시위로 여론을 만들고 여론정치가 펼쳐지면 사람들은 실제 ‘위로부터 시작된 담론-명령’을 수용하면서 도 본래 ‘내 것’인양 착각하게 된다. 정확히 말하면 여론정치가 아니라 여론공작이다. 현대 민주주의사회에서 여러 의견이 공존할 수 있다. 정부정책을 지지할 수도 있고 반대할 수도 있다. 문제는 정부가 자신의 정책을 홍보하는 광고와 달리, 청와대와 국정원의 지시를 받고 시민사회 일원이라고 하는 민간단체가 정부정책을 지지하는 양 입장을 내는 것은 다르다. 공론의 투명성이 사라졌으며 원래부터 정부를 지지하는 민간단체의 입장인양 사기를 친 여론조작이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어떤 정치적 입장이나 어떤 정책을 지지할 때 주변의 반응을 살피게 된다. 나와 비슷한, 다시 말해 정부 관료나 재벌기업이 아닌 갑남을녀인 동료 시민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귀를 기울이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판단을 내린다. 그런데 권력집단의 지시로 만들어진 의견을 동료시민의 의견과 동일하게 여기고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면 시민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새 생각을 조종 받은 셈’이니 분노할 수밖에 없다. 나의 의견이 거대한 권력집단의 은밀한 작동에 의해 형성되고 왜곡되고, 그 과정에서 개인의 자유로의 의견형성의 권리, 정치 참여의 권리가 침해된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수언론은 그들의 주장이 시민사회 주요 여론인양 포장했고 하나의 여론만 수용해서는 안 된다고 정부를 압박했다. 청부시위로 가시화한 청부여론이 정부 정책을 옹호하는 식으로 돌아갔다. 기막힌 짜고 치기다. 어버이연합게이트는 국가권력기관인 청와대와 국정원이 여론을 조작하고 시민의 권리를 침해한 중대한 범죄이고 인권침해다. 그러나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처장이 방송에 나와 뻔뻔하게 말했음에도 청와대는 집회를 지시한 적이 없다고 근거도 대지 않고 발뺌만 하고 있다.

전경련의 뒷돈, 노동자 권리의 약화

이번 사건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하는 것은 청와대가 지시했는데 돈은 전경련이 지급했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정경유착의 부당거래가 드러났다. 전경련은 2012년부터 총 5억 원 넘는 거액을 어버이연합에 지원했다. 어버이연합은 벧엘선교재단이라고 활동하지 않는 유령단체를 통해 돈을 받는 불법(금융실명제 위반 등)을 저질렀다. 그러니 조우석 KBS 이사가 말한 “세상이 온통 반기업 정서로 똘똘 뭉쳐 돌아가는 적대적인 기업환경에서 그나마 우호적인 시민단체와 인식을 함께 한 게 뭐가 그토록 큰 문제란 말인가”는 주장을 하려면 먼저 불법 행위를 옹호하는 것인지도 밝혀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전경련의 어버이연합 지원은 정경유착일 뿐 아니라 노동자권리를 약화시키는데 동원됐다는 문제가 있다. 전경련은 기업들로 이루어진 권력집단인데 어버이연합은 이들의 지원을 받고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집회를 했다. 어버이연합의 차명계좌에 전경련 명의로 거액이 지급된 작년 9월~12월을 전후해 어버이연합은 ‘노동관련법 처리 촉구’ 등 전경련 입장을 대변하는 집회를 수차례 개최했다. 비정규직 확대와 일반해고제 도입 등으로 노동자의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되는 노동악법들을 시민들이 지지하는 양 기만했다. 조우석 이사가 말한 것처럼 시민단체의 자발적인 행동도 아니고 순수한 지원도 아니다. (게다가 그의 말 중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한국이 적대적인 기업환경이라는 말이다. 듣도 보도 못한 평가다. 기업에게 온갖 특혜를 주는 정책만 있는 나라에서 무얼 보고 그런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전경련과 어버이연합의 유착을 쉽게 이해하려면 중앙지법원의 최근 판결을 떠올리면 된다. 법원은 유성기업이 만든 사측노조(어용노조)는 노조의 기본인 자주성과 독립성이 없어 무효라고 했다. 유성기업은 민주노조를 깨뜨리기 위해 2011년 어용노조를 만들었기에 민주노조는 어용노조에 대립할 수밖에 없었는데 사측은 마치 이들의 갈등이 노노갈등인 양 왜곡했다. 기업은 어용노조에 가입한 사람들에게 임금이나 잔업을 더 주었고 그들의 실수는 눈감아주었다. 뭔가 비슷하지 않은가. 한쪽은 돈을 주고 한쪽은 시키는 대로 하고……. 민간단체가 독립성 없이 정부나 기업 등 권력집단에 의해 조종된다면 제대로 된 민간단체라 할 수 없으며, 그러한 집단에 의해 노동자의 권리가 쉽게 침해되도록 방치해서도 안 될 것이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어버이연합게이트를 밝혀진 엄청난 공모와 사기에 분노하는 게 아닐까. 그들의 불법적이고 인권침해 행위를 언론에서만 규탄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짐작가능한 일이라고 손 놓아서도 안 된다. 이제라도 진짜 거리에서 권력집단에게 민의를 보여줄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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