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뺑소니 사건의 진범이 누구인지 알고 난 후 그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던 태석은 자신의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소리도 내지 못하고 오열할 수밖에 없었다. 친조카처럼 생각했던 이찬무 대표의 아들 승호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태석의 분노는 그렇게 잔인하게 그의 모든 세포를 자극시켰다.

박태석 아버지의 이름으로;
자살 위장 살인은 돌이킬 수 없는 진실을 향한 방아쇠가 되었다

태석은 갑자기 사무실을 뛰쳐나가 곧바로 차를 몰았다. 이찬무의 아들이자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봐오면서 조카처럼 생각했던 승호를 찾은 것은 강현욱의 죽음 때문이다. 죄책감이라고는 전혀 존재하지 않던 결벽증 환자가 초라한 모습으로 야산에서 자살했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억지로 끼워 맞춰 정리를 하려는 듯한 상황이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았던 태석은 눈물을 흘리며 고백하려던 승호가 생각났다. 마지막 퍼즐은 그렇게 승호일 수밖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알고 있던 승호가 아니었다. 승호는 너무나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 태석의 질문에 능숙하게 답하며 죽은 현욱이 범인이라고 말하는 승호를 바라보는 태석은 답답했다.

자신의 일을 현욱에게 대입해 뻔뻔하게 태석 앞에서 거짓말을 했던 승호의 마지막 눈물은 진짜였다. 비록 자신보다는 가족을 위해 거짓말을 했지만 승호는 태석에게 거짓말을 하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동안 지켜왔던 그리고 자신이 지향하던 모든 가치가 무너진 승호는 시한폭탄과 같은 존재로 변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tvN 10주년 특별기획 금토드라마 <기억>

꽃다발과 보상금, 뻔뻔함과 죄책감, 절대 하나가 될 수 없는 이 둘이 한 사람의 것이라는 사실은 믿을 수가 없다. 모든 것이 진실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 진실 앞에 선 사람들은 자신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모든 것을 그렇게 안개 속에 갇혀 있을 뿐이다.

승호를 만난 후 태석이 향한 곳은 어린이집이었다. 15년 전 희망슈퍼 범인으로 지목된 권명수를 변호하던 그때로 돌아간 태석은 동우가 다니던 어린이집을 찾았다. 15년 전과는 다른 그곳에서 다시 한 번 흔들린 태석은 울고 있는 동우를 발견한다. 그리고 늦게 와서 미안하다는 태석에게 "무서워 아빠"라며 우는 동우를 안으려 해도 안을 수 없는 현실이 너무 괴롭다.

이 지독한 악몽과 같은 현실에서 태석이 점점 더 깊은 고통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정우 학교를 찾은 태석은 힘껏 안았다. 15년 전 아들을 잃고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했던 아들. 아버지의 이름으로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태석은 그렇게 정우를 안으며 역설적으로 동우에 대한 아픔을 채워나갔다.

지독할 정도의 고통 속에서 헤어 나온 태석은 로펌에 돌아와 이찬무에게 사직서를 제출한다. 신 부사장을 궁지로 몰아넣은 태석은 정진을 구하기 위해 사직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반려했다. 현재 상황에서 태석의 이런 극단적인 행동은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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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을 하기 시작한 것은 진실을 찾기 위한 첫걸음이다. 그렇게 태석은 자신이 믿었던 모든 것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별 볼일 없던 국선변호사였던 자신을 대한민국 최고 로펌이라는 태선에서 왜 스카우트했는지 물었다. 아이를 잃고 미친 듯 일하고 싶었던 그때는 생각할 이유도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렇게 시작된 태석의 의심은 자연스럽게 진실에 대한 욕구를 강화시킬 수밖에 없다.

"더 이상 후회 할 일은 하지 않을 겁니다"

자신의 현실을 잊기 위해 미친 듯 일을 해왔던 태석. 그는 자신이 기억을 잃어가고 있음을 알고 난 후 다시 진정한 법조인으로서 가치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진실을 위해, 법 정의를 위해 이제는 타협하지 않고 물러서지도 않겠다는 태석은 15년 전 자신이 버린 사건인 '희망슈퍼 살인사건'의 누명을 쓴 권명수를 찾아갔다.

살인자에 대한 재심청구를 준비하는 태석. 그런 태석의 행동에 당황하는 형사와 명수는 믿지 않았다. 진실을 외면하고 도망쳤던 그가 15년이 지나 재심청구를 한다는 사실이 말도 안 되었기 때문이다. 동우를 지키기 못했던 태석. 믿음직한 아들 정우를 위해서라도 당당한 아버지가 되고 싶은 태석은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싸움을 시작했다.

태석의 변화는 주변에서도 점점 알아채기 시작했다. 태석의 아버지는 여전히 한심한 행동을 보인다. 처음 보는 사돈에게 태석이 알츠하이머라는 사실을 알아서 고백하고, 충격을 받은 영주 어머니는 오열할 수밖에 없다. 딸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보이는 고통 속에서 마음이 편할 어머니는 세상에 없으니 말이다.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너무 잘 아는 딸은 그렇게 부둥켜안고 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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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변호사는 태석이 금연을 하면서 기억에 문제가 생긴 듯하다고 한정원 변호사에게 말했다. 그저 단순한 이야기였지만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 후배의 목격담을 종합해보면 태석이 이상하다. 그렇게 태석을 떠보려던 한 변호사는 봉선화의 등장으로 확증을 찾지 못하지만 이상할 뿐이다. 결국 이렇게 점점 확산되는 태석의 실체는 결국 그를 더욱 궁지에 몰아넣을 수밖에는 없게 된다.

신 부사장은 태석과 정진을 감시하게 한다. 정진을 압박해보았지만 이미 신 부사장의 패턴을 알고 있던 태석으로 인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분노한 신 부사장이 그대로 멈출 인물은 아니다. 그렇게 태석을 감시하던 그들은 이상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태석을 감시하는 것이 자신들만은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강현욱의 중학교 시절 담임을 만나고 온 정진의 이야기를 듣고 태석은 분노했다. 뺑소니 사고 당시 현욱은 오토바이 사고로 허리를 다쳐 병원에 장기 입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로 인해 태석의 퍼즐은 완벽하게 맞춰졌다. 이찬무를 찾아갔지만 차마 들어가지 못한 태석은 완벽한 증거가 없다면 오히려 진실이 묻힐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와 그 분노를 어떻게 하지 못하고 문을 잠그고 창을 가린 채 소리 죽여 분노하는 태석의 모습은 숨이 멎을 정도로 대단했다. 과거 심은하의 대표작이었던 <청춘의 덫>은 그녀가 오열하며 방바닥을 기어다는 장면으로 유명했다. 그동안 심은하를 배우로 인정하지 않았던 이들마저 배우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심은하의 혼신을 다한 연기는 압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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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석을 연기한 이성민의 마지막 오열 장면은 절제와 폭발이 함께하는 묘한 감정이 뒤섞인 명장면이었다. 세포마저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이성민의 온몸은 그 상황에 분노해 있었다. 그렇게 죽을 듯한 상황에서 처연하게 그 지독함을 참아내는 이성민의 연기는 '갓성민'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릴 정도로 대단했다.

회를 거듭할수록 더욱 매력적인 드라마 <기억>. 드라마의 완성도에 비해 낮은 시청률이 아쉽기는 하지만 보지 못한 이들이 안타까울 정도로 <기억>은 tvN이 내놓을 수 있는 최고의 드라마 중 하나로 각인될 수밖에는 없어 보인다. 완벽한 이야기와 연출, 그리고 연기가 하나가 된 상황에서 더 바랄 것이 없기 때문이다.

태석이 알츠하이머라는 것을 확인한 후 그의 행동을 이해하게 된 은선. 태석의 기억 속에는 언제나 동우가 함께한다는 영주의 이야기를 듣고 길거리에서 더는 참지 못하고 오열하던 은선의 모습은 아프게 다가왔다. 자신만 그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고 생각했지만, 태석은 더 큰 고통 속에서도 이를 참아왔다. 그리고 그렇게 지독한 고통은 태석에게 기억을 앗아가는 형벌을 내렸다.

마지막을 향해가는 <기억>은 실제 사건인 '삼례슈퍼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희망슈퍼 살인사건'을 통해 모든 것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신 부사장이 살인범으로 유력한 이 사건의 진실 찾기는 억울한 희생자를 구하기 위한 박태석의 마지막 임무이고, 아버지의 이름으로 당당해질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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