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와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의 싸움이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제작사협회는 배우들의 출연료 1500만원을 상한선으로 그었다. 이에 대해 연예매니지먼트협회는 ‘왜 1500만원이냐, 그 근거를 제시하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12월5일 제작사협회가 배우 박신양씨에게 ‘무기한 출연정지’ 조치를 결정한다. 당시 제작사협회에 따르면, 회원사들은 박신양씨가 SBS <쩐의 전쟁>의 공동제작사인 모 프로덕션을 상대로 드라마 연장방송에 따른 미지급 출연료 3억4100만원과 프로듀서 비용 3억8000여만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낸 것과 관련, 무기한 출연정지 조치를 비롯, 방송사에 해당 프로덕션에 대한 편성금지 요청, 당분간 협회입회 금지 등을 의결했다.

▲ SBS 드라마 '쩐의전쟁' 홈페이지 캡처ⓒSBS
일방적이고 느닷없는 결정이었다. 배우출연료 급상승에 대해 제동을 걸려는 의도였음을 모르는 바 아니나, 배우 박신양씨와 그의 제작사를 희생양으로 삼는 과정에서 제작사협회의 독단과 독선이 짙게 드러났다. 택도 없는 금액을 제시하며, 특정배우를 캐스팅하는 몹쓸 관행을 만들어 정착시킨 곳은 다름 아닌, 제작사협회 소속사들이다.

그런데 30여개의 협회 소속사가 아닌, 비회원 제작사를 겨냥해, 편성금지 요청을 방송사에 내고, 협회가입 금지 조치를 내린 것은 누가 봐도 비회원사를 희생양으로 삼는 제작사협회의 마녀사냥이었다. 이와 관련, 신현택 드라마제작사협회장은 어느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박신양이 4회 연장 출연료로 3억원을 받은 것은 무리한 요구이며 이는 대중문화를 저해하는 요소로 상식을 벗어나는 일을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이 발언에 대해서 동의할 수 없다. 4회에 3억이면 회당 7500만원이다. 그것도 연장방송이다. 비록 나중에 스스로 삭감선언을 했지만, 애초 <에덴의 동쪽> 주연배우의 회당 출연료가 7000만원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동시간대 최고의 시청률을 올리고 있던 <쩐의 전쟁> 주연배우가, 그것도 과도한 고무줄 편성을 통한 연장방송에 회당 7500만원 받는 것은 ‘대중문화 저해 요소’이고, 정상편성에서 회당 7천만원 받는 것은 ‘대중문화 진흥요소’인가?

또한 신현택 회장은 <쩐의 전쟁> 제작사를 향해서도, “그 사람들이 드라마를 제작하는 것 자체도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회당 7500만원을 주겠다고 약속한 제작사를 용납할 수 없다는 거다. 그러면 처음부터 회당 7천만원을 약속한 <에덴의 동쪽> 제작사도 용납할 수 없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아무 언급이 없다. <에덴의 동쪽> 제작사는 협회 회원사이기 때문에 봐 주는 것인가?

이렇게 비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와 드라마 위기에 대한 원인진단의 부실함이 드라마제작사협회 전반에 깔려 있다.

▲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홈페이지 캡처.
방송사와 제작사협회는 그 동안 드라마 고비용의 근본원인을, ‘배우 출연료’에서 찾았다. 배우출연료가 최근 몇 년간 급상승함으로써, 드라마 경쟁력 상실에, 치명적인 요소로 작동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드라마 경쟁력 상실’의, 모든 원인은, 아니다.

‘배우 출연료’만큼 치명적인 요소를 지적하자면, 문화부의 개념 없는 외주정책 강행 및 드라마정책의 주도권 다툼, 구 방송위원회 현 방통위의 외주비율 현실조정기능 상실, 외주제작 드라마와 방송사 내부제작 드라마에 대한 '협찬 및 PPL' 등에 대한 불평등 규제 등도 ‘배우출연료’ 못지않은 치명적인 요소다. 아니 오히려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이런 정책의 실패, 즉 실정에 따른 경쟁력 상실이 대표적인 외부요인이다.(지상파 내부요인은 이 글에서는 논외로 하고 다른 글에서 언급하고자 한다.)

한데 이 모든 문제를 다 제쳐두고 오로지 ‘배우출연료’만 문제 삼는 이유는 뭘까? 외주정책, 외주비율, 외주제작사와 방송사 내부제작 간의 규제 불평등의 문제는 ‘제작사협회 vs. 지상파 3사’의 갈등증폭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하나 ‘배우출연료’문제는 ‘연예매니지먼트협회 vs. 제작사협회+지상파 3사’의 관계가 성립함으로써, 제작사협회는 지상파를 등에 업고 싸울 수 있는 아주 유리한 위치에 선다.

▲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 홈페이지 캡처.
이런 역관계를 배경에 업고, 제작사협회가, 배우 출연료 상한선 1,500만원을 일방적으로 선포하는, 몹쓸 비민주성이, 박신양씨 징계와 ‘쩐의 전쟁’ 제작사 징계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한 번 드러났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배우출연료’ 상한선을 정한다고, 첫째 지켜질 수 있는가? 둘째, 상실한 드라마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특정배우 출연료 상한선은 지켜지기 힘들다고 보는 것이 드라마 시장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이라면 동의할 것이다. 결국 또 다른 ‘뒷돈찔러주기 관행’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출연료 상한제보다, 오히려 ‘총 제작비 대비 출연료 비율’을 정하고, 드라마의 ‘표준회계방식 도입 및 공개가 원칙’이라고 선언을 했더라면, 드라마 제작비의 효율적인 배분을 통한 드라마 질 제고에는 상당부분 기여할 수 있을텐데...제작사협회는 자기편의적 측면만 집착하다가 오히려 자충수를 둔 꼴이다.

또한 배우출연료만 문제 삼았다는 사실이다. 출연료만 문제였다면, 사실상, 드라마 위기는, 위기라고 할 수 없다. 더구나 출연료라는 돈의 문제에 한정해서 보더라도, 배우출연료만 문제삼은 것은 부적절한 조치였다.

최근 몇 년 동안, 배우의 출연료만큼이나 천정부지로 올랐던 게 바로 ‘작가’의 ‘원고료’다. 그런데 제작사협회는 작가의 원고료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왜일까? 배우 출연료 상승은 제동을 걸어야하지만 작가 원고료 상승은 방치해도 된다는 뜻일까? 배우출연료만큼이나 작가 원고료의 급상승도 드라마 경쟁력 상실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동했는데.

그럼 왜일까? 그것은, 배우는 연예매니지먼트사 소속이고, 작가는 제작사 소속이기 때문이다. 즉, 자기들 내부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편함’ 때문에 내부의 불합리한 원고료 문제에 대해서는 일절 개선책을 내지 못하면서, 외부의, 상대적으로 손쉬운, 쪽만 타격하는 꼴만 연출한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 뿐만 아니다. 제작사협회가 출연료 상한선 1,500만원을 정하면서, 배용준, 송승헌 등 한류스타 13명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한 것이다.

13명은, 드라마 경쟁력 상실과정에서, 전혀 책임이 없는가? 오히려 이들의 지나친 출연료가 다른 배우들의 출연료를 끌어올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이로 인해 '배우출연료'가 드라마위기의 유일한 원인양 논의됐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책임이 큰 13명의 한류스타에 대해서는 ‘예외조항’을 적용한다는 것. 어불성설이다. 아니 출연료 상한선이라는 제도 도입을 선언한 것 자체를 우습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제작사협회가 내 놓은 출연료 상한선 문제는 출발부터 허점과 모순덩어리로, 드라마경쟁력 회복을 위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사회적 분란만 초래했다고 하면 과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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