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주의 BEST : 나 PD의 히든카드는 안재현 아닌 낙오!
tvN <신서유기2> (4월 22일 방송)

나영석 PD의 몰카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신참 안재현은 tvN <신서유기2> 섭외사실을 알자마자 여권부터 확인했고, 제작진과의 첫 만남에 아예 짐을 싸갖고 오는 치밀함을 보였다. <꽃보다 청춘> 시리즈를 통해 드러난 나영석 PD의 ‘몰카’ 작전은 이미 만천하에 공개됐고, <신서유기2>에 대한 기대감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그래서 나영석 PD는 더욱 대범해지기로 한 것 같다. KBS <1박 2일> 시절, 한 명의 출연자를 낙오시킬 때 최소 한 명의 VJ는 남겨뒀던 나영석 PD는 이제 출연자들만 덩그러니 남겨놓고 뒤도 안 돌아보고 숙소로 향했다. 과거엔 베이스캠프로 돌아오기만 해도 미션 성공으로 쳐줬던 나 PD는 이제 정해진 시간 안에 숙소로 돌아오지 못하면 출연자들의 트렁크를 한국으로 보내버리겠다는 어마무시한 벌칙까지 제시했다.

4월 22일 방송된 tvN <신서유기2>

더 독해져야만 살아남는 예능. 시즌제 예능일 경우, 압박감은 더욱 심하다. 안재현을 제외하면 똑같은 출연자에 똑같은 중국이다. 물론 안재현은 초면에 강호동에게 “폭력적인 모습을 많이 봤다”고 지적하는 대범함, 새옹지마의 뜻을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아니냐”고 대답하는 백치미, 삼국지에 나오는 세 나라를 묻는 질문에 “유비땅, 조조땅, 그 다음은 모르겠어요 디테일하게 안 봐서”라고 말할 수 있는 당당함을 두루 갖췄다. 그러나 아직까지 세 형의 관계에 비집고 들어가기엔 너무나 신참이다. 지난 시즌과 다른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는 안재현에게만 의존해서는 안 됐다. 그래서 꺼내든 나 PD의 카드는 'NAK-O'(낙오)였다. “얘네(출연자)끼리 찍어오면 돈도 덜 들잖아요”라는 해맑은 발상에서 시작된 블록버스터급 낙오 미션.

나 PD가 흰 도화지를 펼쳤다면, 그 안에 새로운 그림을 그려 넣은 건 네 남자였다. 공항에서 20km 떨어진 숙소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돈이 필요한데, 카드 비밀번호를 3회 이상 틀린 덕분에 현금 인출에 실패했다. 결국 이수근과 안재현의 트렁크를 고국으로 보낸 다음에야, 네 남자는 제작진이 ATM기 앞 쓰레기통 밑에 숨겨놓은 돈을 갖고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강호동은 중국어 발음에, 안재현은 메모리카드가 꽉 차서 촬영이 불가한 카메라에 유난히 집착했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도 묘하게 여유로운 네 남자. 그렇게 나 PD는 공항에서 숙소까지 오는 과정만으로도 한 회 분량을 거뜬히 만들어냈고, 그 안에서 지난 시즌과는 또 다른 네 남자의 모습을 발굴했다.

이주의 WORST : <태후> 좀 그만 우려먹지 말입니다!
KBS <배틀 트립> (4월 16일 방송)

또 <태양의 후예>다. 주연 배우 송중기가 연예인 최초로 9시 뉴스에까지 출연하는 현상이 발생할 정도로, <태양의 후예>는 KBS가 목숨 걸고 홍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드라마다.

연예인들이 직접 다녀온 여행 경로를 가지고 대결을 펼치는 <배틀 트립>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예 오프닝부터 <태양의 후예>의 인기를 등에 업고 가겠다는 속내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송중기와 같은 헬스장에서 운동한다는 이특은 등장과 동시에 “<태양의 후예>만 나와도 방송이 흥한다”고 했다. 성시경이 “송중기 씨 오늘 옵니까?”라고 묻자, 이특은 기다렸다는 듯이 “송중기 씨가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는 잠시 후에 알려드리겠다”며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낚시에 들어간다. 제작진은 이특이 ‘송중기’를 언급할 때마다 <태양의 후예> 장면을 삽입하고, ‘드디어 송중기 등장’ 같은 낚시 자막을 넣었다. 물론, 정작 등장한 건 송중기가 아닌 헨리였다.

이특과 헨리가 떠난 ‘태백의 후예’ 여행은 흡사 한류 팬의 관광기와도 같았다. 해당 장소의 역사나 의미를 짚어보는 대신, 일단 <태양의 후예> 장면과 실제 장소를 비교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태양의 후예>를 재현한답시고, 헨리의 입모양에 송중기 목소리를 입히고, 송중기 몸에 헨리 얼굴을 합성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스튜디오에서 이를 지켜보던 출연자들은 박장대소했고, 제작진은 “상대 팀도 반한 연기”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4월 16일 방송된 KBS <배틀 트립>

차라리 <태양의 후예> 촬영지에서 드라마 패러디만 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송중기가 추천한 맛집에 가서 송중기가 먹었던 고등어 자반을 먹으며 뿌듯해하는 이특과 헨리의 모습은 너무 민망해서 지켜보기 힘들 정도였다. 아니, 여기까지도 이해할 수 있다. 지금 가장 뜨거운 드라마를 다룬 ‘시의성’이라는 명분이라도 있으니 말이다. 가장 유명한 <태양의 후예> 오픈 세트장을 찾아갔으나, 흔적도 없이 사라진 세트장을 바라보는 두 남자의 망연자실한 뒷모습은 아예 방송에 내보내지 말았어야 했다. 시청자들에게 유용한 여행 정보를 전해주는 것이 기획 의도인 프로그램이 이토록 준비성 없는 여행기를 보여주고, 이를 ‘리얼’이라 포장하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래서 <태양의 후예> 인기를 업고도 92:8이라는 성적으로 완패를 했다는 것이 전혀 놀랍지 않다. <태양의 후예>라는 이슈 위에 그들만의 콘텐츠를 얹었어야 했는데, <배틀 트립>은 <태양의 후예> 그 자체만으로도 우승을 노리는 양심 없는 프로그램이었다. ‘태양의 후예’가 아니라 ‘태백의 후회’다.

이가온 / TV평론가
웹진 텐아시아와 잡지사 하이컷을 거쳐 지금은 프리랜서로 활동 중. 회사를 퇴사한 후에도 여전히 TV를 놓지 못하고, TV평론으로 밥벌이하는 30대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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