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한 기자·PD들을 비제작부서로 인사발령 내는 등 논란을 자초했던 MBC가 ‘시사기자’를 뽑는다. MBC기자협회는 “시사기자 채용은 모욕적이다. 광화문에서 A기자를 데려오라”고 촉구했다. 법원에서도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부당전보 판결을 받은 직원들을 불러들여 제작을 맡기라는 주장이다.

MBC(사장 안광한)는 현재 홈페이지를 통해 <MBC 경력사원 공개채용>을 진행 중이다. 모집분야는 ‘해외사업’과 ‘시사기자’, ‘제작PD’, ‘편성PD’ 등이다. MBC의 ‘시사기자’ 채용 관련 모집요강을 살펴보면, 업무내용은 “시사제작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제작”(경력 5년)이다. ‘제작PD’의 업무내용은 “시사·다큐 프로그램 연출 및 조연출”(경력 2년), ‘편성PD’의 업무내용은 “기존 실시간TV 편성과 다매체 시청행태에 따른 편성 전략 수립”(경력 2년) 등이다. 5월 2일(오후6시)까지 지원을 받는다.

MBC '시사 기자' 채용 모집 공고

이 가운데, ‘시사기자’와 ‘제작PD’ 모집 부분에 눈길이 쏠린다. 업무 내용은 시사다큐 프로그램 제작이다. 그동안 MBC는 경영평가보고서 등을 통해 “<PD수첩>의 추락”, “<PD수첩>과 <시사매거진2580> 활성화” 등 ‘시사’ 관련 지적을 많이 받아왔다. 그런 점에서 해당 업무를 강화할 필요가 제기된 것은 사실이다.

MBC, 시사다큐 제작할 ‘시사기자’ 채용?

문제는 MBC가 시사다큐 프로그램 제작을 주로 해왔던 기자·PD들을 석연치 않은 이유로 해고하거나 비제작부서로 인사발령을 하면서 ‘보복인사’ 논란에 휩싸여왔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황우석 박사 줄기세포 신화의 허상을 파헤친 시사고발로 유명한 한학수 PD를 신사옥개발센터로 전보시켜 스케이트장 관리를 맡겼던 2014년 말 대규모 인사발령이다. 해당 기자·PD들은 현재 소송을 통해 해고 등 징계무효, 전보조치 무효 등의 판결을 받은 바 있다. (▷관련기사 : 법원, MBC 김환균·한학수 등 전보에 “무효” 결정)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는 12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부당전보 등 취소 가처분을 제기했다. 사진은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가 지난 4일 낮 12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신사옥 앞에서 '기준 없는 부당발령 보복인사 철회하라'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미디어스

2012년 파업 당시 해고된 최승호 PD 역시 <PD수첩> ‘검사와 스폰서’, ‘수심6m의 비밀’ 편 등을 제작했던 MBC 간판PD였다. 최승호 PD는 현재 뉴스타파 앵커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자백>은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받는 등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대법원 판결을 통해 복직했지만 재징계에 이어 다시 25일자로 인사위에 회부된 이상호 기자 또한 해직과 정직 기간 동안 다큐 <다이빙벨>과 <대통령의 7시간> 등을 제작한 바 있다. MBC가 회사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유능한 기자·PD들을 내치고 그 자리를 경력직으로 채우려는 행보에 대해 비판이 제기되는 까닭이다.

MBC기자협회(회장 김희웅)는 21일 “시사기자채용은 우습고, 모욕적이며, 잘못되었다”며 “기자가 없는가? 광화문에 나가있는 A기자를 불러라”라고 경력직 ‘시사기자’ 채용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광화문’은 MBC가 기자·PD들을 발령 낸 신사업개발센터 사무실을 뜻하다.

이들은 “제작은 기본이 우선”이라며 “시사제작보도의 경쟁력은 현장취재에서의 경험과 고민이 축적돼서 나온다. 경험과 고민으로 무르익은 생각이 긴 호흡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들여다보고’, ‘따져보게’ 된다. 출입처 기사에 쫓기던 기자들에게 제작의 기회가 있는 그 곳은 그래서 한번은 꼭 가보고 싶고 가보아야 할 곳으로 꼽혔다”고 밝혔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작을 하는 기자를 뽑겠다는 건 고등어를 꽃무늬 포장지로 싸겠다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시사기자는 어떤 시사를 다루게 될 것인가’라는 물음에 “사람들은 MBC 뉴스에서 신뢰도를 말하지 않는다”며 “MBC 보도국은 기자 개인이 ‘기자’로서의 판단과 가치를 뉴스에 실어담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시사기자가 채용돼 투입될 <시사매거진2580>은 늪 밖의 섬이었다. 이제 그 섬에 ‘시사기자’가 상륙한다“고 우려했다.

MBC녹취록에서 본다는 ‘지역’, 경력직 채용에 대한 우려

백종문 미래전략본부장의 육성이 녹음된 ‘MBC녹취록’에 경력직 사원 채용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우려도 제기된다. 녹취록에서 백종문 본부장은 “인사검증 한답시고 지역도 보고 여러 가지 다 봤다”고 발언한 바 있다. 백종문 본부장은 방문진에 출석해 이와 관련해 “MBC프로그램이 전반적으로 균형 돼 있지 않다는 뜻이었다. 경력직 면접의 경우 또한 다양성 보장을 위해 한쪽 지역에 치우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26일 MBC공대위가 주최한 '<공영방송 MBC 장악 음모 진상규명하고 책임자 처벌' 촉구 기자회견에서 녹취록의 당사자 최승호 PD와 박성제 기자가 발언하고 있다ⓒ미디어스

MBC기자협회는 “회사는 최근 수년 간 70여명의 경력기자를 뽑았다”며 “방송에서의 경력을 중시해 바로 취재와 보도에 투입 가능한 기자들이라며 채용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시사기자가 필요하다면 이들을 포함한 보도본부의 백여 명 기자들에게 먼저 기회를 주고 지원자를 받으라”고 요청했다. ‘광화문’과 ‘구로디지털단지’, ‘일산’, ‘성남’, ‘인천’ 등 비제작부서 등으로 발령냈던 유능한 기자들을 불러들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얘기다.

MBC기자협회는 ‘경력직’도 필요할 수 있지만 ‘신입’ 기자를 채용해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들은 “공정방송을 염원하는 도도한 젊은이들이 MBC의 문을 박차고 들어오게 하라”며 “사장이 아니고 보도본부장이 아니고 보도국장을 위하는 것이 아닌 뉴스를 만들고자 한다면, 시청자를 위한 뉴스를 만들고자한다면 그렇게 하라”고 요청했다.

이들은 “MBC에서 ‘시사기자’를 뽑는다고 하니 다른 회사 기자들이 ‘조만간 중계차 전문기자, 현장취재 전문기자도 뽑을 셈이냐’는 비아냥을 들었다”면서 “또, 한 종편 기자는 언론지망생한테 자기 회사의 인기가 높아졌다고 했다. MBC를 갈 수 있는 최단의, 최적의 코스이기 때문”이라고 개탄했다. 이들은 시사기자 경력직 채용 중단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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