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이 영화는 예고편이나 다른 영화 리뷰에서 다룬 것처럼 어벤져스 멤버들이 슈퍼히어로 등록제를 놓고 갈등하는 영화가 아니다. 한 나라의 국왕을 시해하는 테러의 주범으로 지목된 이는 캡틴 아메리카의 오랜 친구인 윈터 솔져. 하지만 윈터 솔져가 국왕 시해의 진범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친구 캡틴 아메리카가 친구를 보호하기 위해 친구를 진범으로 지목하는 아이언맨 및 그의 동료들과 대결을 벌인다는 점이 대립의 큰 축으로 작용한다.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는 어벤져스 혹은 아이언맨 시리즈에서 보여준 전매특허나 다름없는 유쾌한 애드리브를 스파이더맨에게 양도한다. 고등학생이 어른 슈퍼히어로와 싸우는 가운데서 펼치는 입재담, 그는 아이언맨의 능력을 고스란히 이식받기라도 한 듯 쉴 새 없이 떠들어대기 바쁘다.

영화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 스틸 이미지

그렇다면 아이언맨의 입재담이 빠져나간 빈자리에는 대신 무엇이 채워졌을까. 그건 바로 ‘죄의식’이다. 뉴욕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어벤져스들이 악당과 사투를 벌이는 동안 빌딩 붕괴 등을 통해 무고하게 목숨을 잃은 민간인에 대한 죄의식 말이다. 아이언맨이 슈퍼히어로 등록제에 흔쾌히 찬성한 행동의 배후에는 이런 심리가 숨어 있는 것이다.

죄의식을 갖는 어벤져스는 토니 스타크뿐만이 아니다. 스칼렛 위치는 자폭 조끼를 입은 악당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민간인 사상자를 야기한 것에 대한 죄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비록 악당이기는 하지만 윈터 솔져도 자신이 자의식을 상실할 때 살상 무기로 돌변해버리는 것에 대한 죄의식을 갖는다. 슈퍼히어로의 액션 뒤에는 이렇듯 죄의식이라는 심리적인 동인이 크게 작용한다.

영화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 스틸 이미지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죄의식 이외의 또 다른 동인은 ‘복수심’이다. 슈퍼히어로의 활약에 영문도 모른 채 목숨을 잃은 희생자의 가족이 슈퍼히어로에게 갖는 반감은 영화 초반에 아이언맨과 대화를 나누는 국무부 직원을 통해서도 직감할 수 있다. 테러로 아버지를 살해한 범인이 윈터 솔져라고 굳게 믿는 새로운 히어로 블랙 팬서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윈터 솔져를 자신의 손으로 응징하려고 달려든다.

이런 복수심에 반하는 심리는 ‘의리’ 혹은 ‘우정’이다. 아이언맨이 아무리 윈터 솔져를 테러의 진범으로 의심해도 캡틴 아메리카는 친구인 윈터 솔져의 결백을 끝까지 믿고 앤트맨과 팔콘, 호크 아이와 스칼렛 위치 등과 연대하여 친구의 결백을 관철시키고자 노력한다.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의 넋을 대신하는 복수만이 액션 안에 녹아있는 게 아니라, 테러범으로 의심받는 억울한 친구를 끝까지 믿어주는 캡틴 아메리카의 신의가 액션 안에, 아이언맨에 맞서는 연대에 담겨있는 셈이다.

영화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 스틸 이미지

마지막으로 이 영화 안에 담겨진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의 대립은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의 은유로도 읽을 수 있다. 규율과 질서를 중요시하는 공화당의 은유가 슈퍼히어로 등록제를 찬성하는 아이언맨과 그의 동료로 묘사된다면, 다른 한편으로 슈퍼히어로 등록제를 반대하는 캡틴 아메리카 진영은 자유와 개인의 인권을 중요시하는 민주당의 은유로 읽어볼 수도 있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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