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 도중 어디선가 통곡소리가 들려왔다. 참사 현장에 차려진 분향소에 유족들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유족들은 분향소를 지키고 있던 전철연 회원들과 부둥켜안은 채 한동안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현재 보수신문에 의해 참사의 배후세력으로 지목된 ‘전철연’과 참사 유족들이 한 곳에서 구슬프게 울고 있었다. 발언은 멈춰졌다. 기자회견을 취재 중이던 기자들 역시 아무런 말없이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망루 설치 방법을 가르쳐준 것도, 이로써 과격시위를 주도한 것도 전철연이라는 조중동. 과연 이 장면을 보고도 그렇게 주장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장면이 오늘 기자회견 전체를 대변해주고 있었다.

▲ 기자회견 도중 분향소에 유족들이 찾아와 전철연 회원들과 부둥켜안은 채 울고 있다ⓒ나난

다시 찾은 용산 참사 현장. 이날은 미디어행동 주최로 ‘용산 살인진압 관련 경찰의 진실은폐·취재방해 규탄 및 언론의 진실보도 촉구 기자회견’이 열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은 현장이었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여전히 경찰병력에 의해 참사현장 안쪽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고 모두들 진상규명이 되어야 한다고는 하지만 아무것도 밝혀진 것 없이 이틀이란 시간만이 흘러버렸다.

“생존권을 위해 투쟁하다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묵상.”

기자회견은 그렇게 묵념으로 시작됐다. 기자회견 사회를 맡은 김정대 미디어행동 사무처장은 기자회견에 앞서 “지난 언론사 총파업 당시 국민들이 보여준 지지는 언론이 사회적 소수자와 노동자·서민 등 약자들의 이야기를 잘 대변해 달라는 의미였다”며 “그렇기 때문에 언론사들이 용산진압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야만 한다”고 촉구했다.

2월 임시국회가 시작되면 ‘신문·방송 겸영’, ‘사이버모욕죄’를 비롯한 미디어법안들이 또다시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다. 한나라당은 이번 국회에서 언론시민단체들이 ‘MBC민영화법’이라 꼬집는 ‘공영방송법’까지 상정할 것으로 예고해 빠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디어행동은 이번 용산 살인진압 참사가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고 했다. 2월 국회 대응도 중요하지만 용산 철거지역 참사에 대한 진실보도를 통해 국민들로 하여금 직접 눈으로 ‘진실보도’하는 언론사, ‘공영방송’의 필요성에 대해 확인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미디어행동은 “(용산참사)사건 발생 이후 검찰에 의한 사건 은폐 축소가 지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장을 과잉통제하거나 폐쇄하고, 검찰은 유족의 동의도 없이 고인들의 시신을 부검하는 등의 과정이 바로 은폐 축소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실제 이날 기자회견문에는 검찰에 의한 언론통제 사례가 자세히 소개됐다. 사건현장을 비롯한 시신수습·이송 과정에서 경찰력을 동원해 취재를 막았다고 했다. 현장을 방문한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에 취재진이 몰리자 부하직원들의 과잉경호로 빈축을 사기도 했다는 것이다. 또한 20일 밤 추모 촛불집회 당시 취재하던 MBC 오디오맨이 경찰에 의한 폭행으로 실신하는 등 취재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을 경찰이 지속적으로 연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언론통제’의 모습이 아닐까. 이런 상황에서 검찰의 진상조사 결과를 국민들이 믿을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 22일 오전 10시 30분 용산지역 참사현장 앞에서 미디어행동 주최 '용산 살인진압 관련 경찰의 진실은폐 취재방해 규탄 및 언론의 진실보도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나난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앞서 지적됐듯 검찰에 의한 취재통제에 대한 규탄과 함께 용산 참사 관련 보도의 문제점도 함께 이야기됐다.

이들은 <문화일보>가 21일자 1면 머릿기사로 ‘망루 농성 사전 연습했다’로 뽑았다며 분개했다. 이는 조중동 역시 다르지 않다고도 했다. 미디어행동은 “이들 신문은 사건 발생 전날부터 시위대가 사용한 ‘화염병’을 부각해 강제진압을 부추겼으며 사건 발생 후에는 과잉진압이라는 본질을 외면한 채 전철연의 ‘배후론’을 제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원재 문화연대 사무처장은 “전철연의 행적을 들먹이며 ‘폭력단체’로 규정하고 있지만 그것은 그동안 철거민들이 탄압받아왔던 흔적들”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조중동에게 방송을 넘겨주어서는 안되는 이유라는 것이다. 또한 “이번 사건을 취재하는 언론인들은 지난 언론노조 파업 때 국민들이 뜨거운 지지와 성원을 보낸 이유를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된다”며 다른 언론사에 경고하기도 했다. 실제 사건 발생 이전에 언론들이 용산 철거지역의 문제점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졌는지에 대해서 언론인 모두의 반성이 필요한 지점이다. 또한 그만큼 이번 참사와 관련된 책임에서도 벗어날 수 없다. 미디어행동이 기자회견문에서 용산참사와 관련해 “서민, 노동자, 농민 그리고 힘없고 가난한 이웃의 밥그릇을 지키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키고 진실보도를 하는 것만이 국민들의 지지와 성원에 보답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이번 용산 참사에 대해서 언론은 어떻게 다뤘어야 했나. 이는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의 “이주 대책없이 강제 진압한 것이 문제다”라는 발언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이어 “현장 취재기자들은 사건의 증인이면서 목격자”라며 진실을 그대로 보도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 분향소에는 “진압이 아닌 구조였다면 살릴 수도 있었다”는 문구가 적힌 화환이 자리잡고 있었다ⓒ나난
그러나 무엇보다도 오늘 기자회견은 책임자 처벌에 초점이 맞춰졌다. 신학림 미디어행동 위원장은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이자 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강제진압을 직접 승인한 것으로 밝혀진 만큼 구속수사해서 감옥으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정치적인 책임자들이 있다고 했다. “뉴타운 개발로 가난한 자들의 생존을 침해한 인사인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한나라당, 오세훈 서울시장은 정치적인 책임을 지고 이 자리에 와서 직접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책임은 원세훈 국정원장 내정자에게도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오히려 현 행정안전부 책임자로서 법률적 정치적 책임을 동시에 져야 하며, 따라서 이번 국정원장 자리에서도 사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준희 인터넷신문기자협회 회장은 김은혜 청와대 부대변인의 “이번 사고가 그런(폭력시위) 악순환을 끊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발언을 문제 삼았다. 9시 뉴스 앵커출신의 발언이라고 하기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반드시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대형 참사로 인해 6명의 희생자들과 2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사건을 두고 애도와 추모가 아닌 ‘폭력시위’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인격이 청와대의 입노릇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참석자들의 발걸음은 모두 분향소로 향했다. 분향소에는 “진압이 아니라 구조가 목표였다면 살릴 수도 있었다”는 문구가 적힌 화환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 기자회견에 참석한 최상재 언론노조위원장이 분향소에 들러 애도를 표하고 있다ⓒ나난

▲ 기자회견 도중 분향소에 유족들이 찾아와 전철연 회원들과 부둥켜안은 채 울고 있다ⓒ나난

▲ 기자회견은 묵념으로 시작됐다ⓒ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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