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YTN 노조원은 “아마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이번에도 YTN 리포트에 대해 제재조치를 내리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미 ‘블랙투쟁’에 대해 ‘시청자에 대한 사과’ 조치를 내린 적 있는 방통심의위의 행보를 보았을 때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YTN노조도 지난 6일 발표한 ‘방송통제위는 기사 검열 기구까지 자처하는가’라는 제목의 성명에서 이같은 우려를 밝힌 바 있다.

YTN노조의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 박명진 방송통신심의위원장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명진)는 21일 회의를 열어 지난해 10월24일 YTN <뉴스오늘 1,2,3,4부>에 방송된 ‘YTN 노조가 부르는 희망의 노래’ 리포트에 대해 법정제재에 해당하는 ‘경고’ 조치를 의결했다. 심의위원들은 회사 쪽의 입장이 배제된 채 노조의 주장만 보도된 리포트는 ‘공정성을 위배했다’는 쪽으로 해석했다.

특히 이날 회의에서 박명진 위원장은 22일로 189일째 계속되고 있는 YTN사태를 ‘노사 갈등’으로 인한 YTN내부의 문제라는 인식을 들어냄과 동시에 YTN노조가 방송을 투쟁 수단으로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박 위원장의 YTN에 대한 이같은 인식은, 오묘하게도 문화체육관광부 신재민 2차관의 “YTN 사태는 내부 문제”라는 인식과 정확하게 궤를 같이한다. )

“노사 갈등이라는 방송사 내부의 갈등 문제로 본다 한다면 공적 매체를 사적 수단으로 이용해 공적 책임을 도외시한 것 아닌가 생각된다.…이번 YTN건은 방송사들이 어떤 이유로든 파업을 해도 방송을 투쟁 수단으로 쓴 적은 없었다고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굉장히 중요하고, 이런 것들이 일반화되기 시작하면 노사 분규가 있을 때마다 도구로 이용할 가능성 있다고 본다. 징계해야 할 필요가 있기에 ‘경고’가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박명진 위원장)

YTN사태가 내부 노사 갈등 문제?

이명박 정권은 YTN을 비롯한 여러 기관에 대통령과 정치적 성향이 비슷한 측근을 사장으로 임명했다. 이몽룡 스카이라이프 사장, 정국록 아리랑방송 사장, 양휘부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을 비롯해 임은순 신문유통원장, 서옥식 한국언론재단 이사, 최규철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 등이 ‘낙하산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들이다. 이 가운데 가장 또렷하게 ‘낙하산 반대 투쟁’을 하고 있는 이들이 바로 YTN노조이다.

YTN노조가 200여일 가까이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통령의 언론 특보를 지닌 사람이 방송사 사장으로 온다면 방송의 ‘공공성’이 침해되기 때문에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에서 구본홍씨를 사장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구본홍씨를 받아들이는 회사 쪽 간부들과 노조 사이에서 벌어지는 내부 갈등 수준을 넘어, “특정 정치인의 당선을 위해 노력했던 사람을 사장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공정방송 수호 차원의 투쟁이다. 수많은 언론인들이 YTN노조의 투쟁을 지지하며 나선 것도, 언론의 공공성을 찾기 위한 이들의 움직임을 알기 때문이다.

박 위원장의 인식대로 YTN노조가 적어도 내부의 문제, 노사 갈등 때문에 200여일 가까이 투쟁을 이어왔다면, 지금처럼 네티즌 및 시민들의 많은 지지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단순히 내부 갈등으로 시작된 투쟁이라면, 1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왜 굳이 해직된 노조원들을 위한 정기 후원을 시작했으며, 수십명의 시민들은 왜 굳이 매일 같이 YTN앞에서 촛불을 들고 구본홍 퇴진을 주장하고 있을까.

▲ ‘YTN 노조가 부르는 희망의 노래’캡처.

YTN노조가 방송을 투쟁 수단으로 이용?

박 위원장은 “YTN노조가 방송을 투쟁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방송사들이 투쟁함에 있어 방송을 투쟁 도구로 사용하게 될 것을 우려했다. 언론이 자사 관련 보도에 신중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자사 방송을 통해 자사에서 벌어진 일을 보도한다는 것만으로, 방송을 투쟁 수단과 도구로 이용한다고 볼 수 있을까?

YTN사태는 이미 사회적 쟁점이 되었다. 이와 함께 지난 16일 8명의 사원들에 대해 파면, 해임 등의 징계를 내린 KBS사태도 새로운 사회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자사의 일’이라고 배제한 채 전두환 정권 이후 다시 등장한 언론인 대량 해직 사태를 보도하지 않는다면, 과연 언론들은 무엇을 보도해야 하며, 나아가 시청자들에게 무엇을 전달해야 하는 걸까.

YTN은 그동안 YTN을 통해 ‘YTN사태’를 보도해 왔다. 이는 “YTN사태는 더 이상 내부 문제가 아닌 정부의 방송 장악 논란의 최대 쟁점 사안이기 때문에 충실히 보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보도국 내부에서 형성됐기 때문이었다. 단순하게 ‘YTN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쟁점으로, 보도할 만한 가치가 있기에 보도한다는 것이다.

보도함에 있어 자신들의 감정만을 싣는다든가 혹은 자기 주장만을 합리화한다면 박 위원장의 말대로 방송을 투쟁의 수단으로 이용할 우려가 크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른 사안이라면, 사실에 근거한 보도는 언론의 공공성 측면에서도 옳다.

박 위원장의 이같은 주장이 지난 언론노조 총파업 당시, 방송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보도한 MBC를 향해 “방송을 투쟁의 도구로 사용한다”며 ‘밥그릇 싸움’이라고 연일 비난하고 나선 보수신문들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다고 느끼는 것은 나의 지나친 비약일까.

노조 입장만 들어간 리포트, 공정하지 않다?

▲ 서울 목동 방통심의위 ⓒ미디어스
방통심의위원들은 리포트가 노조 쪽 입장만 담았다며 공정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일부 위원들은 “회사 쪽이 입장을 밝히기 거부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다양성 측면에서 회사 쪽의 의견을 담는 것이 옳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취재 과정을 보면, 회사 쪽은 입장을 밝히길 거부한 상황이었다.

YTN노조는 지난 6일 발표한 성명에서 “당시 사측은 취재 기자에게 어떠한 입장도 밝힐 것이 없다며 취재를 거부했다”며 “YTN사태 100일을 맞아 구본홍씨 인터뷰를 포함한 사측 입장을 충실히 전하겠다는 취재 기자에게 사측은 해당 기사에 사측 입장이 없어도 된다며 오히려 인터뷰나 입장없이 보도하라고 당부했다”고 밝혔다.

YTN노조는 또 “해당 리포트가 아침부터 밤까지 모두 8번 방송됐지만 그날 구본홍씨는 물론 사측 인사 누구도 문제삼지 않은 것도 바로 이런 이유”라며 “기사 작성이나 편집, 방송 과정에서도 간부들의 항의 한마디도 없었다. 방송심의위 지적을 받을 정도로 심각한 내용이 있었다면 과연 사측에서 가만히 있었겠냐”고 반문했다.

이날 의견진술을 하러 회의에 참석한 김원배 YTN 편성운영팀장도 “이 리포트가 보도된 후 문화과학부장은 ‘이 기사가 작성되는 것을 알고, 기자에게 노조원이 아닌 기자의 입장에서 균형된 시각으로 기사를 쓰라고 말했다고 한다’고 소명했다”고 전했다.

방통심의위원들이 말하기를 거부한 취재원의 말을 리포트에 담지 않았다며 ‘공정성’과 ‘다양성’을 운운하는 것은, 용산 참사에서 희생당한 이들의 말을 리포트에 담지 않았다고 문제삼는 거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이해 당사자 중 한 쪽이 의견 밝히기를 거부한다면 이제 리포트를 만들 꿈도 꾸지 말아야 하는가.

정연우 교수 “YTN투쟁은 방송 독립성과 공공성 지키자는 싸움”

정연우 세명대 교수는 “YTN사태는 대통령의 방송 특보를 사장으로 임명하면서 시작된 문제로, 정치적 외압과 낙하산 인사에 맞서 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지키자는 싸움”이라며 박 위원장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정치권의 개입과 외압이 없었던 것처럼, 마치 내부에서 일어나는 경영진과 노조 사이의 갈등으로 규정하는 것은 YTN사태에 대한 본질을 엉뚱하게 분리시키려 하는 것이란 주장이다.

정 교수는 “방송에서 독립성과 공공성은 가장 중요한 원칙이기에, YTN사태가 우리 사회 보도 영역 가운데 제대로 알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언론의 본령”이라며 “YTN이 모든 뉴스 프로그램을 통해 노조 입장을 대변한다고 하면 문제가 되겠지만, YTN노조는 월급을 올려달라는 것이 아닌 방송 독립을 지키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는 2월2일이면 YTN노조의 ‘구본홍 반대 투쟁’은 200일을 맞게 된다. 지난해 7월17일, 임시주주총회에서 약 40여초 만에 구본홍씨가 사장으로 선임된 이후부터, 나름 열심히 YTN사태를 보도했다고 생각했는데 YTN사태를 그저 ‘사내 갈등’ 수준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니 아직도 나의 보도가 많이 부족한 모양이다.

YTN노조의 투쟁이 무조건적으로 옳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다만 YTN노조가 왜 투쟁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너무나 자명한 상황에서, 그것도 투쟁이 약 200일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아직도 “사내 갈등, 내부의 문제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박 위원장.

언론학자이기 전에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이라는 중요한 직책을 맡고 박 위원장의 이같이 주장과 인식은, 향후 수많은 심의 과정에 어떠한 영향을 주게 될지 무척 우려스럽다. 박 위원장의 이번 발언과 지난해 많은 논란을 일으킨 <PD수첩>과 ‘YTN 블랙투쟁’ 등에 내려진 ‘시청자 사과’ 결정이 머릿속에서 자꾸만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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