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동 기업결합 건(SK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은 관련자료 검토 중으로 시정조치 방향과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결정된 바 없으니 보도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최근 한 달 동안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의 보도해명자료를 3차례나 배포했다.

3월 15일 MBN은 공정위 관계자를 인용, 공정위가 ‘조건부 허용’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아시아경제는 업계발로 “(공정위가) 다음 주 중 SK브로드밴드와 CJ헬로비전 M&A에 관한 심사보고서를 낼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이 2건의 기사로 업계는 발칵 뒤집혔고, 이때 공정위는 해명자료를 내며 언론보도를 부인했다.

촌극은 2주 뒤 반복됐다. 그달 28일 파이낸셜뉴스는 “공정위는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M&A의 인가 조건으로 5년간 요금인상 금지, CJ헬로비전의 알뜰폰 사업부문 매각, 타 케이블TV 사업자의 결합상품 출시를 위한 이동통신 동등 제공 등의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이때도 공정위는 이전과 같은 내용의 해명자료를 배포했다.

그리고 4월 19일 또 다른 기사가 터져 나왔다. 한국일보는 “공정위는 심사보고서에서 조건부 승인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며 “이동통신 3사와 공정위 등에 따르면 공정위는 SK텔레콤이 지난해 12월 신청한 CJ헬로비전 M&A 승인 신청에 대한 심사 보고서를 이르면 19일 SK텔레콤에 보낼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한국일보는 심사보고서 전달 날짜를 ‘오늘(19일) 내일(20일) 중’이라고 못박았다. 또 “심사보고서가 금주 중 발송되면 SK텔레콤은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보고서에 대한 의견을 공정위에 전달할 계획이다. 공정위는 이르면 다음달 4일 전원회의에 이 안건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고까지 전망했다. 한국일보는 CJ헬로비전의 알뜰폰 사업을 인수할 사업자로 ‘네이버’가 거론되고 있다고까지 보도했다.

▲서울 을지로에 위치한 T타워 앞 가로수 보호대 (사진=미디어스)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일보가 추측을 열심히 취재한 것 아닌가”라고 보도 내용에 의문을 표했으나, 한국일보가 심사보고서 전달 날짜와 공정위 전원회의 일정까지 구체적으로 보도한 덕(?)에 이날 업계는 다시 한 번 뒤집어졌다. 경쟁사업자들과 언론은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공정위와 네이버를 다시 찾았으나, 양측은 모두 한국일보 기사 내용을 부인했다.

상황을 고려하면 이런 기사 자체가 SK와 CJ에게 악재일 수 있다. SK는 애초 CJ헬로비전 인수합병에 관한 모든 심사가 완료되는 시점을 ‘4월’로 잡았다. 경쟁사업자인 KT와 LG유플러스, 그리고 SBS를 필두로 한 지상파방송사의 반대가 시간이 갈수록 거세지면서 공정위로 대표되는 정부도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 배경에 SBS에서 25년여를 일하다 청와대로 직행한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이 있다는 관측도 있다.

첫 관문인 공정거래위원회의 경쟁제한성, 시장지배력 전이 관련 심사보고서가 나와야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의 심사가 진행된다. “빨라야 7월”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SK는 정부가 내놓을 심사결과는 ‘조건부 승인’이 될 것으로 내다보며 정부가 제시할 만한 조건에 따른 ‘약속’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시간끌기가 끝난다면 결국 조건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일보와 파이낸셜뉴스가 ‘공정위가 제시할 것으로 알려진 조건들’이라고 보도한 내용은 △CJ헬로비전의 알뜰폰 사업(헬로모바일) 매각 △M&A 이후 5년 간 요금 인상 금지 △다른 케이블TV 업체도 SK텔레콤 이동통신을 결합한 상품을 출시할 수 있도록 동등결합 의무화 등 3가지다.

그러나 이 같은 조건은 SK가 수용이 가능하거나 정부 차원에서 철회가 가능한 내용이기도 하다. ‘알뜰폰 매각’ 문제는 SK와 CJ의 고용안정 ‘합의’ 내용과 어긋나고, SK는 일단 ‘매각 불가’로 내부 입장을 정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언제든 포기할 수 있는 사업이기도 하다. SK에는 이미 SK텔링크라는 알뜰폰사업자가 계열사로 있다. 또 ‘5년간 요금인상 금지’ 조건은 정부의 정책기조와도 맞지 않고, 경쟁사업자들 또한 과도한 정부개입이라며 반발할 만한 내용이다. 마지막으로 ‘동등결합’은 이미 방통위가 도입한 내용이다.

공정위 관계자발 기사가 SK에게 호재일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정부가 언론에 조건을 흘리면, SK는 사전에 이를 준비할 수 있다. SK가 이번 인수합병 건을 조건 싸움으로 보고 있다면, 자신을 규제당하는 사업자로 포지셔닝하고 조건의 범위와 수준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지금과 같은 구도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상황은 모두가 SK의 전략에 놀아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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