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유일의 ‘상호 비평’이 가능한 매체비평 프로그램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03년부터 13년 동안 시청자들을 만났던 <미디어 인사이드>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선택과 집중’이라는 명분 아래 17일 방송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17일 방송을 끝으로 종영한 KBS <미디어 인사이드>

KBS 측은 “TV 부분조정은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선택과 집중을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 이루어졌다”며 “매체비평 프로그램도 <TV비평 시청자데스크>, <미디어 인사이드>, <뉴스 옴부즈맨> 3개가 있다. <미디어 인사이드> 종영 역시 비슷한 특성의 프로그램을 통합하고 조정하는 차원이다. 우리 뉴스에 대한 감시와 비판은 <뉴스 옴부즈맨>으로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각각의 프로그램은 성격과 취지가 달라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 ‘시청자들의 비평’에 초점을 맞춘 <TV비평 시청자데스크>는 KBS에서 방송되고 있는 프로그램이 중심이 되는 프로그램으로, 언론 전반을 아우르는 비평을 하지는 않는다. <뉴스 옴부즈맨>의 경우 언론계 전문가 6인이 KBS뉴스를 평가하긴 하지만, 평가의 대상이 ‘뉴스’에 한정되어 있고 매달 1회만 방송된다는 한계가 있다.

반면 <미디어 인사이드>는 자사·타사를 가리지 않고 눈여겨봐야 할 기사를 소개하는 ‘주목 이 기사’를 비롯해 ‘미디어 확대경’, ‘미디어트렌드’, ‘핫이슈 분석’ 등 심층 해설과 분석이 주가 되는 코너를 갖추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해당 방송사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을 담는 프로그램은 타 방송사에도 있다. 그럼에도 <미디어 인사이드>를 지상파에 남은 유일한 ‘매체비평 프로그램’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언론 간 ‘상호 비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상호 비평’이 활발하지 않은 우리 언론 현실을 돌아볼 때, 13년 동안 매체비평을 꾸준히 해 온 <미디어 인사이드>의 존재감은 작지 않다. <미디어 인사이드>의 전신인 <미디어포커스>는 KBS 저널리즘을 상징하는 하나의 브랜드로 평가받아 왔다. “우리 언론의 뿌리 깊은 잘못과 객관성을 위장한 기득권 편향의 정략적 보도태도를 적나라하게 파헤쳐 왔다”는 공로로 제9회 민주언론상, 제19회 안종필 자유언론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MB 정부 이후 <미디어포커스>를 향한 공세가 지속됐다. 2008년 9월 KBS 정연주 사장이 해임된 자리에 들어온 이병순 사장은 <시사투나잇>과 <미디어포커스>를 직접 거론하며 ‘시사 프로그램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고, 결국 <미디어포커스>는 제작진과 구성원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미디어비평>으로 이름이 ‘강제 조정’됐다.

이번 <미디어 인사이드>의 폐지 과정 또한 결코 매끄럽지 못했다. 폐지 논의가 1달 간 이루어졌지만, 정작 실무를 맡는 제작진은 이 논의에서 배제된 채 뒤늦게 ‘일방 통보’를 받았다. 사측은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는 말로 열흘 가까이 확답을 피해 왔고, 결국 ‘폐지’ 수순을 밟았다. 언론계 안팎에서 공영방송의 책무를 수행하는 프로그램이 갑작스럽게 사라지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공영방송의 저널리즘적인 책무 포기하는 행태”

2008년 당시 <미디어포커스> 제작진으로, 구성원들의 동의 없이 <미디어포커스>가 <미디어비평>으로 이름이 변경되는 사태를 직접 겪은 김경래 기자(KBS 퇴사 후 현재 <뉴스타파> 기자)는 <미디어 인사이드> 폐지 소식에 “안타깝다”고 전했다.

김경래 기자는 “<미디어비평>으로 이름을 바꾸는 이유가 뭘까 생각했었다. 시간대를 바꾸고, 이름을 바꾸고, 아이템에 더 제약을 두면 서서히 프로그램 힘이 빠지고, 그러면 없애기 쉬울 거고, 결국 없앨 거다… 그때 그런 미래 모습들이 그려졌다”며 “제작진은 이름을 바꾸지 말자는 게 아니라 바꾸려면 논의를 하자는 입장이었다. 어떻게 하면 이 프로그램을 더 잘 만들 수 있을지를 공유해야 하는데 그런 게 없었다. (사측은) 가급적이면 (프로그램을) 눈에 안 띄게, 가급적이면 무디게 만들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고 소회했다.

2008년 11월 11일, KBS 기자들과 PD들이 KBS 본관 앞에서 '가을개편 규탄집회'를 열었다. 당시 구성원들은 △<미디어포커스> 폐지 결정 철회·제목 복귀 △<시사투나잇> 폐지 결정 철회 △대통령 라디오 정례연설 즉각 중단·편성책임자 징계 △이병순 사장 사과 등을 촉구했다. (사진=KBS PD협회)

그는 “언론이 다른 언론을 비판하기란 쉽지 않다. 민영매체들은 제3자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하기에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 그만큼 공영방송이 다른 언론사에 비해 (매체비평 프로그램을 하기에) 용이한 입장에 있다. 그래서 KBS에서 이런 프로그램들이 오래 존속됐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걸 폐지했다는 건, 공영방송이 가지고 있는 저널리즘적인 책무를 포기하는 여러 행태 중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다.

불투명한 폐지 논의 과정에 대해서도 “당시 (<미디어비평>으로) 이름 바꾸자고 할 때에도 이유가 없었다. ‘무조건 바꾸자’였다. 지금도 분명 어떤 이유가 있겠지만, 그 (폐지) 이유를 공개적으로 얘기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라는 걸 경영진도 아는 것이다. 논의를 하는 순간 없애지 말아야 할 이유들이 많이 나올 테니 부담스럽지 않겠나”라며 “경영진이 ‘저널리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밝혔다.

과거 KBS <미디어 인사이드>의 자문을 맡았던 김춘식 한국외대 교수는 “KBS가 공영방송이라면 일반 상업방송하고 분명한 차별성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뉴스 프로그램 콘텐츠에서는 그걸 느끼기가 어렵다. <미디어 인사이드>는 ‘공영방송 KBS’만이 가능한 부분을 접근한 프로그램인데, 이게 없어지면 공영성과 자질 논란이 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춘식 교수는 “시청자들이 뉴스를 이해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여당과 야당, 정부와 시민단체 등 서로 대립하는 갈등관계에만 주목하는 관행이 있는데, 보통 시청자들은 이런 보도 행태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전문가들이 이런 부분을 짚어주면 뉴스가 가진 문제점이 드러나고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도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프로그램이 없어지면 문제점이 드러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고, 개선하고자 하는 논의는 더욱 더 어려워진다”며 “시청자들이 ‘뉴스 평가’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다. KBS, 시청자, 한국의 저널리즘을 위해서도 모두에게 다 불행한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시청자단체 매비우스(매체비평우리스스로)의 노영란 사무국장은 “어제 종방했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며 “그 내용을 대체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없이 장기간 방송된 <미디어 인사이드>를 폐지한 것에 동의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노영란 사무국장은 “현재 공영방송 KBS는 해설, 논평, 탐사 기능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추적60분>이나 <시사기획 창>에서도 민감한 사회 이슈를 적극적으로 다루는 데 주저하는 것이 사실이다. <미디어 인사이드> 폐지 역시 이 같은 저널리즘 후퇴의 한 축을 보여주는 장면”이라며 “자사 비평, 매체별 상호 비평을 통해 견제하고 자정하는 효과가 있는데 이런 역할을 해 온 프로그램을 갑작스럽게 폐지하는 것은 특정한 의도를 갖고 있다고 우려할 만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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