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돌아오긴 했지만 이제야 자신의 모습을 서서히 보여주고 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김현수 이야기다.

김현수는15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알링턴의 글로브 라이프 파크에서 열린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팀이 3-6으로 뒤지던 9회초 2사 이후 놀란 라이몰드의 대타로 타석에 들어서 텍사스의 ‘믿을맨’ 마무리 투수 션 톨레슨을 상대했다.

김현수는 톨레슨과의 맞대결에서 헛스윙을 하기도 했지만 빼어난 선구안으로 까다로운 톨레슨의 공을 잘 골라내 풀카운트까지 볼카운트를 끌고 갔고, 톨레슨의 6구째 시속 93마일짜리 포심 패스트볼을 통타, 총알 같은 우전 안타를 만들어냈다.

앞서 지난11일 템파베이 레이스와의 경기에서 두 개의 안타를 치기는 했지만 모두 내야 안타였던 김현수에게 이번 안타는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처음으로 외야로 페어 지역으로 날린 안타였다.

볼티모어 오리올스 김현수[AFP=연합뉴스 자료사진]

메이저리그 정상급 마무리 투수를 상대로 날카로운 선구안을 발휘, 풀카운트 승부로 몰아간 점도 특별했고, 마지막 6구째로 들어온 낮은 코스의 빠른 공을 특유의 배트 컨트롤을 앞세운 컨택 능력으로 정확히 배트 중심에 맞히는 모습 역시 인상적이었다.

타자로서 김현수의 진면목을 한 타석에서 모두 보여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멋진 승부였다.

비록 후속타 불발로 김현수는 득점에까지 이르지 못했고, 개막 7연승을 달리던 볼티모어는2연패에 빠졌지만 김현수에게는 그 어느 경기보다 의미 있고 기분 좋은 경기로 기억될 듯하다.

이날 기록한 안타를 포함해 김현수의 시즌 타율은 5할(6타수3안타), 출루율은 6할2푼5리가 됐다. 아직 타석에 들어설 기회가 많지 않아 단순비교는 무리가 있지만 수치로만 놓고 보면 출루율만큼은 팀 내에서 1위다.

정규 시즌 개막 이후 안타를 치고 볼넷을 골라내며 자신이 출전한 세 경기에서 모두 출루에 성공한 점, 수비적인 면에서도 아직 이렇다 할 실책이 없다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보면 김현수는 출루율과 타격, 수비 등 모든 면에서 볼티모어 구단이 당초 그에게서 기대했던 모습을 거의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벅 쇼월터 감독 [ AP=연합뉴스 자료사진 ]

그런 점을 의식한 듯 볼티모어의 벅 쇼월터 감독도 15일 텍사스전 직후 인터뷰에서 “김현수의 우전안타는 좋은 타격이었다”고 만족감을 드러낸 뒤 “경기 흐름 속에서 그가 팀에 기여할 수 있게끔 계속 경험할 기회를 주고 최대한 많은 것을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연패에 빠지기는 했지만 개막 7연승을 달리며 강팀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상황과 당초 김현수가 주전 자리를 꿰찰 것으로 보였던 외야수 자리에서 놀랄 만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조이 리카드의 존재가 아직 크게 느껴지지만, 시즌 개막 직전의 상황을 떠올려 본다면 현재의 상황은 가히 ‘상전벽해’라고 할 수 있다.

시범경기에서의 부진, 개막전에서의 야유 세례의 수모 등 한국 프로야구 최고 타자 출신의 메이저리그 루키 김현수가 겪은 시련이 결과적으로는 전화위복의 단초가 됐다고도 볼 수 있다.

국내 야구팬들은 물론이고 김현수를 잘 아는 국내 야구 전문가들은 한국 프로야구 최고 타자 김현수의 능력을 한 치도 의심하지 않았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벤치에서 경기를 보는 것만으로 배우는 것이 있다’는 명분으로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행사한 김현수의 선택은 탁월했다.

계약 내용에는 분명하게 포함되어 있는 부분이었지만 김현수가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실제 행사할지 여부는 본인 스스로 결정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볼티모어 구단은 그런 김현수의 입장을 악용, 마이너리그행 가능성과 국내 유턴 가능성을 언론에 흘려 심리적으로 김현수를 압박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 김현수[AFP=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러나 김현수의 마이너리그행 거부권 행사로 울며 겨자 먹기로 그를 개막 25인 로스터에 포함시켰고, 덕분에 김현수는 개막전날 홈팬들 앞에서 야유를 받는 신세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현수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이미 각오가 되어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김현수 스스로 그 모든 상황을 감수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상황이었을 것임을 짐작해 본다면 그는 ‘끝까지 버텨서 끝내 이기기’를 선택한 ‘미생’의 장그래를 연상시키는 메이저리그판 ‘미생’ 스토리의 주인공이었고,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만에 ‘완생’으로 갈 수 있는 분명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고국의 야구팬들이 거의 매 경기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한 김현수가 타석에 들어설 때까지 기약 없는 기다림을 이어가는 이유는, 결국 그가 한국 프로야구에서 연습생으로 시작해 최고의 자리에 오른 과정을 메이저리그에서도 재현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멋지게 써낸 첫 번째 ‘미생’ 스토리와는 차이가 있지만 그가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써 내려가는 두 번째 ‘미생’ 스토리 역시 멋진 해피엔딩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한다.

다소 늦고 돌아오긴 했지만 김현수는 지금 ‘완생’ 메이저리거로 가는 출발선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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