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당 대표도 모르는 미디어법

1월 15일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가 경남에 왔습니다. 창원 팔룡동 미래웨딩캐슬에서 열리는 한나라당 경남도당 정책설명회 참석을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박 대표는 “MB악법(惡法)이 아니라 MB약법(藥法)이다”고 주장했습니다.

▲ 1월15일 경남 창원 팔룡동 미래웨딩캐슬에서 열린 한나라당 경남도당 정책설명회에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가 참석했다. ⓒ경남도민일보
그러면서 박 대표는 방송법과 신문법을 비롯한 미디어법 추진과 관련해 얘기를 했습니다. 우리 경남도민일보 16일치에 나간 기사를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미디어법 추진에 대한 언론장악 비판에 대해 ‘지금은 재벌이 방송에 투자할 수 있는 게 4%다. 재벌이 MBC라든지 방송에 투자할 수 있는 게 4%’라며 ‘이를 10%로 늘리려고 방송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말했다.”

‘당 대표도 모르는 미디어법 추진’이라는 제목으로 나간 이 기사는 이어 “그는 네 손가락을 펴 보이며 ‘4%로는 부족해서 10%로 늘리는 것이다. 아예 늘리는 게 아니다. 10%로 늘린다고 재벌이 방송을 장악하겠나. 90%가 있는데……’라고 말했다”고 돼 있습니다.

아시는 대로,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박 대표가 말한 내용은 한나라당의 은행법 개정안입니다. 이를테면 재벌의 은행 소유 지분 상한이 4%로 제한돼 있고, 한나라당은 이를 10%로 높이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행 신문법과 방송법은 신문과 재벌의 방송 진입을 원천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나라당 개정안의 핵심은 ‘△지상파 방송은 20%까지 △종합편성채널 방송은 30%까지 △보도전문채널 방송은 49%까지’ 소유할 수 있게 하는 데 있습니다.

박 대표가 신문법과 방송법 개정안 주요 내용을 제대로 모른다는 얘기가 됩니다. 한나라당이 대표조차 정확하게 알지 못할 정도로, 공감대 형성과 소통을 통한 공론화 없이, 서둘러서 미디어 장악법을 만들려 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2. 신문·방송 기자들도 제대로 모르는 미디어법

그러나, 이른바 언론계에 종사하는 제가 보기에는, 박 대표의 무지도 문제지만 크고 심각한 정도로 따지자면 기자들 무지가 더하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MB의 미디어 악법 개정 저지를 위해 언론노조 파업을 겪은 뒤끝인데도 이렇다는 말씀입니다.

보도를 보겠습니다. 서울에 본사가 있는 신문·방송·통신들은 박 대표 발언을 죄다 ‘2차 법안 전쟁 앞두고 여야 이번엔 홍보 전쟁’이라는 구도로 다뤘습니다. 그러다 보니 박 대표 발언의 구체 내용은 사라지고 “악법이 아니라 약법” 발언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경남의 신문 방송들도 비슷했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경남도민일보는 박 대표 발언의 구체 내용과 함께 그것이 사실과 다름을 짚었습니다. CBS 노컷뉴스도 15일 당일 기사에서 ‘4%’와 ‘10%’라 적었습니다만 이는 받아쓰기일 뿐 ‘틀린 사실’이라 짚지는 않았습니다.

CBS 노컷뉴스는 다만 이튿날 아침 8시54분 ‘정보 보고’에서 ‘한나라당 대표도 모르는 미디어법’이라는 제목으로 “박희태 대표가 하루 전날 열린 정책설명회에서 미디어 법안과 관련해 잘못된 발언을 함”이라 올렸습니다.

그러면서 “○…박 대표의 잘못된 발언이 나가자, 일부 의원이 뒤늦게 부랴부랴 해명에 나섰으며 주변에서는 ‘입법 전쟁’을 준비하는 당의 대표가 법안내용도 몰라서 뭘 어쩌겠냐는 반응”이라고 끄트머리에 적었습니다.

그 뒤 이를 바탕으로 ‘언론사유화 저지 및 미디어 공공성 확대를 위한 사회행동’(미디어행동)이 논평 “집권당 대표도 모르는 악법을 날치기하려 하다니!”를 내었고 또 신학림 미디어행동 집행위원장은 <미디어스>에 이를 꼬집는 칼럼을 썼습니다. 이것으로 끝입니다.

머리에 선하게 그림이 그려집니다. 바로 며칠 전에, 언론악법 저지를 위해 파업을 결행한 언론노조 소속 조합원이면서 이해당사자이기도 한 현장 기자들이, 개정 미디어 법안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얘기밖에 안 됩니다.

3. 설 연휴 민심을 좌우할 기회는 사라지고

현장 기자들이 이렇게 어름하다 보니, 대부분 보도가 사실을 사실대로 다루지 못했습니다. 정책설명회를 두고 매체들이 ‘여야 홍보 전쟁’으로 구도를 잡았다지만, 이를 뛰어넘는 집권당 대표의 황당한 발언이 나왔는데도 이를 전혀 보도하지 못했습니다.

집권당 대표가 움직이는 현장이었으니만큼, 그 자리에 기자들이 얼마 있지 않았으리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왜 박 대표의 ‘황당한 무지’를 다루지 않았는지 따져보면, 정답은 바로 취재 기자들의 ‘못지않게 황당한 무지’말고는 있을 수 없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나라당이 얼마나 성급하게 미디어 악법을 추진했는지 충분하게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박 대표의 ‘황당’ ‘무지’ 발언을 제대로 다뤄 악법 추진의 비민주성만큼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내 설 연휴 귀향 민심의 향방을 좌우할 기회를 그냥 흘려보냈습니다.

4. 제2차 언론 악법 전쟁이 걱정된다

경남도민일보가 지난 연말과 연초 언론노조 파업에서 제 노릇을 못한 데 대해서는 많이 반성하고 부끄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 겸연쩍음을 무릅쓰면서도 이리 글을 적는 까닭은 설 연휴 지나면 곧바로 닥칠 ‘제2차 언론악법 전쟁’이 걱정된다는 데에 있습니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白戰不殆)’라는 말을 잘 아실 것입니다. 자신과 상대방을 잘 알면 백 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지요. 그러면, 행여 그 뒤에는 어떤 구절이 이어지는지 아시나요?

‘부지피이지기 일승일부, 부지피부지기 매전필패(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不知彼不知己 每戰必敗)’이랍니다. 우리말로는 이리 된다지요. ‘상대를 모르고 자기만 알면 반타작은 하고, 자기도 상대도 모르면 싸우는 족족 깨지고 만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요?

저는 1963년 8월 경남 창녕에서 났습니다. 함양과 창녕과 부산과 대구와 서울을 돌며 자랐고 1986년 경남 마산과 창원에 발 붙였습니다. 경남도민일보에는 1999년 들어왔습니다. 대학 다닐 때는 학생운동을 했고 졸업한 뒤에는 노동조합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을 일삼아 했습니다. 2007년 1월부터 2008년 12월 9일까지 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을 했으며 2009년 1월 기자 직분으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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