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치러질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는 언론에게도 중요한 계기가 된다. 총선이 끝나면 정치권과 언론은 곧장 대선 레이스에 돌입한다. 이번 총선이 중요한 이유는 결과에 따라 정부여당의 언론 장악력이 더욱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반 또는 180석 안팎의 의석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되는 새누리당이 언론에 던져줄 떡고물은 많다. 수신료 인상, 중간광고 허용, SK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 무산 등 지상파방송사의 민원은 물론 각종 방송광고 규제완화 같은 정책적 지원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이름으로 집행된다. 가뜩이나 광고가 빠져나가 살림살이가 어려운 지상파에게도, 값싼 제작비로 막말 정치토크쇼를 만드는 일부 종편에게도 이번 선거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사실 새누리당의 총선 미디어공약이라고 해봤자 ‘EBS2 활성화’뿐이다. “미디어는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가 많아 건들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새누리당과 한몸인 박근혜 정부는 지상파와 종편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정책을 펴고 있다. 그래서 새누리당에게는 ‘침묵’이 바로 공약이고, 새누리당이 의석을 더 많이 확보할수록 방송사들은 안도할지 모른다. 각 정당의 20대 총선 미디어공약을 분석한 전국언론노동조합 김동원 정책국장은 12일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미디어 공공성 문제를 시장 경쟁에 맡기겠다는 새누리당의 ‘침묵 공약’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이 ‘야당이 내세우는 공약에 반대한다’는 암묵적 공약을 내놓은 것으로 봐야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추진하는 언론정책이다.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이 최근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추가적인 방송광고 규제완화를 예고했다. 방통위는 이미 지난해 스포츠뉴스에까지 가상광고를 허용했고, 11일에는 최근 대부업과 17도 미만 주류의 가상‧간접광고를 허용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방통위와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은 지난 2월 25일 비공개로 중장기 방송정책 워크숍을 열었는데 이 자리에서는 수신료 인상, 중간광고 허용, 대기업의 방송사 소유규제 완화, 지역지상파 광역화 방안을 논의했다. 종합선물세트 수준이다. 방통위원장은 3월 초‧중순 지상파, 종편, 보도전문채널 등을 집중적으로 접촉했다.

박근혜 정부가 지상파와 종편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힘들지? 우리는 항상 너희들을 걱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 정부가 공영방송을 포함한 언론판이 ‘붕괴’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기획하고 국무회의에서 통과, 그해 11월에 공포된 신문법 시행령은 인터넷신문의 등록요건을 ‘취재‧편집인력 5인 이상’으로 강화하는 내용이다. 공론장의 ‘진입장벽’을 확 높여 여론을 통제하겠다는 의도다. 새누리당과 여의도연구원이 포털뉴스가 불공정하다고 주장하자, 네이버와 카카오의 뉴스제휴평가위원회 구성이 급물살을 타기도 했는데 이 또한 공론장을 축소할 것으로 보인다. 위원회는 주류언론과 이해관계를 함께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이들이 포털의 언론사 입점과 퇴출을 심사한다는 점에서 언론은 지금보다 더 ‘입조심’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물론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국민의당, 노동당, 녹색당 등 야당이 과반을 차지해도 똑같이 언론을 장악하려 하지 않겠느냐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런 주장은 야당이 총선에 내건 미디어공약을 고려할 때 가능성이 없다. 야당은 청와대를 정점으로 한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바꾸자는 것을 공약으로 내놨다. 더민주당과 정의당은 ‘종편 규제 정상화’와 방송사업자에 ‘노사동수 편성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하자는 공약을 내놨다. 또 불법해고와 방송통제 의혹이 담긴 ‘MBC 녹취록’에 대한 국회 차원의 청문회를 열겠다고 공언했다. 지상파와 종편이 기겁할 만한 내용이다.

정책으로만 따지면 언론이 환영할 만한 공약도 많다. 더민주당, 정의당, 녹색당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통한 자의적 심의를 제한하는 공약을 내걸었다. 지역신문과 지역방송에 대한 지원책도 내놨다. 이는 언론이 환영할 만한 내용이지만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언론은 없다. 왜일까. 우리는 그 이유를 합리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지금 언론은 박근혜 정부와 한몸이 됐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는 지경이다. 그리고 이번 총선을 경유하면서 그 속도는 더 빨라질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공영방송 내부에서는 자사의 선거보도가 여당에 편향됐고 소수정당을 감추고 있다는 보고서들이 나오고 있다. 국내 최대의 언론 관련 학회인 한국방송학회의 방송저널리즘연구회와 방송과정치연구회가 3월2일부터 3월22일까지 지상파3사와 종편4사의 메인뉴스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선거보도의 편향성과 불공정성이 드러났다.

이대로 가면, 새누리당이 침묵하고 정부가 뒤에서 움직이는 대로, 정치권과 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할 언론은 현저히 줄어들게 된다. 종편은 더 활개를 치고, 공영방송은 더 종속된다. 지금 정부 정책을 보면, 공론장은 축소 정도가 아니라 붕괴할 상황이다. 일부 종합편성채널들은 지난 대선 때 ‘공신’ 대접을 받았고, 새누리당은 종편 패널들을 대거 영입했다. 이제는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 공영방송마저 이렇게 활용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들의 유착관계가 끈끈할수록 저널리즘은 붕괴한다. 언론을 정권 재창출 ‘일등공신’이 되도록 둬서는 안 되는 이유다. 지금 언론을 손봐야 하는 주체는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가 아니다. 유권자다. 이번 총선을 통해 언론이 자신을 되돌아볼 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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