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재생산은 회귀성 어류의 번식과도 같다. 거칠 것 없이 원양을 헤엄치다가도 깊은 산속 얕은 고향 계곡으로 돌아가야 세대를 이어갈 수 있는 연어처럼, 제아무리 중앙무대에서 날고뛰던 정치인도 포항이든 어디든 고향 지역구로 돌아가 심판을 받아야 다음 4년 금배지를 내다볼 수 있다. 연어가 원양에서 고향의 기억을 잃고 정력을 탕진하면 대가 끊길 것이고, 정치인이 중앙무대에서 힘자랑만 하다가는 고향에 돌아와도 반겨줄 이가 드물 것이다.

▲ KBS 이병순 사장
힘은 아껴서 잘 써야 한다. 제도화된 권력도 마찬가지다. 자동차가 최대 마력과 토크로만 주행할 수 없듯이, 권력도 제도가 허용하는 극한까지 힘을 쓰면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다. 합법-불법은 적절성의 경계가 되지 않는다. 제도의 정교함이 끝내 가닿을 수 없는 지점에서 적절성은 경계를 짓는다. 그러나 그 경계는 전혀 정교하지 않고, 결코 정교할 필요도 없다. 다만 상식적 이성과 언어의 진정성이면 된다. 제도적 권력은 그 한계 안에서만 온전히 작동한다.

이런 진리를 한국정치사에서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 결의안 가결이다. 다수 야당은 자신들이 동원할 수 있는 최대의 힘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면 대통령도 몰아낼 수 있다는 계산을 끝냈다. 그건 도구적 이성이다. 제도가 이성 위에서 작동하는 게 아니라, 이성이 제도 위에서 재구성된 것이다. 그들은 실패했다.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 소추를 기각해서가 아니다. 헌재 기각 이전에 대중의 상식적 이성에 의해 기각당했다. 그리고 그들은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잃었다.

이병순 KBS 사장이 15일 사원행동 소속 양승동 피디와 김현석 기자를 파면했다. 거짓의 언어로 정연주 전 사장 해임을 결의한 KBS 이사회를 막으려 했다는 이유다. 이성을 참칭하고 언어를 능욕해 생겨난 빈자리에 청원경찰들의 호위를 받으며 취임한 KBS 공채 4기 이병순 사장이 양심을 실천하려한 후배들을 학살한 것이다. 그에게는 인사권이 있고, 인사위원회의 절차도 밟았다. 그의 권력은 제도 안에서 작동했다. 그러나 상식적 이성을 배반하고 제도화된 권력의 극한치를 행사한 것이었다. 그의 취임이 그랬으니 직무수행도 그런 것인가.

취임 과정과 직무수행 과정 모두 이병순 사장과 닮은꼴인 구본홍 YTN 사장도 16일 자신의 인사권을 행사했다. 사원투표를 거쳐 올라온 4명의 보도국장 후보 가운데 한 명을 자신의 권한 안에서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나머지 3명의 득표보다 더 많은 표를 혼자 얻은 1명을 비켜갔다. 그의 인사권도 극한으로 가동됐다. 그는 “구성원들의 뜻을 충분히 반영해서 내린 선택”이라고 말했다. 구성원들의 뜻을 따르면 앞으로도 계속 끌려갈 것이라는 계산, 그 도구적 이성에 기댄 천연덕스런 거짓언어다.

▲ 구본홍 YTN 사장.
이병순과 구본홍 두 사람에게 ‘인사는 만사’라는 말은 그들의 이성과 언어가 가닿을 수 없는 먼 곳에 있다. 그들의 선택은 처음부터 대중의 상식적 이성에 대한 배신을 전제하고 있고, 대중의 언어의 진정성에 대한 능욕을 내포하고 있다. 세상 전체가 그렇게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 두려움도 회의도 없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지난 임시국회에서 이병순과 구본홍의 배후는 한 번 패했다. 그리고 16일 신태섭 전 KBS 이사의 동의대 교수직 해임이 부당하다는 법원의 1심 판결이 나왔다.

이게 우연으로만 보이는가. 거짓의 언어가 진정한 언어에 의해 폭로된 지는 이미 오래고, 도구적 이성은 벌써 상식적 이성에 의해 쇠잔해지고 있다. 제도화된 권력을 너무 믿지 마라. 신태섭 전 이사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어느덧 제도가 제도를 자정하고 권력이 권력을 치유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이제 이병순과 구본홍, 그리고 그 배후는 돌아가기에 너무 늦었거나 돌아갈 곳이 이미 사라졌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직 늦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도나 권력과 하등 상관없이, 그들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바라는 이들도 몇은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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