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용기를 내지 못해 끝내 자신의 잘못을 감추는 데 급급한 경우들이 많다. 죄책감과 수치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우리네 인생을 강렬한 메시지로 담아내고 있는 <기억>은 그래서 특별하다. 기억을 잃으며 더욱 선명해지는 기억에 대한 이야기는 강렬하다.

이성민의 기억과 기억 사이, 지독한 갈등을 유도하는 사건들

아들 정우가 친구를 폭행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이유가 있다는 아들을 위해 아버지인 태석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아들을 믿고 정우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고민하게 된 아버지 태석이 학교 징계위원회에서 보여준 일갈은 시원하기만 했다.

태석은 학교 폭력이 왜 벌어지고 근절될 수 없는지를 보여주었다. 이사장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폭력을 행사했고, 그 폭력의 희생자인 친구를 돕다가 오히려 왕따와 폭행을 당하게 된 정우는 더는 참지 못하고 가해자를 폭행했다. 가해자를 폭행했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잔인한 가해자가 되어버린 게 진실이었다.

tvN 10주년 특별기획 금토드라마 <기억>

태석은 이 모든 사건은 결국 어른들이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강변한다. 그는 좀 더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졌다면, 그리고 보다 진정성 있게 학교 폭력에 다가갔다면 억울한 피해자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형식적인 대책으로 아이들을 주눅 들게 하고, 잘못된 대처로 오히려 피해자를 양산하는 어른들의 형편없는 행동은 결국 아이들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잘못된 어른들에 의해 기형적인 사고를 배운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그렇게 뒤틀릴 수밖에는 없다.

징계위원회를 나서며 정우가 바라본, 햇살이 들어오는 학교 창은 따뜻했다. 그리고 폭력을 당했던 명수 아버지가 뛰어나와 정중하게 사과하는 모습. 그런 가족과 함께 집에 오는 길이 태석은 한없이 행복했다. 그 행복이라는 끈을 놓지 않고 싶은 태석은 가족과 함께 막내 연우를 보러간다.

너무 일상적이라 소홀했던 가족에 대한 애정과 사랑, 그 평범함이 가장 행복할 수밖에 없음을 태석은 간만에 느낄 수 있었다. 가족과 함께 공원에서 아이스크림을 함께 먹는 것만으로도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이 현실을 태석은 기억을 잃기 전에는 소중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너무나 평범해서 놓쳤던 그 소중함을 태석은 기억을 잃으면서 찾기 시작했다.

"희망은 좋은 거에요. 최고의 선물이거든요. 그리고 좋은 건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는 아들 정우는 자신이 본 <쇼생크탈출>에서 나왔던 대사를 읊어주며 행복해 한다. 그러면서 아빠가 오늘 너무 멋있었다며 평생 오늘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아들. 그런 아들이 흐뭇하면서도 기억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해 아프기만 한 태석은 행복해서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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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석에게는 다섯 개의 사건이 한꺼번에 주어졌다.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여고생 수지의 절도 사건, 신영진 부사장 이혼, 아버지의 살인사건, 피에로 가면으로 등장했던 15년 전 살인사건 누명을 쓴 권명수, 그리고 아들 동우 뺑소니 사건이 그가 풀어내야만 하는 사건들이다.

모든 사건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다. 이 사건들 가운데 단 하나 도무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사건이 신영진 부사장의 이혼 건이다. 신 회장은 박변호사에 대한 확신을 가지기 위해 신 부사장의 이혼을 맡아달라고 요구했다. 신 회장도 알고 있는 아들의 잔인한 폭행을 알면서도 박태석에게 사건을 해결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일종의 시험이다.

신 회장이 계속 믿을 수 있는 존재인지를 위한 테스트 말이다. 태석이 거부하면 신 회장은 다양한 방식으로 '태선 로펌' 전체를 위기에 몰아넣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복잡하다. 도저히 변론하기 싫은 신 부사장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억울한 피해자를 가해자로 몰아가야 한다.

여고생 수지가 신용카드를 훔친 사건은 정진 변호사를 키우기 위한 좋은 이유가 된다. 스스로 보조 변호사가 되겠다며 정진에게 기회를 주는 태석. 아이의 마음을 열기 위해 봉선화에게 도움을 청하는 태석. 그렇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사건을 해결하려는 그의 행동은 조금씩 정진의 마음도 움직이게 하고 있다.

누구보다 태석을 잘 알고 있는 선화는 그의 변화에 주목한다. 최근 갑작스럽게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이 많아지며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 선화는 분명 태석이 달라지고 있다고 확신한다. 태석의 아내가 알게 된 알츠하이머. 결국 태석의 팀인 선화와 진이 역시 그의 병을 알아야만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변화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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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살인사건 누명을 쓴 권명수라는 청년을 무료 변호하던 태석은 분노했다. 그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이야기를 들어주다 아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아들의 죽음 뒤 알게 된 권명수가 숨긴 진실. 죽은 피해자의 지갑이 뒤늦게 그의 집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아들이 억울하게 뺑소니 사건으로 죽은 상태에서 권명수의 행동에 분노한 태석은 그렇게 폭력까지 휘둘렀다.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여전히 감옥에 있는 그를 찾아간 태석. 그 자리에서 권명수는 15년이 지나 오히려 사과했다. 너무 억울해 막말을 했다는 명수의 사건 역시 태석이 풀어내야만 하는 중요한 사건이다.

억울한 누명을 벗겨주지 못하면 결코 정의가 실현될 수 없을 것이다. 더욱 아들을 잃은 후 정신이 없던 상황에서 사건을 제대로 해결할 의지도 정신도 없었던 태석은 죄책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태석에게 피에로 가면으로 등장했던 권명수 사건은 꼭 풀어야만 하는 오래된 과제다.

태석의 아버지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움 없이 살았다. 그런 그는 부인과 아들을 버리고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나서 가족을 내팽개쳤다. 모든 것을 망친 아버지로 인해 어머니와 태석은 최악의 상황에서 살아야만 했다. 부랑자처럼 살아야 했던 그는 그 힘겨움을 이겨내고 변호사가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이제 안정적인 삶을 살게 된 자신들에게 아버지라는 이유로 그 사람이 들어와 있다.

아버지라는 이유로 이제 와 권리를 행사하려는 그에게 분노한 태석은 어머니에게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아버지가 살인자라며 형사에게 잡혀갔다는 사실이다. 부정하고 싶은 아버지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나서야만 하는 아이러니는 태석에게 주어진 숙명이다.

tvN 10주년 특별기획 금토드라마 <기억>

1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잊을 수 없는 아들의 죽음. 기억을 잃기 시작하며 더욱 강렬해지는 기억 속에서 아들은 여전히 선명하게 태석 앞에 등장한다.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풀어내지 못한다면 태석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아들을 잊지 못하고 그 사건에 집착하고 있는 판사인 전처로부터 시작해 점점 사건의 진실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 태석.

특별할 것 없었던 태석이 최고의 로펌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운이 아니었다. 대표인 이찬무가 바로 태석의 아들을 죽인 뺑소니범 이승호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아들의 죄에 대한 죄책감이 만들어낸 그의 선택은 그렇게 태석에게 새로운 기회로 다가왔다. 태석은 그렇게 태선 로펌에 들어가게 되었고, 정의감이 높았던 그는 오직 살기 위한 능숙한 변호사로 변하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태석은 미친 듯이 일했다.

판사 은선을 돕기 시작한 강 검사. 개인적으로 나 판사를 좋아해서 들어준 부탁이었지만 점점 기묘하게 변하기 시작하는 그 사건에 집착하게 된다. 황색언론의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인 강 검사의 대학 선배인 주상필까지 사건에 끼어들게 되면서 이찬무를 위협하기 시작한다. 아들을 보호해주고 싶은 찬무는 어떻게든 사건을 감춰야만 한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감시하던 찬무는 점점 변하는 태석이 두렵다. 잔인할 정도로 냉철하고 사악해 보이기까지 했던 태석이 다시 처음 만났을 때와 비슷한 정의감이 보이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이렇게 <기억>은 기억을 잃은 한 남자를 통해 소중한 기억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죄책감은 죄를 지었을 때 느끼는 양심의 소리이고 죄를 들켰을 때 느끼는 게 수치심이라며 죄책감과 수치심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찬무. 그런 찬무의 발언을 자신과의 불륜에 대한 고민으로 해석하는 한정원. 하지만 이 죄책감과 수치심이 곧 <기억>의 중요한 주제라는 점에서 특별하게 다가온다.

기억을 잃으며 비로소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기 시작한 한 남자의 이야기는 묵직하게 다가온다. 가벼움이 미덕이 된 현실에서 이 무거운 이야기가 더욱 강렬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가치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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