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풍경, 하나

2015년 한국 사회를 사로잡았던 사회적 화두는 단연 ‘혐오’였다. 여성혐오를 비롯한 다양한 소수자에 대한 혐오는 1990년대 말 이후 온라인 공간 및 대중문화의 장에 언제나 꿈틀거리고 있었던 것이었고, 그런 혐오의 감정은 소수자에 대한 제도적 배제와 물리적 폭력을 초래해왔다. 그건 그다지 새로운 일도 아니었던 셈이다. 그러나 혐오에 기반한 사건들은 고통스럽게 이어졌고 점점 증가했다. 그런 혐오행위/범죄의 연쇄 안에서 폭식투쟁과 ‘세월어묵’처럼 국가적 재난의 피해자들조차 ‘웃음의 소재’로 소환되자 한국 사회는 요동쳤다.

그리고 2014년 말, 농담처럼 시작되어 공기처럼 스며든 혐오가 ‘종북 혐오 사제 폭탄’이 되어 오프라인의 세계에 등장했을 때. ‘혐오’를 설명하려는 고군분투는 더욱 활발해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노력에서 한동안 잊혀져있었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사제 폭탄을 터트린 테러범에게 부끄러움도 없이 ‘위로금’을 전달한 손이었다. 사람들은 그 소식에 잠시 분노했지만 그 손이 혐오의 풍경에 무슨 일을 했는지는 충분히 주목하지 않았다.

포스트 416 시대를 휘감고 있는 “혐오의 공기”

<불온한 당신>(이영,2015)은 혐오의 시대에 우리가 광장에서 대면했던 혐오에 대한 세밀한 묘사다. 감독은 혐오를 표출하기 위해 집단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출몰하는 곳곳마다 카메라를 들고 찾아간다. 절차에 따라 합당하게 서울시민인권헌장을 제정하라고 요구하는 집회, 학생인권조례개정안 토론회, 세월호 진실규명 집회, 퀴어퍼레이드 등이 <불온한 당신>의 카메라가 당도한 곳이다. 물론 그들은 시민들의 직접행동을 방해하기 그곳에 위해 등장한다.

이 작품은 한국 사회가 다시 보수화되기 시작한 시기에 기획되었다. 2008년 보수 정권이 집권하면서 ‘종북몰이’가 새롭게 전개되었고, 성소수자를 향한 공격 역시 전면화되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들을 보면서 이영 감독은 성소수자 당사자로서 불안감을 느꼈고, 그것이 <불온한 당신>의 시작이었다. 사회가 그렇게 성소수자에게 끊임없이 ‘보이지 말라’고 요구한다면, 그것을 ‘보이도록’ 기록하고 공유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였을 것이다.

카메라를 든 이후로 상황은 점점 악화되었다. 2013년 말에는 ‘혐오 세력’이 성소수자 인권이 명시된 서울시민인권헌장의 제정을 막아섰고, 무지개 활동가들이 시청을 점거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한국 사회에서 제도적으로 성소수자의 존재와 안전을 보장받는 것은 요원한 일인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즈음, 한 게이 청년이 자살한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교회 공동체에 의지하던 그는 정체성이 알려지면서 그 공동체 내에서 심리적 갈등과 물리적 폭력에 노출됐다. 그렇게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다. 이영 감독은 성소수자에겐 일상이란 것 자체가 재난의 지속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감독은, “일상이 재난”이라는 은유를 넘어, 실제 재난에 처한 성소수자의 삶을 추적하기로 한다. 일본의 레즈비언 커플 텐과 논과의 만남은 그렇게 이뤄졌다. 그들이 동일본 대지진 당시 경험한 일은 성소수자의 ‘비가시성’이 어떻게 재난 상황에서 그들의 실존적 위기를 초래하는지 잘 보여준다. 그들은 가족관계를 증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서로의 생사를 확인할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패널로 참가했던 희망을만드는법의 류민희 변호사의 말에 따르면 참사의 현장에서 성소수자들은 이중의 어려움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할 수도 증명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에 놓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트랜스젠더의 경우에는 호르몬 지원과 같은 필수적인 의료지원으로부터 배제된다. 동성애 커플은 서류 상 가족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재산 손실을 제대로 보존받기 힘들다. 무엇보다, 대피소 등 공동생활 공간에서는 그들의 존재 자체가 안전을 보장받기 힘든 구조인 것이다.

이에 대한 작업을 진행하던 와중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다. 그리고 유가족이 혐오의 대상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이영 감독은 “성소수자를 향하던 혐오가 점점 더 많은, 평범하다고 불렸던 사람들에게도 확산되어 가는 것”을 보게 된다. 이제 “한국 사회에선 누구나 혐오의 공기를 마실 수밖에 없다”는 생각 속에서 혐오에 관한 작업은 계속되었다.

혐오의 카르텔과 “가만히 있으라”

흥미로운 것은 <불온한 당신>이 묘사하는 혐오세력이 비슷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은유가 아니다. 실제로 그 나물에 그 밥이라 할 만큼 같은 사람들이 혐오의 장면(scene) 여기저기에 ‘겹치기 출연’한다. ‘반동성애 집회’이 있던 사람이 “세월호 이제 지겹다, 그만하자”를 외치고, 또 그들이 ‘종북 좌파가 나라를 망친다’는 공포정치의 수사를 반복한다. 그들의 논리 안에서 동성애자, 종북, 좌파, 피해 유가족은 모두 ‘불온 세력’으로 퉁쳐진다.

이렇게 혐오행위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등장은 한국 사회의 급격한 보수화와 연결되어 있다. 2000년대 말부터 한국은 급격한 우편향의 시기를 맞이했다. 그리고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면서 정치혐오를 팔았던 ‘역사적 블록’은 다양한 형태로 역사의 시계를 되돌리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합법적 정당의 강제 해산, 평화집회 운운에 국정교과서 추진을 비롯한 다양한 ‘역사 재인식’ 작업, 그리고 최근의 ‘12.28 불가역적 합의’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도 넓다.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었다. 이런 보수화의 물결은 정확하게 성보수화와도 연결되어 있었다. 김치녀나 김여사, 맘충와 같은 각종 여성혐오 표현의 난무, 기독교 우파를 중심으로 한 동성애에 대한 공격, 사문화되었던 낙태죄의 부상, ‘양성평등’을 내세워 여성성소수자는 배제하겠다는 여성가족부 등의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지는 중이다. 한 사회의 보수화는 다양한 소수자 및 성에 대한 공격과 맞물려서 진행된다. 공적 영역에 대한 통제는 사적 영역에 대한 통제에 기대고 있고, 사적 영역은 남녀 성역할의 분리, 이성애 중심 가족, 정상/비정상을 가르는 성규범과 같은 일련의 성적 체계를 그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가 규정하는 정상적인 것에 대한 이미지, 즉 ‘정상성’의 관념에 기댄다. 사회는 이렇게 정상성에서 ‘일탈’한 것들을 ‘불온한 것’으로 낙인찍고, 그 불온한 것들을 ‘비인간’으로 전락시켜 혐오한다.

“동성애자는 더러운 좌파”라는 한 공영방송 이사의 말은 이 모든 과정을 함축시켜 보여준다. 여기에서 ‘정상적인 성’에서 벗어난 ‘동성애자’가 ‘정상적인 정치경제 체제’에서 벗어난 ‘좌파’로 바로 연결된다. 그리고 그런 ‘불온한 것’들은 곧 ‘더러운 것’, 그러니까 ‘혐오스러운 것’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이처럼 불온한 것들을 혐오스러운 것으로 만들어 수치심 속에 가두어둠으로써, 그렇게 “가만히 있으라”고 명령하고 나서지/보이지 못하게 함으로써, 사회는 배제와 폭력의 수사인 ‘정상성’을 지킨다. 이영 감독이 전해준 한 성소수자의 부모의 말은 인상적이다. “가만히 있으라는 것과 성소수자들에게 나오지 말라고, 이야기하지도 말고, 존재도 보이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이 다르냐.” 혐오의 카르텔은 이처럼 ‘불온한 것’들의 일상을 재난으로 치환해낸다.

이렇게 차별을 조장하고 물리적 폭력을 자행함으로써 시민을 위험으로 내모는 세력들이 활개를 치고 있을 때, 도대체 국가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류민희 변호사의 말처럼, 국가는 기실 차별을 선동하고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에 대해 방관함으로써 “그렇게 해도 괜찮다”는 신호를 보낸다. 뿐만 아니라 혐오가 표출될 공간은 확보해주되, 그런 혐오에 대응할 수 있는 소수자들의 대항 공간은 조직할 수 없도록 한다. 무지개재단과 같은 성소수자 법인을 허가해주지 않는 것은 그 맥락 안에서 이해될 수 있다. 국가와 제도가 의도적으로 기울어진 판을 짜고 있는 셈이다.

이제 우리는 처음에 던졌던 질문으로 되돌아 가볼 수 있다. 백색 테러에서 간과되었던 그것. 테러범에게 ‘위로금’을 건넸던 그 손이 혐오라는 마음이 그려내는 이 사회의 풍경에 그었던 하나의 획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혐오를 표출해도 된다”, 아니 “어떤 혐오는 표출하는 것이 더 좋다”는 메시지의 전달이었던 것이다.

혐오의 풍경, 둘

하지만 혐오에 대한 논의는 혐오를 조장하고 혐오에 기생하는 ‘특정한 집단’이 있다는 논의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혐오가 하는 일은 조금 더 복잡하고 또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혐오는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하고 공명하는 공간인 ‘우리’라는 관계에 대한 감각이 사라지고 무한 경쟁이 지상명령이 된 각자도생의 삶이 필연적으로 양산하는 감정이다. 사회적 감정으로서의 혐오란 ‘건강한 나’를 몰락시킬 수도 있는 것들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상쇄시키기 위해서, 나로부터 지워내고자 하는 ‘약한 모습’을 가진 이들을 ‘비인간’의 자리로 격하시켜 나와 분리하여 그 힘을 빼앗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혐오가 강자가 아닌 약자만을 향하는 것은 그런 이유다. 그래서 혐오란 모든 것을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마음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 어디서고 재난이 닥쳐와 나를 휩쓸어 갈 수도 있는 재난의 시대를 산다. 그런 삶 속에서 ‘나의 안전’이라는 환상을 영속시키기 위해서, 혐오는 필요하다. 재난 피해자를 나로부터 분리해서 타자화해야 이 불안을 극복하고 삶이 던져놓는 공포 속에서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포스트 416시대, 이 재난의 시대에 혐오가 하는 일은 분명하다. 참사를 ‘나’로부터 분리해서 외면해버리는 것, 피해자를 타자화하여 ‘나’와는 무관한 일로 만들고 고개를 돌리는 것, 그 ‘외면의 체계’를 형성하는 일이다.

세월호는 정확하게 ‘나의 참사’였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의미에서 ‘나의 참사’일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세월호라는 인재의 공모자라는 의미에서 ‘나의 참사’다. “삼풍 때 외면했기 때문에, 오늘 나에게 세월호가 닥쳐왔다”는 유가족의 고백은 우리 모두의 고백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세월호에 대해서 계속 기억하고 말하고 움직이는 것은 ‘피로감’을 준다. 쉽게들 말하는 것처럼 “남의 일에 공감하고 슬퍼하는 것”이 피로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나의 일’이기 때문에 피로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세월호를 ‘남의 일’로 만들고 싶어 한다. 혐오행위/범죄는 이 과정을 도와준다. 우리는 폭식투쟁이나 ‘세월어묵’, ‘일개 교통사고’ 운운에 동참하지는 않지만, 그런 혐오가 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재빠르게 캐치한다. 이젠 남의 일로 타자화하고 외면해도 된다는 것이다. 특히 ‘세월오뎅’ 같은 ‘미친 녀석들의 미친 퍼포먼스’는 “이제 좀 그만하지”, “지겹다”, “특권세력 아닌가” 등 기실은 ‘우리’도 공유하고 있는 그 생각들을 극단으로 밀어붙여 표현함으로써, 그런 생각 자체를 ‘남’의 생각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효과를 생산한다. 포스트 416의 시공간에서 “나는 그들이 아니다”라는 안도감은 이중의 타자화를 의미한다. “나는 혐오 세력이 아니다”와 함께 “나는 혐오 세력의 혐오 대상이 아니다”가 함께 놓여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드디어 우리는 ‘세월호로부터 한 걸음’ 나아가도 괜찮게 된다.

이 ‘외면의 체계’가 쌓아놓은 안전이라는 환상 안으로 한 걸음 들어왔다면, 우리도 혐오에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

기억과 기록, 그리고 ‘우리’의 재조직

그렇다면 도대체 이 ‘외면의 체계’를 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류민희 변호사의 말은 귀 기울일 만하다.

다큐 보시고 많이 놀라시는 분들이 있죠. 이걸 보고 휴머니즘 자체에 대해 회의를 갖거나 우울해 하는 분들도 있구요. (...) 하지만 제가 근본적으로 낙관을 하게 되는 것은, 제가 이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장면에 함께 했었던 것 같은데, 매 순간을 지나면서 동지와 동료가 더 많아졌다는 점이에요. (...) 저의 고통에 공감하는 동료를 얻어가면서, 한국 사회가 결국은 가야 할 길을 찾아갈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류민희 변호사는 이 말과 함께 이런 기록이 계속되어야 하고,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눠져야 할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사건의 공유가 마음을 움직이고, 드디어 공감하게 하는 급진적 공간을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기억할 만한 것은 이영 감독이 언급한 ‘오카와 초등학교’의 경우다. 오카와 초등학교는 ‘일본판 세월호’로 알려진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공간이다. 당시 쓰나미가 몰려올 때 그 지역에 대피 지시가 떨어졌지만, 최종 결정권자인 교장이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그래서 교내 대피 지시가 내려지지 않았고 80여 명의 학생과 교사가 사망했다. 오카와 초등학교는 현재 애도와 추모의 공간으로 존치되기로 결정되었다. 이영 감독은 애도를 위한 공간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기록하고, 기억하고, 기어이 그 이야기들을 이어가는 것. 그것은 기실 정성과 마음이 필요한 일일 터다. 이영 감독은 이어서 덧붙였다.

[우리는] 개인이자 홀로 선 사람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사회 속 개인이죠. 오롯이 혼자인 개인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연관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이 다큐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가 그렇게 연결되고 공감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영 감독의 말처럼 416 씨네 토크는 ‘외면의 체계’를 넘어서 새로운 ‘우리’를 만들어 가는 과정 중 일부로서 기획되었다. ‘혼자인 개인은 없다’는 말을 기억하면서, 이렇게 새롭게 ‘우리’를 조직하려는 노력들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런 노력들은, 나와 남을 가르는 마음이 아니라, 나와 남을 엮어내는 마음에 의지할 때야 가능할 것이다.

※ 이 글은 인권운동사랑방 웹진 <인권오름>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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