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권리 마저 침해해도 되는 것일까? 그렇게 해서 이룬 ‘선진화’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최근 외신들이 미네르바 체포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포브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월스트리트저널 등 유명 외신들은 △표현의 자유 침해 △정부의 온라인 통제 시도와 한국의 인터넷문화의 위축 △정부정책 비판 금지 등에서 본 한국 민주주의의 수준 △환율정책의 불투명성 등 4가지에 주목, 미네르바 체포에 대해 매우 ‘우려’하는 보도를 연일 쏟아내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언론 단체인 국경없는 기자회도 지난 13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며 ‘미네르바의 석방’까지 직접적으로 촉구했다.

이는 국내 신문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진보’라고 평가받는 경향, 한겨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미네르바 사태에 대해 보수신문들은 “사회적으로 큰 혼란과 피해를 주는 허위 사실까지 ‘표현의 자유’를 허용할 수 없고 인터넷이 성역이 될 순 없다”며 ‘표현의 자유’를 ‘침해 가능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논조’가 다르기 때문일까. 미네르바와 관련한 외신 보도와 국경없는 기자회의 성명은 이들 신문에서 찾아볼 수도 없다.

이들이 보기에 미네르바의 글은 “외환시장을 혼란시킨 행위로서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며 “헌법적 권리인 표현의 자유에도 책임과 절제가 필요하고 사이버공간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포털 속의 이런 병리현상이 해소되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의) 선진화는 요원하다”는 주장까지 등장했다.

먼저 외신 보도를 살펴보자. 외신 가운데 가장 먼저 ‘미네르바 체포’를 전한 것은 영국 로이터 통신사였다. 로이터는 8일(현지시간) 미네르바 체포를 다루며 “한국 정부가 경제전문가들에게 경제정책에 부정적인 비판을 하지 말 것을 요청하고 있다”고 전했다. 로이터는 “몇달 전 지역신문에 외환보유고에 대한 걱정을 표현했다가 한국은행 고위관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 관리는 언론이 부정적인 견해를 계속해서 보도하면 내가 (잠재적) 위기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익명의 한 경제전문가와의 인터뷰 내용을 싣기도 했다. 로이터는 정부 정책을 비판할 자유를 빼앗기고 있는 대한민국 현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던 것일까. 로이터는 이 뉴스를 “사람이 개를 물었다”는 류의 뉴스가 실리는 ‘황당뉴스’(Oddly Enough)에서 전했다.

뉴욕타임스의 국제판인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nternational Herald Tribune)도 11일자(현지시간) 1면에서 “글로벌 금융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던 한국 정부가 유명 블로거를 체포함으로써 드물면서도 논쟁적인 선례를 남겼다”며 “정부는 박씨의 예가 강력하고 제어하기 어려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제하려는 시도에 무게를 실어줄 것을 희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 역시 12일(현지시각) ‘한국 정부가 인터넷 예언가를 로그오프시키려 한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경제에 대해 우울한 예측을 하라, 그러면 당신은 이명박 정부의 표적이 될 것”이라며 “이는 결국 한국의 언론자유를 침해하고 네티즌과 경제 논객들을 침묵하게 할 것”이라고 한국의 현실을 꼬집었다. 월스트리트 저널도 13일(현지시각) 국제면 톱으로 미네르바 체포 사실을 전하며 “박씨의 체포는 한국정부가 비판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환율 정책이 투명하지 않다는 것이며, 한국정부가 비판에 강경 대응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유명 언론 단체인 ‘국경없는 기자회(RSF)’는 13일 자신들의 홈페이지(http://www.rsf.org/)를 통해 미네르바 석방을 촉구하고 나섰다. RSF는 “당국은 박씨가 개인적인 견해를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했을 뿐인데도 그의 글을 통해 촉발된 문제에 대한 책임을 그에게 돌리기를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잘 알려진 인터넷 블로거 박모씨에 대한 석방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들은 “그의 체포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이자 한국 인터넷의 미래에 나쁜 징후를 예고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 ‘국경없는 기자회(RSF)’는 13일 자신들의 홈페이지(http://www.rsf.org/)에서 미네르바 석방을 촉구하는 성명을 올렸다.
이렇듯 미네르바 사태에서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주목하고 이를 한국 인터넷 문화의 ‘나쁜 징후’로 받아들이고 있는 외신과 달리 국내 보수신문들은 “표현의 자유에도 책임과 절제가 필요하다”는 주장들을 쏟아내고 있다.

미네르바 체포에 대한 보수신문의 태도는 △학력·직업을 거론하며 미네르바 글 평가절하 △‘외환시장 혼란 행위’라는 죄의 무거움 강조 △‘표현의 자유’에도 책임과 절제가 필요하다는 주장 등 3갈래로 나뉜다.

전문대 출신 30대 무직자라는 미네르바의 학력으로 그가 여태껏 주장해온 경제 예측의 신뢰성이 송두리째 무너지기라도 한 것일까. 중앙일보는 10일자 사설 <‘미네르바’ 계기로 인터넷문화 성숙돼야>에서 미네르바가 30대 무직의 박모씨였다는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해 “경제전문가도 아닌 사람이 익명으로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면서 인터넷 스타로 떴다는 사실은 사이버문화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준다”며 “충격적”이라고 평했다.

조선일보 역시 14일자 사설 <‘미네르바’를 다시 생각해본다>에서 박씨가 ‘30대 무직의 비경제전문가’임을 강조, “(박씨의 글은) ‘가진자들’이란 표현이 수도 없이 등장하는 데서 드러나듯 이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이나 대기업에 대한 욕설과 저주, 증오로 가득하다”며 미네르바의 경제 전망이 몇차례 들어맞은 것에 대해서도 “자신의 주장이 틀렸다 해서 잃을 게 아무것도 없는 박씨가 눈 감고 내지른 말이 운 좋게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이같은 ‘평가 절하’는 박씨의 글을 ‘심각한 허위 사실 유포’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동아일보는 10일자 사설 <‘31세 골방도사 경제대통령’ 누가 만들었나>에서 “신원도 확인되지 않은 누리꾼이 얼굴없는 ‘경제대통령’으로 부상한 일련의 과정을 돌이켜보면 이성보다는 감성, 과학보다는 근거없는 선동에 휘둘리기 쉬운 우리사회의 심각한 병리현상이 엿보인다”며 “‘정부가 금융기관과 기업에 달러 매수 금지 명령을 내렸다’는 박씨의 글은 시장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허위사실 유포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12일자 사설 <미네르바 구속에 ‘사이버 보복’하는 서글픈 악의>에서도 “수십만명의 누리꾼에게 전파력을 가진 인터넷논객이 ‘정부가 금융기관 및 수출입 관련 주요 기업에 달러 매수를 금지한다는 긴급공문을 전송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해 외환시장을 혼란시킨 행위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며 “헌법적 권리인 표현의 자유에도 책임과 절제가 필요하다. 사이버공간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포털 속의 이런 병리현상이 해소되지 않고서는 선진화는 요원하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역시 1월 12일 사설 <‘미네르바’ 구속의 떡고물 챙기려는 무리들>에서 검찰의 미네르바 구속영장 발부에 대해 “사회적으로 큰 혼란과 피해를 주는 허위 사실까지 ‘표현의 자유’로 허용할 수 없고 인터넷이 성역이 될 수 없다는 판단”이라는 검찰측의 입장에 손을 들어주었다. 조선일보는 “인터넷에선 이번에 구속된 인물이 진짜 미네르바가 아니라 ‘가짜’이고, 네티즌을 탄압하기 위해 공권력이 만들어낸 ‘조작된 인물’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며 “지금 우리 사회의 정신상태가 중증(重症)이라는 이야기”라고까지 판단했다.

중앙일보도 10일자 사설 <‘미네르바’ 계기로 인터넷문화 성숙돼야>에서 “얼굴이 가려질수록, 주장이 자극적일수록 네티즌들의 호응을 얻는 사이버문화는 문제가 있다”며 “여야 모두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인터넷의 순기능은 살리면서 부작용과 역기능을 줄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 ‘사이버모욕죄’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중앙일보 10일자 사설
같은 언론인데도 해외 유명 신문들과 국내 유명 신문들에게 ‘표현의 자유’는 각기 다르게 다가오나 보다. 과연 “7대 금융기관 및 수출입 관련 주요 기업에게 달러 매수를 금지할 것을 긴급공문으로 전송했다”는 인터넷 글이 외환시장을 혼란시킬 정도의 행위에 해당하는 것일까. 게다가 기업의 연말 결산을 앞두고 정부가 작년 말 외환시장에 개입했다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었고, 미네르바 박모씨도 자신의 ‘과실’을 인정하며 곧 글을 삭제하지 않았나.

인터넷상에 올린 글 한편을 문제삼아 체포까지 하고 구속영장을 발부했다는 사실에 대해 해외 언론이 ‘황당’하고 ‘우려’할만 일로 받아들이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으로 보인다. 해외 기자들까지 국내 개인 블로거의 체포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로 인식하며 석방을 촉구하고 있는 마당에 사건을 과장시켜 “표현의 자유에도 책임과 절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보수신문들이여. ‘표현의 자유엔 책임이 필요하다’는 당신들의 주장을 그대로 되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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