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소장파라 불리는 의원들이 있었던 적이 있다. 남경필 원희룡 정병국이 소장파 트로이카 체제를 유지하면서 나름대로 한나라당의 극우경향을 일정하게 희석시켜면서 건강한 우파의 이미지를 만들려던 시절,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한데 정병국 의원은 ‘언론장악7대악법’의 주동자로서 더 이상 소장파 운운하며, ‘한나라당 내에서 그나마 민주적 인사’라는 평가를 자진 반납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원희룡 의원은 자기가 ‘박근혜 반열’쯤 된다고 착각하는 모양인지, 도통 현안에 대해서 입을 열지 않고, ‘근엄하다’는 평을 원하는지 침묵이다. 완전변절인지 코메디인지, 하여튼 우습다.

“조중동TV 삼성방송 안돼”

▲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 ⓒ여의도통신
‘그나마 민주적 인사’ 중 한 사람인 남경필 의원이 14일 PBC 라디오 ‘열린 세상 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최근의 각종 현안에 대해서 나름대로 입장을 개진했다.

‘다공영 일민영’체제인 지상파 구조를 ‘일공영 다민영’체제로 바꾸는 것은 당론이기 때문에 동의한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MBC 민영화’에는 찬성한단다. 하지만 조중동 등 신문과 삼성 현대 LG 등 재벌이 ‘중앙지상파 방송에 참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발언함으로써, 청와대 방통위 홍준표 고흥길 정병국 나경원 등이 주도하는 ‘조중동TV 삼성방송’에 일정한 반대 목소리를 냈다. 반박하고 비판할 점이 많지만 최소한 ‘조중동TV 삼성방송’은 안된다는 지적은 의미 있다는 점에서 평가에 인색하지 않고자 한다.

“검찰이 국가신인도 하락시켜”

문제는 ‘미네르바’에 대한 구속 수사와 관련해서 한 발언이다. 남 의원은 “그동안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정부가 국제관행상 공식 확인한 적이 없었다… 검찰이 20억 달러 이상을 외환시장 안정화 비용으로 더 사용하게 됐다는 정부 담당자의 진술을 확보했다고 하는데, 결국은 수사로 인해서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미에서 국가 신인도 하락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옳은 말이다. 미네르바가 국가신인도를 하락시킨 것이 아니라 ‘청와대를 향한 검찰의 과잉충성’이 일을 그르치고 있고, 국가신인도를 하락시켰다는 주장에 백번 동의한다.

‘검찰을 구속해야 되지 않을까?’하고 말했으면 훨씬 더 좋았을걸. ‘국가신인도를 하락시키는 행위를 하면 구속이라는 등식을 만든 검찰인데, 검찰이 국가신인도를 하락시켰으니까, 검찰총장 한 명 쯤은 구속시켜야 되는 것 아닙니까?’하고 주장하는 ‘소장파 정치인’의 대찬 발언은 아직까지 요원할 뿐이고….

“외화손실 20억불, 외환딜러가 바보냐”

‘미네르바 때문에 외화 손실 20억불’이라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서도 남 의원은 “외환 딜러는 평생을 종사한 전문가들인데, 이 분들이 미네르바가 올린 글만 보고 한꺼번에 한 방향으로 움직였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며 “비판적인 인터넷 논객들을 공안적 시각에서 접근하기 보다는 국민 전체에 대한 신뢰 회복을 위한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이것도 옳은 말이다. 쉽게 말하면, ‘미네르바가 말했다고 졸졸 따라다닐 정도로 외환딜러가 바보냐’는 뜻이다. 그래서, ‘한꺼번에 한 방향으로 움직였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가 아니라 ‘한꺼번에 한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주장은 희대의 사기행각이다’쯤으로 분명히했으면 좋으련만, 아직까지는 그런 정치적 발언을 감당할 수준이 아니라 안타까울 뿐이고….

이런 내용들은 참으로 공감할 수 있는, 한나라당의 당론 속에서 개별 의원, 그것도 소장파 핵심리더로서 ‘자율성을 가진 발언’으로 좋은 평가를 해 주고 싶다.

늑대소년, 미네르바일까 이명박-강만수일까

하지만 경제논객 미네르바를 ‘늑대소년’에 비유한 것은 인정하기 어렵고 동의하기는 불가능한 발언이다.

남 의원은 “이솝우화에서 늑대가 나타났다고 소리 질렀던 늑대 소년이 나쁘지만, 그 늑대소년을 구속까지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정상적인 상황에서...과잉 대처가 아니었느냐”고 말했다. 비정상적인 상황, 과잉대처라는 지적은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하지만 남 의원의 속내를 보자면, ‘늑대소년 구속은 과잉대처지만, 거짓말쟁이는 맞다’다.

과연 미네르바는 거짓말쟁이인가? 먼저 상대적 개념으로 접근해 보면, ‘코스피지수 3000’을 주장한 이명박 대통령과 증권사들이 거짓말쟁이인가? 아니면 ‘코스피지수 저점은 500’이라고 주장한 미네르바가 거짓말쟁이인가?

개미투자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미네르바가 코스피 지수 저점 500을 예측해서 고가에 팔도록 한 것은 ‘국민에게 이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코스피지수 3000’을 선동해서 엄청난 손실을 입게 한 것은 ‘국민에게 해로운 일’이었다.

누가 구속되어야 하는가? 설령 둘 다 허위사실유포를 했다고 백번 양보하더라도, 처벌을 받는다면 누가 받아야 하는가? 개미투자자들인 국민들의 재산상 손실을 끼친, 상대적으로 많이 끼친 사람과 집단을 구속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지만, 워낙 상식이 전복되는 일을 많이 겪고 있는 터라 질문하는 것이다.

이렇게 따져보면, 거짓말쟁이 늑대소년은 적어도 미네르바는 아닌 게 분명하지만.

환율문제도 그렇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인위적 환율상승을 주도했다가 엄청난 부작용이 발생하자 인위적 환율하락을 위해 보유하고 있던 달러를 시장에 마구 뿌려 ‘제2의 IMF환란 위기상황’을 초래했다. 이를 예측한 미네르바가 거짓말쟁인가? 아니면 ‘인위적 환율상승정책’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강만수 장관이 거짓말쟁인가?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은 강만수 장관이 거짓말하는 것으로 비판했는데… 남 의원은 어떤 근거로 외려 미네르바를 거짓말쟁이로 모는 것인가?

남경필, 보다 자주 보다 뚜렷한 소신발언 기대

방송에 나와 정치적 발언을 할 때는 제발 공부 좀 하고 나오기를 바란다. 한나라당의 누구처럼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고, 최소한의 공부도 하지 않고 나와서 ‘거짓말과 거짓 데이터’를 늘어놓고, 토론현장에서 반박당하며 웃음거리가 되지 말고, 적어도 ‘건강한 보수’로서 정치적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남경필 의원이라면, 민감한 정치현안, 사회현안은 최소한의 학습을 통한 적절한 비유를 준비하고 나와야 할 것이다.

평소 공부 좀 하면서, 보다 자주, 보다 뚜렷하게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말하는 남경필 의원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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