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위기가 실물 경제를 거의 다 삼켰지 싶다. 전 세계 모든 IT기업들이 부러워 마지않는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다던 천하의 삼성전자마저 흔들리고 있는 모양새다. 본격적인 기업 실적 발표 시즌에 앞서, 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가 적자를 기록했을 것이라는 전망이 파다하다.

하지만 무감할 뿐이다. 위기와도 낯을 튼 지가 꽤 되어서일까, 구체적으로 무엇부터 어떻게 체감해야 하는지 막막할 뿐이다. 주식은 반 토막 난 지 오래이고, 주택/토지 등 모든 자산들은 만약이 소용없는 지속적인 하락, 즉 디플레이션을 맞고 있다. 같은 기간 생활물가지수는 5%이상 상승했다.

상황이 이럴진대, 대통령은 자꾸 실없는 소리만 해댄다. 허리띠 졸라매고 삽질하다 보면 좋아질 거란 오래 되고 막연한 주술만 욀 뿐이다. 경제 책임자는 ‘왜 사냐고 물으면 달러 사지요’의 낙관 밖에는 아는 게 없는지 도무지 신뢰가 안 간다. 정부라도 똘똘해야 개인들이 뭔가를 준비하고 위기에 대처하는 계획이라도 세울 수 있을 텐데 오뉴월 개 꿈같은 소리일 뿐이다.

그럼에도 분석은 귀하고 드물다. 물론, 이내 완력에 제압당하기 때문이기도 할 테지만 신문을 펼쳐 보면 답답할 뿐이다. 주류 미디어들이 얼마나 상투적인지. 위기의 본질에 다가설 의지도 능력도 없어 보인다. 다만, 열심히 위기 관련 보도만 하고 있을 뿐이다.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경기가 언제 좋아질까’를 예측하는 선무당 흉내에만 여념이 없을 뿐이다. 그렇다. 경제는 그 자체로도 심각한 위기이지만, 주변 환경마저 피폐한 상황이라 더욱 암울한 처지이다. 다시, 묻는다. 과연, 미네르바는 무엇이었나?

▲ MBC <손에 잡히는 경제>에서 실시한 '미네르바' 관련 여론 조사 중, '미네르바' 글의 경험 여부를 묻는 설문 결과 ⓒMBC
MBC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 유종일입니다>에서 전국 10대 이상 남/녀 3540명을 대상으로 미네르바 관련 여론 조사를 시행했다. ‘미네르바 글의 경험여부’, ‘미네르바의 글/전망에 대한 신뢰도’, ‘미네르바 사법처리에 대한 의견’으로 구성된 설문이었다. 큰 덩어리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체 응답자의 79%가 미네르바의 글을 ‘경험’했다. 그 중 70.8%가 미네르바를 ‘신뢰’한다. 그리고 ‘경험’ 및 ‘신뢰’ 여부와 상관없이 전체 응답자의 61.4%가 미네르바에 대한 사법처리에 반대했다.(신뢰한다고 응답한 사람만 보면 82%가 그의 사법처리에 반대했다. 불신한다고 응답한 사람들마저도 41.4%는 그의 사법처리에 반대했다.)

통계가 환원되는 일반적 방식으로 과장하자면, 전체 국민 5명 중 4명이 미네르바를 읽었고, 글을 읽은 4명 중 3명은 그를 신뢰했으며, 국민 3명 중 2명은 그의 사법처리를 반대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은 결과는 이번 설문조사뿐만 아니라, 다른 설문조사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지난 12일 세계경영연구원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58%가 미네르바의 구속을 반대했다. 일치된 결론이다. 설문조사는 미네르바 나아가 한국 사회에 제기되고 있는 두 개의 맥락을 명확하게 설명한다.

▲ '미네르바' 사법 처리에 관한 의견 설문 결과 ⓒMBC
우선, 미네르바가 어떤 ‘듣보잡’이라도 그가 감옥에 가는 것은 코미디라는 것이다. 설문조사 결과와 함께 외신의 보도를 살펴보면 상황을 이해하는데 참고가 되는데, 지금 외신들은 인터넷 강국 코리아의 민주주의가 박살났다고 신나게 조롱하고 있는 중이다. 말하자면, 설문조사 결과는 외신의 조롱에 대한 국내적 수용, 차마 체면은 지키고 싶은 심정의 점잖은 반영이다. 국민들은 미네르바 구속이 최소화의 보편인 상식 수준에 위배되는 망측한 일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다. 이는 민주적 헌법의 가치를 초월하는 공권력, 표현의 자유에 반대하며 정권에 부역하는 언론 모두 안 된다는 수준의 상식은 분명히 살아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 '미네르바' 글/전망에 대한 신뢰도 설문 결과 ⓒMBC
그리고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미네르바의 신뢰도와 관련된 결과이다. 이번 사건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 검찰은 30대 전문대졸 백수라는 그의 신상명세서부터 공개했고 조중동은 건수 잡았다는 처절한 심정으로 그 부분만을 파고들었다. 검찰과 조중동이 짜고 친 이번 고스톱은 타짜가 보여줄 수 있는 궁극의 스펙터클로 미네르바를 파묻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신뢰받고 있다. 10%에 머물고 있는 정권의 지지도와 비교하면 아찔할 정도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의 말과 예측이 더 적확하다는 걸 실존적으로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가히 절대적인 신뢰도에는 그 정도 수준의 적나라한 이야기를 그 이전에는 아무도 하지 않았고, 이후 역시 아무도 못할 것이라는 서글픔의 반영이다.

맞다. 미네르바에 대한 신뢰는 기존 모든 것에 대한 냉소이다. 비록 환상일지언정 현실의 누구도 미네르바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판단과 검찰과 조중동의 대동단결 뒤에는 항상 모종의 음모들이 도사리고 있었더라는 본능적 인지이다.

과연, 미네르바는 무엇이었나? 이번 설문조사의 결론 너머에는 미네르바는 한국 사회의 필연이었다는 운명론이 숨어있는지도 모른다. 항시적인 위기, 추락하는 경제, 정치의 미성숙, 준동하는 공권력, 공안을 요구하는 미디어, 견제력을 잃은 무능한 정당 그리고 앵무새 같은 전문가들까지. 얼어붙은 시대, 까칠해진 우리들 마음에 필요한 것은 어쩌면, 한 대의 보일러일지도 모른다. 미네르바는 바로 그 보일러의 보통명사였다. 누구라도 상관없다. 우리에겐 미네르바가 필요하다. 너무나도 절절 끓었던 한 명의 미네르바를 구속한들 소용없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끝내 시대가 데워지지 않는다면, 보일러에 대한 욕망은 계속된다. 그때마다 ‘싸제’보일러는 안 된다고 구속할 텐가. 그냥 얼어 죽기 전까지는 삽질하며 버티라고 할 텐가? 어쩌랴, 미네르바 구속을 통해 전체 국민의 61.1%가 알아버렸다. ‘관제’의 성능이 이리 하염없이 개판이라는 것을. 진정, MB의 마음속에도 보일러 한 대 놓아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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