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로 지목된 박아무개씨가 지난해 12월29일 다음 아고라에 올린 거짓글(‘정부의 달러 매수 금지 긴급 공문’) 때문에 달러 매수가 폭증해 정부가 20억달러를 쏟아부어야 했다는 검찰의 주장은 곧바로 반박되기 시작했다. 두 사건은 전혀 별개로 진행된 ‘오비이락’의 관계이며, 네티즌 한 사람의 글에 의해 출렁거릴 만큼 한국의 외환시장이 작고 단순하거나 취약하지 않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검찰은 “미네르바 때문에 20억달러가 허공으로 사라졌다”는 공소 논리를 굽히지 않으며 ‘공안 경제학’을 계속 설파하고 있다. ‘상식’과 ‘경험’ 수준에서 이뤄지는 반박 따위는, 설령 꽤 설득력이 높더라도 눈감고 귀막아 버리면 그만이라는 투다. 그렇다면 상식과 경험을 넘어서, 검찰의 논리가 구조적으로 실현 가능한 것인지를 검증해 보여주는 건 어떨까.

▲ 중앙일보 1월3일치 3면(사회)
검찰은 지난해 12월29일 당일 시간대별 외환 거래량과 관련해 △오후 2시30분부터 장 마감 시각인 3시까지 거래량은 평소 하루 거래량의 20% 이내지만 미네르바의 글이 올라간 뒤 달러 매수 주문이 거래량의 39.7%였고 △30일에도 평균 하루 거래량 38억달러보다 많은 60억달러의 거래가 이뤄져 “외환 시장 안정을 위해 정부가 20억 달러를 지출했다”고 밝혔다.

과연 그런 현상이 미네르바 글과 얼마나 인과관계가 있을까.

검찰은 “2008년 12월29일 오후 2시30분 이후 주요 7대 금융 기관 및 수출·입 관련 주요 기업에게 달러 매수를 금지할 것을 긴급 공문으로 전송했다”는 미네르바 글에 대해 ‘허위 사실 유포’ 혐의를 뒀다. 정부 당국도 문제의 글이 아고라에 오른 뒤 “사실이 아니다”며 공식 부인한 바 있다.

검찰 논리대로라면 금융기관 및 주요 기업들은 정부로부터 달러 매수와 관련한 어떠한 명령(혹은 공문)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미네르바의 글이 거짓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이들의 거래는 미네르바 글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셈이다.

남은 거래자는 개인이나 비금융기관 정도일 것이다. 기업들도 자신의 정보력을 이용해 미네르바 글 내용의 진위를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겠지만, 주요 기업의 범위를 특정할 수 없는 점 등을 보수적으로 감안해, 일단 미네르바 글의 영향권 안에 포함시켜보자. 개인과 비금융기관만이, 그들 모두가 빠짐없이 미네르바의 글을 읽었다는 전제 아래서, 달러 수요 폭증의 직접 변수로 남는다.

정부는 환율 안정을 위해 20억달러를 긴급 투입했다. 정부의 시장 개입은 ‘비정상적인’ 수요 증가 범위 안에서 이뤄졌을 것이다. 정부의 시장 개입이 수요 증가분을 완전 상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시장에 공급을 늘린다는 신호를 보내기 위한 데 있을 것이므로 비정상적인 수요 증가분은 정부가 투입한 20억달러와 같거나 그보다 클 것이다. 실제 검찰이 제시한 30일 거래량이 평균 하루 거래량보다 22억달러 늘어난 수준이고, 전날 장 마감 직전 30분 동안 늘어난 거래량까지 감안하면 이틀 동안 30억달러 정도 거래량이 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들 개인과 비금융기관들이 외환시장에서 매수를 늘릴 수 있는 여력이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 이들의 자금여력이 얼마인지 정확히 파악하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평소 시중에서 개인과 비금융기관들이 차지하는 거래비율을 통해 어림짐작을 하는 건 가능하다.

미디어스 취재 결과, A 시중은행의 평균 외환 거래 비율은 금융기관간 거래가 70%를 차지하고 나머지 30%가 개인 및 기업 같은 비금융기관과의 거래였다. 금융기관마다 그 비율에 차이는 있겠지만, 크지는 않을 것이다. 정교한 수리모델을 수립하려는 것이 아니라 타당성을 검증해보기 위한 것이라면 A 시중은행의 거래비율을 전체 시장 안에서의 거래비율로 가정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지난달 30일 하루 거래량은 평소보다 50% 이상 늘었다. 그렇다면 외환 거래의 70%를 차지하는 금융기관들이 평소 수준의 거래를 유지하는 가운데, 나머지 30% 비율을 차지하던 개인 및 비금융기관이 하루 총 시장거래량을 50% 이상 끌어올리는 것은 기능할까.

미네르바가 글을 올린 지난달 29일 전체 외환시장 거래량 추이는 33억6200만달러였다. 전체 거래량 가운데 70%에 해당하는 금융기관끼리의 거래량은 23억달러 수준, 개인 및 비금융기관과의 거래량은 10억달러 수준이었을 것이다. 30일 전체 외환시장 거래량 추이는 59억8900만달러. 금융기관끼리 거래량이 전날과 같은 23억달러였다면, 나머지 37억달러 정도를 개인 및 비금융기관과 거래했다는 얘기다. 10억달러에서 37억달러로, 무려 3.7배, 27억달러나 늘어난 것이다.

다시 검찰의 논리를 환기해 보면, 금융기관들은 팔짱 끼고 있을 때 개인 및 비금융기관들이 미네르바의 글을 읽고 평소보다 3.7배나 많은 거래(주로 매수 거래)를 했다는 얘기다. 27억달러면 우리돈으로 3조원 가량이다. 검찰 논리대로라면 이들 가운데는 미네르바 글 내용의 진위를 확인할 기본 정보력조차 없는 대기업들도 있었을 것이고(그런 기업이 망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지는 차치하자), 저녁에 집에서 혼자 라면을 끓여먹는 기러기 아빠도 있었을 것이다. 검찰의 공안 경제학에서 기러기 아빠의 실체는 ‘대붕’이었다.

▲ 한겨레 1월13일치 3면(종합)
경제 전문가들도 검찰의 주장에 어처구니없어 한다.

김기원 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미네르바 글 때문에 20억달러를 썼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며 “인터넷 글 하나로 손해를 볼 정도로 능력이 없는 정부라면 손 털고 나와야 한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당시 상황은 일반적인 외환시장의 현상으로, 정부의 연말 환율 계획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새해가 되면 환율이 오를 것을 알고 산 것”이라며 “정부가 연말에 환율을 관리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미네르바 때문에 20억달러를 썼다는 주장은 국민들을 바보로 여기는 것”이라며 “미네르바보다 훨씬 영향력이 큰 강만수 재정경제부 장관이 경제를 엉망으로 만든 것에 대한 책임을 엉뚱한 사람에게 돌려 화풀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 지난해 12월 환율변동추이. 1500원 선을 위협하던 환율이 하락한 것은 대외적인 여건도 있었지만 정부의 외환 시장 개입이 효과를 발휘했다는 게 외환 시장 안팎의 관측이다. ⓒ기업은행 홈페이지 캡처
B투자증권 한 연구원도 “정부가 연말에 외환 시장에 개입한 것은 사실”이라며 “실제 외환 거래 상황을 지켜보는 입장에서 미네르바의 글 때문에 달러 매수량이 급증했다는 주장은 오비이락의 논리일 뿐, 미네르바가 글을 쓰지 않았더라도 정부는 외환 시장에 개입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29일과 30일 달러 거래량은 평소보다 높은 수준이긴 했지만 비정상적인 것은 아니었다”며 “기업들의 실적과 12월 종가 기준으로 키코(통화옵션파생상품) 환율이 정해지기 때문에 키코 환율을 낮추기 위해 연말에 정부가 인위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한 사람의 글 때문에 외환시장이 움직였다고 주장하는 건 외환시장 시스템 자체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는 꼴”이라며 “검찰이 그런 논리로 미네르바를 구속시켰다면 지난해 하반기 환율이 계속 오른 것과 관련해 정부는 정책실패의 책임을 지고 국민들에게 무한배상을 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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