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일요일이 좋다-패밀리가 떴다’(이하 패떴)의 대본 공개가 예능 프로그램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인터넷 연예 정보 매체들은 리얼 프로그램을 표방하며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패떴’이 대본 공개로 인해 실제로 리얼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는 실망감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고 보는 듯 하다. 실제로 ‘패떴’을 아꼈던 카페와 프로그램 사이트를 보면 다소 실망감이 섞인 게시글도 간간히 발견할 수 있다.

▲ ‘SBS 일요일이 좋다-패밀리가 떴다’ 화면 캡처.
어렸을 적 프로레슬링 경기를 보면서 환호한 이들은 기억할 것이다. ‘헐크 호건’이 양발을 공중에 띄우면서 슈퍼킥을 하면 다음날 교실 뒤편에서는 이를 따라 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 프로레슬링은 어린이들의 로망이었다. 나이가 들어 그것이 짜여진 각본에 의해 연출하는 것이라는 소문을 듣자 대단한 실망감과 좌절로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그렇다면 대본 공개가 이 모든 고민과 결과물을 엎을 만한 일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패떴’의 대본 공개는 그다지 대단한 일이 아니다. 방송 프로그램 가운데 단 하나의 프로그램도 작가가 없는 곳은 없다. 또한 대본과 큐시트가 없이 방송을 하는 프로그램도 없다. 온 국민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치밀한 계산과 짜여진 대본이 있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온 것도 이 같은 치열한 고민이 뒷받침됐다고 봐야 한다.

인터넷 매체들은 대본이 공개됐기 때문에 앞으로 시청자들이 ‘패떴’을 볼 때 ‘저것은 대본에 의한 것’, ‘이것은 에드리브’라고 분류해서 볼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시청자들은 단지 예능 프로그램인 ‘패떴’을 분석해서 보지는 않을 것이다. 대본 공개는 백지장 하나의 차이다. 연예인들이 시골의 어느 한 집을 찾아가 주어진 미션을 수행하고, 게임을 하고, 자연스러운 대화의 모습이 대본 공개로 인해 실망감이 확산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시청자들은 예능 프로그램으로 ‘패떴’을 시청하고 있지, 교양이나 다큐멘터리 형식을 요구하며 ‘패떴’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포맷이 식상해지고, 연예인들이 치는 애드리브와 대사가 시청자들에게 예상 가능한 것으로 다가올 때 실망감이 서서히 확산될 것이라 본다. 지난해부터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지상파 방송사에게 효자 노릇을 담당했다. 광고가 완판으로 붙고, 파생 상품은 늘어났다. 따라서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대세는 올해도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전제가 될 것은 변화하지 않으면 시청자들은 외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만일 미션을 수행하면서 동일한 게임을 연출하거나, 잠자리에 들기 전 순위를 정하고, 아침에 유재석이 먼저 일어나 퀴즈를 내고 아침밥 당번을 정하는 일이 시청자들에게 식상함으로 전해진다면 시청자들은 ‘패떴’을 외면할 것이다. 대본 공개로 인해 ‘패떴’의 시청률이 다소 주춤할 수도 있다. 그러나 ‘패떴’ 제작진이 더 무서워야 할 것은 시청자들도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나올 때이다.

나는 나이가 들면서, 어릴 때만큼은 아니지만, 케이블 채널을 돌리다 가끔 프로레슬링을 보며 어린 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짜여진 각본이라는 걸 알면서도 때로는 넋을 잃고 본다. 그건 어려서 봤던 프로레슬링과 시나리오가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미 ‘패떴’에서는 시청자들이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가 보이고 있다. 제작진이 긴장해야 할 것은 대본 공개가 아닌 바로 매너리즘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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