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전후 ‘대놓고 편파적’인 방송을 함으로써 인지도와 시청률을 올린 종편은, 개국 당시 목표로 내세운 경쟁력 강화, 여론 다양성 제고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었다. 선두에 섰던 것은 TV조선과 채널A였지만 다른 종편들이라고 뚜렷하게 비교되는 차별화된 모습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십수년 간 압도적인 지지로 ‘신뢰 받는 언론인’ 1위를 지켰던(심지어 지금도 그 기록은 유지되고 있다) 손석희 교수가 그런 ‘종편’ 중 하나인 JTBC를 택했을 때 반응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JTBC 손석희 사장 (사진=JTBC)

2013년 5월, ‘보도 담당 사장’이라는 그간 없었던 직책을 만들어서 자리를 옮긴 그는 그 해 9월 16일 JTBC 메인뉴스 <NEWS 9>의 앵커를 맡았다. 손석희 사장은 ‘모든 진실을, 오직 진실을’ 다루겠다는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 창간자 뵈브 메리의 말을 인용하며 “(JTBC도) 그렇게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NEWS 9>와 개편 후 현재 <뉴스룸>까지 JTBC는 ‘사실’, ‘공정’, ‘균형’, ‘품위’라는 기조 아래 뉴스를 선보이고 있다. 정의당의 삼성 노조 와해 문건 단독보도, 국정원 대선개입 관련 연속보도, 세월호 참사 집중보도 등 타사, 특히 권력이 불편해 할 만한 사안 앞에 맥을 못 추는 지상파와 비교되는 보도로 고정 시청층을 만들어냈다. 학계, 언론계, 시민사회계의 평가도 호의적인 편이다.

그러나 JTBC는 때때로 잘못된 판단으로 취재·보도윤리를 어겨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지난 4일, 노태우 전 대통령 장남 노재헌 씨가 조세도피처에 페이커컴퍼니 3곳을 세웠다는 뉴스타파의 단독보도를 전하면서 ‘뉴스타파’라는 출처를 표기하지 않은 일을 들 수 있다.

타사 자료 ‘무단 사용’, 출처 미표기… JTBC답지 않았던 선택들

뉴스타파 최기훈 기자는 출처를 표기하지 않은 KBS, MBC, JTBC를 거론하며 “노재헌을 비롯해 수백명이 넘는 한국인 명단은 뉴스타파가 수개월에 걸쳐 조사하고 확인에 확인을 거쳐 나온 결과물”이라며 “취재기자가 기사에서 빼먹었다면 데스크가 무능한 것이고 취재기자가 썼는데 데스크가 일부러 빼버렸다면 이건 저널리즘의 기본이 안 돼 있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납득하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뉴스타파 심인보 기자 역시 “기자회견이 끝나고 인터뷰도 했고 이후에 전화가 와서 따로 여러 가지 설명을 해 줬”는데도 불구하고 JTBC가 조세도피처 보도를 하며 뉴스타파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JTBC를 비롯한 주류 언론들이 정확한 인용보도를 회피하는 이유는 뭘까요? 정말 궁금하다. 단순한 실수라고 보기에는 상습적”이라며 “보도의 대원칙은 자체적인 사실 확인이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할 때 적용되는 원칙은 정확한 인용보도”라고 지적했다. 4일 본방송, 온라인 기사에서 ‘뉴스타파’ 표기 없이 나간 JTBC 보도는 다음날인 5일 오전 10시 12분경 수정됐다. 뉴스타파 항의 이후 기사를 대체한 것이다.

JTBC가 출구조사 결과를 무단 사용했다고 비판하는 내용의 2015년 8월 21일자 KBS <뉴스9> 리포트

비슷한 일은 이전에도 있었다. 2014년 6·4 지방선거 당시 지상파 3사(KBS-MBC-SBS) 출구조사 결과를 무단 사용해 법정 소송을 간 사례가 대표적이다. 2014년 8월, 지상파 3사는 JTBC가 출구조사 결과를 입수해 지상파 3사보다 먼저 보도했다며 ‘영업비밀 침해’로 고소했고, 법원은 2015년 8월 “많은 비용과 노하우가 투입된 중대한 영업비밀 자산인 출구조사 결과를 지상파 3사 방송이 끝나기 전에 JTBC가 먼저 방송한 것은 도용이자 영업비밀 침해”라며 12억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지난 24일 검찰 역시 JTBC의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했다. 검찰은 “JTBC는 지상파 출구조사 결과를 정당한 인용 보도의 한계를 넘어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JTBC는 지상파 3사에서 조사 결과를 모두 공개한 뒤 인용한 것이 맞지만 사전에 자료를 입수해 방송시스템에 입력해 둬 사실상 동시 공개, 또는 일부 자료의 경우 먼저 보도했다”고 설명했다.

“정당한 취재활동을 통해 지상파 출구조사 결과를 취득했으며 이 과정에서 불법, 탈법적 행위는 없었다”는 JTBC의 입장과 배치되는 결과였다. JTBC 태스크포스 팀장을 맡았던 김모 PD, 이모 기자, JTBC 법인, 출구조사 자료를 유출한 기관 임원 김모 씨만 불구속 기소되고, 손석희 보도 담당 사장, 공동대표이사, 보도 총괄자, 취재 부국장 등은 무혐의 처리되긴 했으나 JTBC가 그간 쌓아 놓은 보도 신뢰에 타격을 줄 만한 결과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JTBC는 검찰의 자원외교 비리 수사에 대해 ‘박근혜 정부 창출’에 기여했다고 주장하며 친박 실세들에게 돈을 건넨 쪽지를 남기고 숨진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죽음을 다룰 때, 원 출처인 경향신문의 동의 없이 성 전 회장의 육성음성을 공개해 ‘취재윤리 위반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2015년 4월 15일 JTBC <뉴스룸> 보도

손석희 사장은 <뉴스룸> 방송에서 녹음파일을 공개할 때, “또 다른 녹취록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 지금까지 일부만 전해져 왔던 것에서 가능하면 전체 맥락이 담긴 전량을 전해드려서 실체에 접근해보자는 의미”라며 “시민의 알 권리와 관련된 부분”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출처 문제에 대해서는 “경향신문과 상관없이 다른 곳에서 입수했다”며 보도를 정당화했다. ‘알 권리’를 강조한 JTBC는, 정작 육성 공개를 원치 않았던 유가족과 경향신문 편집국의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고 방송을 강행해 후폭풍을 맞았다. 경향신문 보도와 크게 다르지 않은 보도를 하면서, 육성음성 공개에만 초점을 맞추자 언론계 안팎에서 사실상의 ‘절도 행위’이자, ‘상업성과 속보 경쟁을 중시한 결과’라는 혹평이 나온 것이다.

올바른 ‘보도 과정’, 보도 내용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간 손석희 사장은 “저는 여기서 원 오브 뎀(one of them)”, “저 혼자 부각되는 것에 대해 매우 부담스럽고 실제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제 직책이 사장이고 최종 게이트키퍼가 맞지만 가능하면 그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시작했다. 그래야 조직이 살아난다” 등의 발언으로 JTBC의 보도국 전체의 역할을 늘 강조해 왔다. 그러나 손석희 사장은 스스로 밝혔듯 ‘최종 게이트키퍼’이자, 주요한 ‘결정’을 내리는 입장이다. JTBC가 타사보다 질적으로 ‘나은’ 보도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공정하고 신뢰 받는 방송’이라는 이미지를 비교적 빨리 얻은 데에는 ‘언론인 손석희’가 가진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온 이후 JTBC에 대한 인식과 평가가 전반적으로 좋아졌다는 것은 여러 통계로도 확인된다.

그래서인지 그동안 JTBC가 잘못된 판단으로 명백한 실수를 저질러도 이에 대한 온전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은 감이 있었다. 지상파 출구조사의 ‘인용’을 넘어선 보도, 성완종 전 회장 육성 공개, 타사 인용보도 시 출처 미표기 등 JTBC의 책임이 분명한 사안에서도, JTBC에 대한 문제제기는 때때로 ‘트집잡기’로 인식되기도 했다. 지상파 3사가 영업비밀 침해로 JTBC를 고소했을 때, JTBC를 옹호하는 쪽에서 지상파의 의도를 ‘악의적’이라고 본 시각이 대표적이다. 언론인 손석희, 그가 이끄는 JTBC의 보도의 ‘준수함’과 취재·보도과정에서 나타난 한계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함에도 말이다.

시청자들에게 가장 자주, 주목도 높게 받아들여지는 메인뉴스에서 일관된 관점을 가지고 충실히 보도해 온 JTBC의 성과는 분명히 인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보도의 내용만큼이나 그 보도가 시청자를 만나기까지 거쳤던 수많은 판단도 보도 신뢰를 좌우하는 중요한 축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올바른 보도’를 추구한다면, 그것이 보도되는 과정 역시 ‘올바라야’ 하는 것이 아닐까. 더구나 타사의 자료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비슷한 문제가 반복된다면, 이는 분명히 개선되어야 할 ‘과제’라고 볼 수 있다.

JTBC는 이미 개선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조금 늦긴 했지만 후작업을 통해 방송 리포트와 온라인 기사에서 ‘출처 미표기’ 문제를 해결했다. 5일 방송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조세 도피 실태를 드러낸 파나마 페이퍼스 파문을 재차 다룰 때, 노재헌 씨 이름이 담겨 있다는 사실이 ‘뉴스타파’ 보도로 드러났다는 점을 밝혔다.

이른바 ‘주류 언론’이 알 권리를 보장하는 보도와 건강한 여론 형성이라는 본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와중에, JTBC는 여전히 ‘주목할 가치가 있는’ 언론사다. 보도 내용만큼이나 중요한 취재·보도윤리에 있어서도 ‘한 걸음 더 들어가는’ 판단을 하기를 기대한다.

2015년 4월 4일 JTBC <뉴스룸>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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