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집이 어디까지인지 실험하고 있다.” SK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 추진에 결사반대 입장을 내고 비판보도를 이어가고 있는 지상파를 두고 SK의 한 임원이 한 말이다. 그리고 그는 KT와 LG유플러스에 대해 이렇게 촌평했다. “우리도 KT-KTF 합병 때 반대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다. 비판, 비난, 저주… 지금 경쟁사업자는 뭘 하고 있는 건가.” 삼성, 현대차 다음으로 광고비를 집행하는 대형광고주 SK가 지금 두들겨 맞고 있다. 철 지난 소식이 SK-CJ 저격용으로 다시 전파를 타고 있고, 이동통신사와 지상파방송사들이 난데없이 ‘공공성’을 외치는 촌극이 진행 중이다.

▲2015년 12월 2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을지로 소재 SK텔레콤 본사 사옥에서, SK텔레콤 이형희 MNO총괄이 CJ헬로비전 인수 및 SK브로드밴드와의 합병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SK텔레콤)

왜 이렇게 뜨거울까. 복기해보자. SK는 지난해 12월 정부에 CJ헬로비전 인수합병 추진 계획을 제출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번 거래로 방송통신시장의 경쟁이 제한될 가능성과 이동통신시장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의 지배력이 방송시장에 전이될지를 따지고 있고,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달 22일 방송부문 심사주안점안과 통신부문 심사기준을 발표하며 심사를 준비하고 있으며, 미래부에 사전동의권을 행사하는 방송통신위원회는 규칙까지 개정해가며 이번 건에 대해 본심사위원회를 구성할 채비다.

SK 주장대로 ‘역대 가장 촘촘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 액수만 보면 큰 규모는 아니다. SK텔레콤은 CJ오쇼핑이 보유한 CJ헬로비전 지분 53.9% 중 30%를 5천억원에 인수하고, 추후 콜/풋 옵션 행사를 통해 나머지 지분 23.9%를 사들인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동통신 1위 사업자, IPTV 2위 사업자, 알뜰폰 2위 사업자를 거느린 SK가 케이블과 알뜰폰 1위 사업자인 CJ헬로비전을 인수하는 문제이고 ‘방송’ 그리고 ‘통신’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관심이 뜨겁다. 정부가 심사주안점안과 심사기준을 사전에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결론부터 예측해보자. 대부분의 사업자들과 언론이 빠르면 6월, 늦으면 7월께 최종 결론이 나올 것으로 전망한다. 이번 건에 관여하는 공정위, 미래부, 방통위 중 어느 한 곳이 결론을 뒤집을 가능성은 극히 적다. 공정위는 경쟁제한성과 지배력 전이에 대해 판단을 내려야 하지만, 국책연구기관인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축적된 데이터가 적다’며 판단을 유보했고 미래부와 방통위가 방송통신 결합상품 시장을 별도의 시장으로 획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공정위가 KT와 LG유플러스의 손을 들어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특히 유료방송사업자를 규제하는 미래부의 방송 정책의 기조를 고려하면 ‘조건부 승인’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크다. 미래부는 방송통신 융합을 위해 기술규제를 완화하고, 규모의 경제를 만들겠다며 ‘플랫폼 대형화’를 유도하는 정책을 펴왔다. 2년 전 업계가 정확히 KT와 반대진영으로 갈라섰던 합산규제도 결국 ‘3년 일몰제’로 정리됐다. 또 미래부는 심사주안점안을 만들면서 언론운동단체와 노동조합의 요구를 대폭 수용했다. 통신 부문 심사에 ‘KT 망을 빌려 알뜰폰 사업을 하는 CJ헬로비전을 SK가 인수하는 것이 적절한가’라는 쟁점이 있지만, KT의 한 임원 지적대로 “SK가 알뜰폰 부문은 인수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 끝날 일”이다.

결국 여론의 향배와 청와대의 결심이 이번 인수합병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경쟁사업자인 KT와 LG유플러스가 주요신문들의 1면에 두 차례나 ‘SK텔레콤은 나쁜 인수합병을 포기하십시오’라는 제목의 의견광고를 집행하고, 역시 반대진영인 지상파방송사들이 여론전에 뛰어든 것도 이런 이유다. 언론 관련 학회들 또한 이미 SK 또는 반(反)SK 진영의 후원을 받아 세미나와 토론회를 한두차례씩 열었고 각 사업자들은 이 행사를 대대적으로 여론전에 활용했다.

▲서울 을지로에 위치한 T타워 앞 가로수 보호대 (사진=미디어스)

서두에서 지적했듯, 이번 여론전에서 독특한 점은 지상파의 움직임이다. SK는 “합병법인 1년차에 3200억원 규모의 콘텐츠펀드를 조성하고, 대부분을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에 투자할 계획”이라며 달랬지만 현재로서는 지상파를 포섭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지상파는 조선·중앙·동아일보, 매일경제와 이 신문들이 최대주주로 있는 종합편성채널보다 적극적으로 여론전에 뛰어들었다. 지상파는 한국방송협회가 ‘인수합병 반대’ 성명서를 발표하면 이를 ‘구호’로 만들어 보도하고 있고, 갈수록 그 비판 보도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유는 뭘까. 이동통신사, 지상파, 유료방송사업자 관계자 등 미디어스가 접촉한 업계 사람들은 모두 “지금 지상파의 관심은 재전송료를 280원에서 430원으로 올리고, VOD 수익배분율을 더 얻으려는 데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합병법인 사업계획서 작성에 참여한 관계자는 “지상파에 연간 광고비를 얼마 더 배려하겠다, 재송신료 인상하겠다, 콘텐츠펀드를 CJ에 몰아주지 않겠다와 같은 확약을 하지 않았겠나. 지금 지상파는 진심으로 인수합병을 무산시키기 위해 청와대에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SBS는 거의 융탄폭격 수준이다. SBS는 4일 기준으로 최근 보름 동안 메인뉴스에 SK-CJ 비판 리포트를 12꼭지 내보냈다. 주말을 제외하면 하루에 한 꼭지 수준이다. 같은 기간 MBC가 3건, KBS가 아예 리포트를 내보내지 않은 것과 비교하면 더욱 흥미롭다. SBS는 CJ대한통운 택배기사의 부도덕한 행동도 비판했고, CJ가 청년일자리 대신 아르바이트를 늘렸다고 지적했다. SK텔레콤에 대해서는 소비자 피해와 과징금이 가장 많은 부끄러운 1위라고 지적했다. 인수합병이 이루어지면 방송독과점과 언론장악이 일어날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SBS가 느끼는 위기감은 KBS MBC에 비해 크다. 익명을 요구한 지상파 관계자는 “SBS는 망할 수도 있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CJ는 본방송 편성비율이 16% 수준이다. SBS는 본방 편성비율이 80%다. 그런데 CJ의 드라마와 예능에 대한 평가는 SBS를 압도한다. 대다수가 ‘지상파는 왜 CJ처럼 못 만드냐’고 한다. 방송광고 매출도 CJ가 SBS의 3분의 2까지 따라잡았다. 이런 상황에서 CJ가 이동통신 1위 사업자이자 케이블까지 가져갈 SK와 전략적 파트너가 되고, 갑자기 조 단위의 실탄을 쥐게 되면 SBS와 CJ의 ‘시장에서의 지위’가 뒤바뀌는 것은 시간 문제다. 공영방송인 KBS MBC와는 달리 SBS는 민영방송이다. 사운이 걸렸다.”

결국 현실에서 이번 인수합병 여부는 정부, 청와대가 SBS의 민원을 접수할지 말지에 달렸다. SBS의 4일자 리포트 <‘SKBB-CJHV’ 합병…방송독과점 현실화 우려>에는 자신이 호소해야 할 대상이 분명히 드러난다. 리포트는 “방송시장에 진출한 대기업들이 수직계열화를 통해서 방송채널을 늘리는 등 영향력을 확대해 가고 있습니다. 방송시장 독과점 구조가 발생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검토해주기 바랍니다”라는 박근혜 대통령 발언(2014년 미래부-방통위 업무보고 당시)으로 시작한다. 이번 인수합병이 대통령의 의중에 반한다는 메시지를 다시 정부부처와 청와대에 각인시킨 것이다.

▲SBS 리포트 갈무리. 이미지를 클릭하면 리포트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이 리포트에는 SBS의 위기의식 또한 여실히 드러난다. SBS는 CJ가 배우 전지현이 소속된 기획사, 김은숙 작가가 있는 제작사를 잇달아 인수한 사실을 거론하며 “업계에서는 CJ가 1조 원이 넘는 매각 대금으로 콘텐츠 제작 시장을 싹쓸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고 보도했다. 또한 SBS는 합병 이후 SK와 CJ의 주식 교차소유가 이루어지는 점을 지적하며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을 합친 거대 방송 플랫폼과 콘텐츠 시장의 큰손 CJ E&M이 수직 계열화해 방송 시장을 장악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라고 보도했다. 물론 이에 대해 SK는 “우리는 콘텐츠 딜리버리에 집중하려는 것”이라며 “CJ 또한 지상파와 마찬가지로 사용료를 협상해야 할 사업파트너일뿐이다”라고 반박한다.

SK의 설명대로 이번 거래의 목적은 분명하다. CJ는 콘텐츠에 더 많은 투자를 해 돈을 벌겠다는 것이고, SK는 가입자 415만명을 한번에 사들여 이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전환(VOD)과 이동통신 결합상품 가입을 유도해 가입자당 매출을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최근 SK증권이 투자자에게 ‘CJ헬로비전 주식 매수 유지’를 권하며 설명한대로 이번 거래는 두 회사에게 득이 된다. 특히 SK는 415만 CJ헬로비전 케이블방송 가입가구에 설치된 유선망을 고도화하는데 5년간 5조5천억원을 투자하겠다고 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사물인터넷과 스마트홈 서비스까지 결합해 가입자를 묶겠다는 계획이다.

지상파, 특히 SBS의 보도에 한계가 있는 것은 바로 이 지점부터다. 지상파의 위기가 미디어생태계 위기로 이어지는 면이 있다. 그러나 이번 인수합병 심사를 계기로 ‘방송의 공공성을 구축하자’는 데에 지상파는 관심이 없다. 방송통신융합시대에 맞춰 변화해야 할 플랫폼사업자의 공적 책무에 대해서는 제안하지 않고, 학계에서 내놓은 독립적인 지역채널 모델에 대해서도 말이 없다. 방송통신업계에 만연한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개선하자는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지상파의 관심은 오로지 CJ가 자신의 ‘경쟁사업자’가 되고, SK의 협상력이 세지는 것을 막는 것에만 쏠려 있다.

지상파가 자신의 주장대로 방송의 공공성을 고민한다면 ‘좋은 규제’를 도입하자고 제안해야 한다. 전국 유료방송가입가구의 66%가 SK 또는 KT가 편성하는 실시간채널·VOD 라인업에 노출된다. 합산규제 일몰제가 끝나면 그 이상이 된다. 방통위의 고위관계자는 “이번 인수합병이 이뤄지고 합산규제가 끝나면 티브로드 정도를 제외한 케이블은 모두 이동통신사에 넘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기업 두 곳, 이동통신 3사가 리모컨을 장악하고 이동통신 결합상품으로 가입자를 가둘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모습이 미디어생태계에 적절한지 다양한 관점에서 따져보는 게 지금 언론이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동시에 공공성을 구축할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미래부와 방통위는 UHD방송 도입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지상파에 IP부가서비스를 허용하겠다고 했다. 하반기 지상파DMB 화질은 HD급으로 향상된다. EBS 다채널서비스(Multi Mode Service)도 본방송을 앞두고 있다. 지상파는 이제 ‘플랫폼사업자’로서 고민해야 한다. DMB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IP부가서비스를 이용해 ‘가장 값싼 OTT’ 서비스를 하고, MMS를 활용해 시청권을 넓히려는 시도를 하기에도 시간은 빠듯하다. 플랫폼사업자인 지상파에게 SK는 거래대상이 아니라 경쟁상대다. 또 CJ는 사업파트너다.

지금은 지상파가 SK와 CJ의 맷집을 실험할 때가 아니다. 그들은 ‘강력한 오너가 있는 재벌’이다. 최태원 리스크, 이재현 리스크가 있지만 그들은 수가 틀리면 언제든 인수합병 추진 결정을 철회할 수 있는 기업이다. 그리고 이런 식의 인수합병은 SK와 CJ가 아니더라도 언제든 누구든 추진할 수 있다. 지금은 다 같이 모여 공공성과 생존전략을 이야기할 때다. 과거처럼 청와대에 민원성 리포트를 올려보내고 박근혜 대통령만 바라볼 때가 아니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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