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입시업체 팀장 한 명이 대학입시 수능시험을 총괄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내부 직원 7명의 아이디를 알아내 200번 넘게 평가원 서버에 접속해서 16건의 자료를 내려 받았다.

▲ 서울신문 1월8일자 6면

경찰은 한 명도 아니고 평가원 직원 7명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아냈던 이 사람에게 평가원 내부 인사와 공모한 정황을 수사했으나 이 부분에 대한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다고 한다.

7명의 아이디가 밖으로 노출됐는데도 공모여부를 입증하지 못했다는 경찰의 수사를 어떻게 믿어야 할까. 피의자인 입시업체 팀장은 평가원 직원 7명의 아이디를 하늘의 계시로 얻었단 말인가. 한 두 명도 아니고.

경찰은 피의자 김씨가 16건의 자료를 내려 받았지만 이를 외부로 유출한 정황은 포착되지 않았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였다.

이걸 수사결과라고 내놓는 경찰이나 이런 걸 기사라고 쓰는 사람들이나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 중앙 1월8일 12면
대타협 주선하다가 표변한 언론

우리 언론이 지난해 연말부터 노동계 달래기 기사를 내놨다. 특히 우리 언론의 표현대로 하면 강성노조라고 하는 ‘금속노조’를 둘러싼 기사였다. 중앙일보가 지난달 23일 1면 머릿기사로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를 보도했다. 제목은 <금속노조 “일자리 나누자”>였다. 중앙일보는 이 기사에서 금속노조가 “비정규직 고용 보장을 위해 ‘일자리 나누기’ 대국민 선언을 추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노사정위원회가 이 기사에 화답했다. 김대모 노사정위원장은 지난 6일 기자 간담회에서 “경제위기를 극복하자는 정부와 노동계 경영계의 ‘노사정 대타협 선언’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거의 모든 언론이 지난 8일자에 김대모 위원장의 발언을 소개했다.

구체적인 추진 일정도 나왔다. 김 위원장의 발언을 소개한 중앙일보 8일자 1단 기사는 노사정위원회가 이달 중 실무추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음 달까지 명문화한 대타협을 이끌어낸다는 계획까지 소개한다. 또 이를 위한 두 차례 토론회 계획도 보도했다.

이런 정황에 맞추듯 금속노조는 8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금속노조 기자회견’을 열었다. 금속노조는 이날 회견에서 노사정 대화를 제안하면서 해고나 임금 삭감을 전제로 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언론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노동조합이 해고나 임금 삭감을 전제로 내걸고 정부나 기업과 대화할 순 없다. 이건 지극히 상식이다.

그런데도 다음 날 9일자 중앙일보는 태도를 바꿔 1면에 <노동계는 위기 불감증>, 6면에서는 <“해고는 안 된다” “임금 깎지 마라”...고통분담 ‘귀 막은’ 노조>라는 거친 제목으로 금속노조를 비난했다. 조선일보도 9일자 <금속노조, 고통분담 진정이라면 뭘 양보할지도 밝혀야>라는 사설에서 금속노조를 비난했다.

민주노총은 10년 전 외환위기때 고용안정을 위해 노사정 대타협의 테이블에 앉았지만 정리해고라는 뒤통수를 맞은 뼈아픈 경험을 갖고 있다.

깊어가는 경제위기 속에 노사정이 머리를 맞댈 수도 있다. 그러나 언론이 기대하는 것처럼 노동계가 먼저 해고와 임금 삭감을 전제로 한 대화에 나설 이유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노조에게 고통분담을 말하기 전에 정부와 기업이 뭘 내놓을지 요구하는 신문도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 조선일보 1월9일자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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