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전교조에 대해 “집단이기주의로 뭉친 노조” “종북(從北)단체” “목적을 관철하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등으로 평가절하해왔던 동아일보. 동아일보는 전교조가 무너지길 그토록 바랐던 것일까.

자신들을 ‘정론지’로 자처하는 동아일보가 지면에서 전형적인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theory)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전교조 내부 게시판에 해직교사 최혜원씨가 올린 글을 다룬 9일자 13면 사회면 머릿기사 <“전교조, 그 이름이 이젠 부끄럽다”>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 동아일보 9일자 13면 톱
1957년 미국의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가 발표한 ‘인지부조화’ 이론이란 ‘믿는 것’과 ‘실제 일어난 일’이 다를 때 발생하는 고통을 스스로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현실을 인정하지 않거나 자신의 믿음에 맞춰 자신을 합리화함으로써 자신의 믿음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현실’보다 ‘믿음’을 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관적 ‘믿음’과 객관적 ‘현실’ 사이에서 ‘믿음’을 선택하기 쉬운 인간의 심리적 특성은 수많은 개인이 모여 만들어낸 신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 것일까. 여론을 만들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는 신문사로서는 자신들의 ‘왜곡’ 기사가 현실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믿었을지도 모르겠다.

동아일보는 ‘단독보도’라는 꼬리표를 달고 “해직교사인 최혜원씨가 전교조 지도부에 대해 ‘배신감’을 토로하는 글을 전교조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렸다”며 “몇몇 조합원에게 대체 무엇을 위해 전교조에 가입했고 싸우고 있는지 묻고 싶을 만큼 답답한 적이 많았다” “전교조 소속이라는 사실을 아이들과 학부모에게 자랑스레 알렸고 그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노력했지만 이제는 전교조라는 이름이 가끔 부끄럽다” “내 아군(我軍)이라 믿고 마음 내주고 열었던 그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는 생살에 소금 뿌리듯 아프고 괴로웠다” “(내) 등에 칼을 꽂았던 몇몇 선배님이 앞으로 어떻게 교육 현실을 일구어 가는지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겠다” 부분 등을 발췌했다. 조선닷컴도 1월 9일자 “전교조의 배신으로 찢긴 가슴 어찌하나”라는 제목으로 동아일보를 인용보도했다.

동아일보는 최씨에 대해 “징계가 내려진 이후에도 다음 아고라 게시판과 각종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학력평가에 반대하는 전교조의 주장과 징계의 부당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밝혔다”고 소개하며 최씨의 ‘전교조 비판’을 더욱 극적으로 부각시켰다.

동아일보는 전교조에 대해 “지난해 12월 20일 최고 의결기구인 임시 전국대의원대회를 열어 징계받은 교사 7명이 정년 때까지 임금을 보전받을 수 있도록 규약을 개정하려 했지만 내부갈등 때문에 회의장은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며 “전교조 본부는 대의원회의를 통해 시험 거부 등 적극적인 학업성취도 평가 반대 운동을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위원장 선거를 앞두고 서울지부가 무리한 반대 운동을 벌였다. 징계 교사들은 결국 전교조 내 권력 싸움의 희생양”이라는 A교사의 말을 내보내기도 했다.

동아일보의 이 기사만 보면, 마치 해직교사인 최씨가 권력다툼에 몰두한 전교조에 염증을 느껴 날선 비판에 나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재 최씨는 이 기사가 자신의 뜻을 왜곡했다며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최씨는 11일 다음 아고라에 올린 ‘해직교사의 변 - 나는 전교조가 아니라 조선 동아가 부끄럽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내가 전교조 본부의 조합원 게시판, 즉 조합원에게만 공개되어있는 비공개 게시판에 올린 글 내용의 일부가 짜깁기돼 있었다”며 “(동아일보 기사는) 내가 ‘전교조 내의 권력 싸움’ 에 대해 비판한 것처럼 왜곡했지만, (나의 주장은) 오히려 일제고사 건에 대해 강력한 대응이 아닌 권력과 정부의 눈치를 본 지도부에 대한 비판이다. 그들의 편집 의도를 도저히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최씨는 “폭압적인 일제고사와 부당 징계에 대한 시민사회의 공분에도 불구하고 미온적인 대응을 한 본부 지도부 중 일부에게 보다 강력한 대응을 원했다. 왜냐면 일제고사 반대에 대한 정당성은 나에게 있어 너무나 분명했기 때문”이라며 “나는 전교조가 더 ‘전교조적’으로, ‘전교조답게’ 행동하길 바랐던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더 강한 어조로 애정어린 비판을 보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씨는 “마치 거짓을 진실인 양 조각조각 낸 뒤 그럴 듯하게 포장하는 싸구려 글 솜씨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당신은 내게 있어 언론인으로서의 양심을 버리고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사회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며 “이번 사건은 메이저 언론임을 자처하는 보수 언론 조선/동아의 한 일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행태다. 나는 이번 글을 통해 동아일보의 기사에 대한 제 입장과 진실을 밝히고 왜곡된 기사를 실은 동아일보와 황규인 기자에게 정정보도와 함께 공식 사과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 해직교사 최씨가 미디어 다음 아고라에 올린 글
최씨의 주장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미온적으로 나오는 지도부에게 배신감을 느꼈고, 일제고사 반대의 정당성은 너무도 분명한 만큼 전교조가 더욱더 일제고사 거부운동 등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아일보는 전교조 내의 ‘미온적인’ 일부 세력에 대한 비판을 전교조 ‘전체’에 대한 비판으로 바꿔치기했다.

(전교조를 무력화하고픈) ‘희망’에 따라 현실을 교묘하게 취사선택한 동아일보의 행태로 인해 최씨의 주장은 손바닥 뒤집듯 엎어져버린 것이다.

아무리 전교조 소속 교사로부터 ‘제보’를 받았다 해도(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비공개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본인 확인도 없이 사회면 단독 기사로 내보내는 ‘대담함’은 같은 기자로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전교조에 대해 적대적인 논조를 가져온 동아일보로선 지극히 ‘자연스러운’ 기사였을 테고 이들의 ‘왜곡’이 하루이틀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하지만 보수신문인 조중동 가운데 가장 ‘찌질스러운’ 모습을 보여왔던 동아일보가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 같지는 않다. 이번 일로 인해 동아일보의 ‘왜곡보도’가 다시한번 시민들의 뇌리에 깊숙히 자리잡게 됐기 때문이다.

현재 아고라에서는 최씨 기사를 내보낸 동아일보에 대해 “찌라시가 신문이라면 잠자리도 폭격기다. 잠꼬대같은 넋두리가 기사라면 지렁이도 용이다”(김병우) “조중동의 악행, 하루이틀 일 아니지요. 하지만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천불이 날 지경입니다. 당당하게 항의하시구요.”(얼그레이홍차) “끝까지 동아일보의 사과를 받아내십시오”(새내기) 등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한울노동문제연구소 하종강 소장은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조중동에 섬뜩함을 느끼게 된다. 관점이나 입장의 문제는 물론, 사실 자체마저도 철저하게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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